일본어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데 희끗희끗 먼지가 날렸다.
조금 지나고보니 그 것은 먼지가 아니고 눈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늘은 파랗고 해가 쨍쨍했다.
무지막지했던 첫눈의 흔적이 그늘진 도로 곳곳에 아직 남아있는데 눈은 며칠 전에도 내렸다.
그 것이 마지막 눈일 줄 알았다.
그렇다면, 올 겨울 마지막 눈은 오늘 내린 건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마지막 눈이라는 말이 어쩐지 입에 붙지 않는다.
첫 눈, 첫 사랑, 첫 아이, 첫 직장이라는 말은 익숙할 뿐 아니라 들을 때마다 뭔가 아련한 설렘이 있는데 ‘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으면 공연히 쓸쓸한 기분이 든다.
드라마나 좋아하던 방송프로그램의 최종회를 보고싶으면서도 보고난 후유증이 길어 보지 말아야 하나 갈등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잠깐이었지만 제법 흩날리며 내렸던 오늘 눈이 이번 겨울 마지막 눈이 될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건 또 모르는 일이다.
어느 해엔가는 3월에 눈이 내린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마지막 사랑이라는 말도 어쩐지 순애보의 진한 향기가 나는 것 같지만 그 것 또한 모르는(?) 일이다.
첫 직장이 마지막 직장이 되는 것을 성실의 미덕으로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고령층으로 접어든 그 세대 사람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와이프 등살에 못이겨, 놀기 지루해서, 혹은 지역건강보험료를 내야해서 등 여러 이유로 두 번째 세 번째 직장 문을 두드린다.
작가와 연출가가 작정하고 끝내는 드라마나 방송프로그램과는 달리 일상 속에서의 마지막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교장선생님 훈화가 그렇고
이 번이 지인짜 마지막이라며 개미지옥에 빠져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인형뽑기도 마찬가지다.
그런가하면, 인생 마지막 장거리 여행이라면 가본 곳이 좋을까? 안 가본 곳이 좋을까? 물어놓고
마지막이라면 안 가본 곳이 낫지 않겠냐는 K2의 조언을 듣고 런던에 암스테르담 얹어서 다녀왔으면서 미국여행을 계획했던 것만 봐도 끝날 때까지 끝나는게 아닌 것 같다.
미국여행은 취소했지만 이제는 섣부르게 마지막이라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결국 마지막이란 지나고나서야 깨닫게 되게 마련인가보다.
그레이아나토미에서 데릭과 헤어진 메러디스는 그과의 마지막 키스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제주도에 살던 친구는 제주시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빠에야 냄비를 박박 긁던 것이 마지막 모습으로 남았다. 막내고모는 열세 평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오랜만에 조카딸이 왔다며 돋보기를 쓰고 굽은 등을 하고 앉아 사과를 깎던 모습을 뵙고 얼마 후에 돌아가셨다.
그게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나는 다르게 행동했을까?
좀 더 자주 만나고 매 순간을 사진찍듯 기록해 놨을까?
시점으로는 햇볕 쨍한 여름 날 사이다를 마시고 있는 여섯 살의 내게서 병을 뺏느라 내 얼굴로 사이다가 쏟아지자 오빠를 혼내는 아버지 기억이 마지막이지만, 어느 겨울 초저녁, 한 달 만에 현장에서 집에 온 아버지가 나를 먼저 번쩍 안아들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둘째 이모는 엄마와는 달리 부드러우면서도 털털한 성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이모네 딸이 둘 있는데 엄마는 자주 그 집 딸과 나를 비교했다.
그 집 딸들보다 우리딸이 예쁘고 똑똑하고 야무지고 착하고 공부도 잘한다, 고 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건 동화책에나 나오는 얘기려니 한다.
“세상에 그 집 딸들은 그렇게 효녀라서 제 엄마 옷도 사주고 집도 고쳐주고 이번에는 살림살이도 싹 다 바꿔줬다더라. 애들이 착해. 아주 제 엄마라면 벌벌 떨어.”
“.......;;”
엄마가 그 집 딸들을 부러워했던 것처럼 나도 언제나 너그럽게 웃는 이모가 부러웠고 자매가 있는 것이 무척 부러웠다는 말은 세계평화(?)를 위해 꾹 눌러 두었다.
그 효녀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런 저런 얘기, 애들 결혼시킨 얘기 등을 하다가 언니가 엄마 안부를 물었다.
이러저러한 간단치 않은 상황이 있고 엄마는 기억을 자주 잊어버린다고 했다.
그랬더니 대뜸
“그럼 네가 모시고 와야지.”
한다. 이래서 엄마가 그렇게 부러워했구나 싶었다.
어떻게 통화를 마무리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때부터 언니의 말이 이따금 한 번씩 두더지처럼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최근에 엄마와 만났을 때 엄마는 집에 혼자 있었다.
며느리 살림이라 커피를 내릴 줄도,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뭐라도 줘야지, 사위가 왔는데”
라며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지를 못했었다.
또 일어나려는 엄마를 붙잡아 앉히면서 같이 노래나 부르자고 했다.
엄마와의 마지막은 어떤 장면이 될까.
요즘은 부쩍 젊었던 엄마의 모습들이 삽화처럼 불쑥 떠오르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