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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겠어, 게으름도 실력인 게지

by 이연숙


영어 수업 중에 강사가 물었다.

콘테스트에 나간 적이 있느냐고.

아무리 기억을 짜 내보려고 해도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때 노래대회 예심에서 떨어졌던 기억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이번에는 질문을 바꿔서 만약에 지금 여기서 십 분동안 영어스피치를 하라고 하면 할 수 있겠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면서 아마도 너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지는 모르지만 좀처럼 수긍이 되는 말은 아니었다.

예전에 샌디에이고 어덜트스쿨에서 발표를 했다고 하지 않았냐며 오래전 얘기를 끌어냈다.

(그 참 기억력도 좋지.)

듣고보니 그렇기는 하다.

크게 차이는 없겠지만 어쨌든 그 때는 영어가 지금보다 더 서툴렀을 터다.

누가 말을 시키면 얼굴부터 빨개지고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해대는 사람이

무슨 용기로 되지도 않는 영어로 조별 토론을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그것도 네 번이나 했는지.

그 때는 그랬는데 지금, 영어로 말하기에 십 분은 너무 길다고 했더니 자기도 한국어로 말하기는 오 분도 길다며 센스있게 마무리했다.

아이들이 취학을 하고부터는 이것 저것 배우러 다니기를 좋아했는데 영어공부를 하게 된 것은

무려 이십 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간중간 끊긴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 했으면

지금 쯤 CNN뉴스가 저절로 들리고 토익점수를 수준급으로 받았거나 빨간머리 앤을 원서로 읽을 정도는 돼야 마땅할지도 모르겠다.

그러하나 나의 빈곤한 영어실력은, 원어민 강사와의 수업을 근근이 따라가기 바쁘고 미드를 자막없이 보려다 한 회를 다 보지 못하고 다시 자막을 켜서 되돌려 보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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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자발적 자택 감금상태에 길들여진 것이 오히려 편해졌을 무렵 우울감에 무력감이 더해져 방구석 귀신이 될 판이었다. 어떻게든 밖으로 나갈 구실을 찾다가 평생교육원에 일본어강습을 들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회화반이었지만 회화보다 일본한자를 중심으로 공부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실용한자를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과정까지 십 년 간 배우는 것을 우리는 오 년만에 마칠 거니까 행운 아니냐고 강사는 새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강조하고는 했다.

어순이 비슷해서, 혹은 한자를 배운적이 있으니까 그나마 일본어가 배우기 쉬울거라는 소문을 믿었던 것이 착각이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는 그냥 낯선 외계어일 뿐이었다.

더구나 내 공부는커녕 수업에 참여하기 위한 예습을 하는 것 으로만 거의 이틀이 걸리기도 했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책상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K는 뿌듯한 표정으로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여러번이다.

그게 벌써 올해로 삼 년차에 접어들었다.

강사의 말로는 꾸준히 오 년을 공부하고 나면 부작용이 생긴다고

무슨 말인가 해서 갸우뚱한 표정을 지으면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NHK뉴스가 저절로 들리기 시작하고 일본어 원서가 막 읽히는 증상이 생기게 될 거라며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러면서 사실상 처음 시작해서 이 년정도 까지는 초급이라고 봐야하고 삼 년째가 되면 비로소 중급 수준이 되는 거라고도 했다.

강사 말 대로라면 나는 지금쯤 중급에 해당하는 실력이어야 한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가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라는 것을 눈치채기 어렵지 않을 터다.

처음에 기초반을 같이 시작했던 A는 시어머니 병수발을 드느라 두 학기 째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아들이 일본 유학중이라는 그는 일본인 며느리를 볼 수도 있다는 전제를 두었으니 일본어 공부를 사명처럼 여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한 모든 것을 궁금해하고 좋아했다. 또 다른 친구 B는 일본에 연고는 없으나 일본 여행을 무척 좋아했다. 이 수업에 들어오기 전부터 공부를 했고 기회가 될 때마다 남편과 혹은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다녀온다고 했다. 내가 제주에 가는 것처럼 그녀에게는 일본이 자기를 실현하는 장소라고 했다. B의 공부 방법은 남달랐다. 한자 교재를 그대로 노트에 옮긴 후 한 글자씩 찾아서 뜻을 달고 해석한 문장을 쓴다. 책에다 직접 쓰는 것도 이틀이 걸리는데 일일이 옮겨 쓰고 책에는 정갈한 글씨체로 훈음을 적어놓으니 내 것과는 전혀 다른 교재를 완성해가는 것 같다. 그 뿐 아니라 그는 늘 수업시간보나 한 시간이나 일찍 와서는 뒤에 앉은 고수 선배(?)에게 이것 저것 문법이며 해석을 질문하는 열의까지 있었다.

그 둘이 나를 끼워준 것이 고맙기는 하지만 한 편으로는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 그만 둘까를 고민하는 내게 그들은 한 목소리로

“버텨요!”

라고 했다.

그런데 아직 복귀할 날이 요원한 A에 이어 이번에는 B마저 일을 하게 돼서 수업에 나올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이십 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교실이 텅 빈 느낌이었다.

수업을 하느라 책을 읽거나 대화를 연습하는 것 말고는 누구와 말 한마디를 나눌 기회도 없이 수업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속에서 해라와 마라가 논쟁을 시작했다.

‘나도 그만 둬야 하나? 목적도 동기도 열의도 없는데 이걸 계속할 이유가 없잖아.’

그러자 해라가 말했다.

‘에이, 그래도 지금까지 한 게 아깝잖아. 그냥 계속 해.’

‘그러면 뭐하나? 뉴스에 나오는 일본사람 말이 하나도 안 들리는데. 그러느니 좋아하는 걸 해’

마라의 말이 그럴듯해서 잠시 뜸을 들이다 해라가 다시 말을 이었다.

‘A도 B도 엄청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긴거잖아. 만약에 나중에 일본어공부를 하고 싶게 됐는데 막상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어떡해. 그냥, 할 수 있을 때 하는게 좋지.’

말이 되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아서 마라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면 아는 일본어를 말해봐. 이 년이나 하고도 한 마디도 못하는 건 실력이 없다는 거야. A나 B처럼 목적도 없고 부지런하지도 않으니 실력이 늘 리가 없지’

그 말에 해라가 발끈했다.

‘어쩌겠어. 게으름도 실력인게지. 누가 또 알아? 천천히 가더라도 십 년 쯤 후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원서로 읽고 있을지.‘

어쩐지 이긴것도 진것도 아닌 어정쩡한 기분으로 집에 도착했다.

나도 안다.

십 년후가 된다고 해도 여전히 멈칫거리고 있을 거라는 것을.

그렇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은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 것 같다.

혹은 좋아하는 다른 공부가 생각 날 때 까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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