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제일 싫어하는 구조인데다 세대수도 적은 편이고 겨울이면 차가운 강바람 때문에 베란다 수도가 어는 등 불편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곳은 안방에서 거실에서 바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무려 한강뷰 아파트아닌가. 어지간한 불편은 감수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강다리를 걸어서 건너며 개를 산책시켰고 자전거로 시 경계를 지날 때까지 걍변을 달려보기도 했으며 창 밖으로 한강이 펼쳐지는 도서관에서 글을 쓸 때는 저절로 글이 막 써지는 것 같았다. 넓은 잔디에서 캐치볼을 하느라 힘을 쏙 뺀 날에는 강아지도 기절해서 잠도 잘 잤다. 주말에는 김밥을 싸가지고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고 라면을 끓여서 강가에 돗자리를 펴 놓고 소풍도 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캐치볼을 할 수 있는 너른 잔디는 강 건너에 있었다. 편의점도 커피숍도 모두 다리를 건너가야 했다. 자전거를 타고 잠실을 지나 뚝섬까지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강북 강남 차별하나? 왜 이쪽에는 둔치공원이 없어?”
“그렇더라고, 북쪽으로는 둔치가 좁아서 그런가?”
그러게 왜 애초에 그렇게 좁게 조성을 했을까 궁금했지만 K가 그 이유를 알 리가 없을 것이므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K가 커뮤니티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하면서 단추의 아침 산책이 내 차지가 되었다.
봄이 돼야 먹을 수 있던 딸기가 겨울 과일이 된 것 만큼이나 요즘은 계절을 가늠하기가 어려워졌다.
봄이 됐나 싶더니 눈이 펑펑오지를 않나, 넣어두었던 내복 바지를 다시 꺼내 입고 교육원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는 땀을 줄줄 흘리는가 하면 빨갛게 몽오리가 진 벚꽃나무가 필듯말 듯 하더니 어느 날엔가 한 번에 폭죽처럼 피었다. 그런 상황이고 보니 꽃이 피는 순서도 뒤죽박죽이 된 것 같다. 개나리와 벚꽃이 동시에 피고 산수유가 지지도 않았는데 목련꽃은 바람에 다 떨어져버렸다. 벌써 며칠 째 붉은 송이를 빼꼼 내밀고만 있는 연산홍은 ‘내 차롄가? 아직 아닌가?’를 재며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영리한 단추는 K와는 늘 아파트 입구에서 늘 왼쪽 방향으로 갔으면서도 나와 나갈 때는 제가 먼저 왼쪽으로 틀어 앞서 걸어간다.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 서로교를 건너 천변으로 내려갔다.
이 다리는 우리가 이 곳으로 이사온 후 1년 뒤에 완공되었는데 ‘서로교’라는 이름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알고보니 내가 생각하는 그 의미가 아닌 방향을 가리키는 ‘서’였다. 안양천을 중심으로 동과 서로 나뉘어 길 이름이 동로 서로가 되었고 다리는 서로쪽에 준공된 대형 건물을 공사하면서 생긴 것이라 서로교가 되었나보다 라고 추측한다.
나 이 길 안다는 양 단추의 걸음이 신이나 있다.
얼마쯤 가다보니 잘 정리된 천변에 촘촘하고 가지런하게 뭔가 심겨있는 것이 보였다.
튤립일 것으로 짐작을 했고 봉오리였던 그 것들은 날마다 조금씩 벌어지더니 오늘은 활짝 만개했다. 노란색 흰색 빨간색, 꽃은 튤립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제 막 심어놓은 것 같은 그 곳에는 어쩌면 작약일지도 모를 꽃모종이 펼쳐져있었고 그 옆에는 짧은 식물 상식으로 패랭이일거라 짐작되는 꽃이 또 한 바닥 펼쳐져 있었다.
습관적으로 폰을 열어 사진을 찍다가 무심코 건너편, 즉 서로방향을 봤다.
겨울이 끝나는 무렵인데다 얼마전 무슨 배관공사를 하느라 파헤졌던 그 곳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여름이 되면 그 곳은 다시 온갖 잡풀이 무성해질 게 분명하다.
K와 도서관에 갔다가 천변길로 걸어서 왔다.
“아, 진짜, 하다하다 꽃으로도 차별하나?”
같은 강변인데도 남쪽과 북쪽 풍경이 달랐던 예전 아파트 생각이 났다.
그 곳이 남북 차별이라 생각하며 서운한 마음이 있었나보다.
이번에는 동과 서다.
생각해보니 이 곳에 살고 있는 사 년동안 동서차별을 느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내가 웬만하면 이런 말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안하려고 했으면 안해야 하는 건 아는데.)
한 여름에 횡단보도에 펼쳐놓는 파라솔은 늘 동편에서 먼저 펴고 서편은 며칠 뒤에 편다.
동편 공원 잡초정리는 사람들이 꼼꼼하게 하는데 서편 공원은 예초기로 대충하는 걸 봤다.
동편 버스정류장에는 엉뜨가 설치됐는데 서편에서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서편 산책로는 좁고 동편은 자전거길까지 넓다.
억울하면 동편으로 이사를 가면 되겠지만 그럴 마음은 없다.
마음이 없다기보나 동편 집값이 비싸다는게 솔직한 이유가 되겠지만 이사할 마음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려서는 아들 딸, 차별에 결혼하고는 맏며느리 둘째며느리 차별에 길들여져서인지 뭔가 다르게 대하는 눈치가 느껴졌을 때 차별이라고 단정짓는 것이 습관이 된 모양이다.
넓게 펼쳐진 꽃밭을 보다가, 마당에 저런 꽃밭 한 평이라도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체념처럼, 꼭 가져야만 내 것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스스로 뿌듯해했다.
‘꽃이 보고 싶으면 서로교 건너서 보러가면 되지.’
봄이 강남이나 강북, 동편이나 서편에 두루 공평하게 찾아왔듯
한쪽으로 치우치려는 마음을 추스르느라 이 봄이 꽤나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