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냥 건너 뛸까?”
K는 아침식사를 하고 커피까지 마시고 나면 설거지 대충 정리해놓고 단추 산책을 시킨다.
K에게 산책을 나가는 이유는, 단추가 좋아하는 것 한 가지인데 나가지 말아야할 이유는 강가의 모래알 만큼이나 많다.
아침부터 일정이 있는 날은 제외하더라도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너무 더워서 추워서 심지어 간밤에 비가 잠깐 왔기 때문에 땅이 질 것(?) 같아서 등등 대부분 개의 의견과 상관없이 인간의 형편이나 기분에 따른 이유다.
그런데 그 날은 그 빈약한 이유마저 둘러대지 않았다.
“얘도 나름 루틴이란게 있지 않을까?”
아침 산책을 나갔을 때 단추는 배변을 두 번, 가끔은 세 번까지 할 때도 있다.
산책 경로를, 처음에는 데리고 나간 주인이 정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단추가 알아서 길을 찾아간다. 공동 출입구를 나서면 습성처럼 왼쪽으로 길을 잡는 K와 달리 나는 오른 쪽 길로 간다.
산책은 대부분 K가 데리고 다니는데 어쩌다 한 번 나와 함께 나갈 때 망설임없이 오른쪽으로 제가 먼저 방향을 잡는 것을 보면 참 신통하다 싶다.
매번 지나는 풀밭, 늘 오고가는 길이지만 단추는 항상 기분이 좋은 듯 냄새를 맡고 때로는 깜박 잊은 것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왔던 길을 휙 뒤돌아 가기도 한다.
낯가림이 심해서 마주 오는 다른 강아지를 발견하면 걸음이 느려지며 잔뜩 경계태세를 취하지만 지나치고 나면 그 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걸음이 명랑해진다.
나와 나갈 때는 주로 인적이 드문 길을 가느라 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K와 산책을 하고 온 후에는 늘 뒷 이야기가 있다.
몇몇 자주 마주치는 개 주인들에게서 간식을 얻어 먹었다든지, 다 똑같이 생긴 남의 푸들까지 이름을 기억하더라든가, 어쩌다 K혼자 지나가다보면 엄마 따라 지나가던 꼬마아이가 대뜸
“강아지는요?”
라고 묻기도 한단다.
이 집으로 이사온지 사 년만에 K는 이 구역 대표인싸가 되어 일명 ‘강아지 할아버지’로 불리고 있었다.
그랬으면서
지금 별 이유도 없이 산책을 건너 뛰겠다고 하는게 아닌가.
물론 K는 단순 반복적인 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기는 하다.
같은 목적지에 가면서도 갈 때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도 하고
같은 음식을 두 끼 이상 먹게 됐을 때는 표정이 안 좋다.
같은 아내와 삼십 년을 넘게 산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러니 매일 같은 시간에 개를 산책 시키는 일은 책임감이 없으면 할 수 없다는 건 안다.
단추가 말을 할 줄 안다면
‘그래도 그렇지.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사정이고
개를 키우기로 했으면 개의 루틴도 지켜 줘야지 말야,’
라고 했을 것 같다.
‘내가 왔니? 네가 데려왔지.’
라고도 했으려나?
결국 그 날 단추는 산책을 나가지 못했고 오전까지 참다가 낮에 배변판에 응가를 했으며
그럼에도 원망하거나 삐뚤어지는 등의 뒤끝은 없었다.
식후 십 분정도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기사를 본 이후로 저녁을 먹은 후 K와 동네를 돈다. 둘이 나가다 하루는 단추를 데리고 나갔다.
도파민 과다분비라도 된 것처럼 단추의 걸음걸이가 평소와 달리 통통 튀는 느낌이다.
“같이 나와서 좋은가봐. 평소엔 저러지 않는데.”
그 다음 날에도 나갈 채비를 하는데 단추가 먼저 출입구쪽에 나가 서 있다.
K의 표정에 약간의 망설임이 비쳤다.
중간문이 열리자 단추가 먼저 튀어 나가 행여 들어올려질까 싶어서인지 현관문에 바싹 붙어 간절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마지못해 리드줄을 채우고 밖으로 나섰다.
단추의 발걸음은 여전히 경쾌했고 입모양은 웃고있었다.
마실하기 좋은 날씨가 얼마나 되겠나.
곧 장마가 올 거고 무더위가 시작되겠지.
개와 함께 할 수 있는 루틴, 할 수 있을 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K의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