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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식이는 개뿔

by 이연숙


어쩐 일로 K가 내게 드라마를 봤느냐고 물었다. 그가 말하는 드라마는 TV에서 수시로 광고하고 있어 모를 수는 없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련한 봄날의 첫사랑 느낌이려니 해서 딱히 관심이 가지 않았다. 사랑이야기에 관심이 가지 않는다 생각하니 마음이 몹시 퍼석해진 기분이 들었다. 드라마를 보라고 권하는 것도 생소했지만 말 하고 나서 슬그머니 일어서며


“한 번 봐봐, 재미있어.”


라고 재차 강조하는 그가 꽤나 낯설었다.

K가 외출한 날 혼자 앉아서 드라마를 봤다. 옆에 아무도 없으니 고여 떨어지는 눈물을 굳이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훌쩍거렸다. 단추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빤히 쳐다봤다.

얼마 후에 K2를 만났을 때 아이가 또 물었다.


“엄마 폭싹 속았수다 봤어?”

“반 쯤 봤어.”

“폭풍 오열을 하셨겠구만.”

“......” (아! 이 가족은 나를 너무 잘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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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부부와 호수공원으로 소풍을 갔을 때 어릴 때 한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동생 친구 부부가 함께 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다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안 건 오래됐고 이후로 모르고 지내다가 각각 짝이 생기고 머리가 허옇게 될 동안 본 적 없으니 사실상 매우 서먹한 자리였을 수도 있겠다. 다행히 올케가 상냥한 사람이고 동생친구의 아내 역시 붙임성이 꽤 좋은 사람이라 생각보다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러다 화제는 어느덧 드라마 얘기로 흘러갔다. 그 부분에서는 의외로 남자들이 더 열띠게 감상평을 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완결까지 봤다는 동생친구 팀, 마지막 두 편만 남겨 놓은 나, 이제 절반까지 봤다는 올케까지 세 집의 드라마 진도가 달라 스포를 하지 않으려고 얘기는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친구들 중에는 자기 남편이 관식이 같다는 애들이 많더라구요.”


모두들 서로 눈만 씀벅거렸다.


“언니는 어때요?”

“어? 나! 우리 남편은 2% 부족한 관식이야. 관식이 같기는 한데 뭔가 부족해.”


모두 와르르 웃었다.




국가 검진을 예약한 날이었다. 오후 한시 일정이라 아침 식사를 거르고 일본어 수업에 가려고 가방을 챙겼다. K가 기운 없을텐데 태워다 주려냐고 물었다. 걸어가겠다고 했다.

끝날 때 올텐데 뭐 굳이 했었다.

수업이 끝나고 검진센터로 걸어가면서 자주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아파서 가는 게 아니니 혼자 하고 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수면내시경을 할 예정이라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다. 두시간 남짓 걸리는 검진이 다 끝나도록 K에게서는 소식이 없다.

수면내시경 동의서를 쓸 때 보호자가 같이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불현 듯 서러운 마음에 잠깐 울컥했다.

검진 도중 기침을 심하게 해서 중지했다고 했다.

못했다면서도 별 문제없이 깨끗하다고 한다.

집으로 오는 길에 차박차박 서운함이 쌓인다.

날은 또 왜 그렇게 더운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집에 들어와 놀러갔다 돌아온 사람 대하듯 무심한 K의 얼굴을 보자

소복소복 쌓였던 서운함이 일시에 폭발했다.


“나이가 들면 서로가 서로에게 보호자가 돼줘야 하는 거 아냐?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래 무심하대? ”

“아니 난 점심 뭐해줄까, 만 생각하고 있었지.”

“허이구~ 관식이는 개뿔!!”


하긴, 내가 애순이가 아니니 K가 관식이가 아닌 게 당연하다.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비교하지 말자, 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 날 저녁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밤 늦게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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