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를 볼 때마다 K2는
“얼마나 행복한 강아지야, 매일 산책을 하고...”
라고 한다.
둘이나 되는 강쥐들을 산책시키는 일은 꽤나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게다가 이제 고령이 돼서 몸까지 불편한 고기는 개모차에 태우고 안락사를 하루 앞두고 극적으로 구조된 율무는 겁이 많아 이만저만 까다로운 게 아니다.
서울이 어디든 삼십 분이면 갈 수 있어 편리한 건 좋지만 안타깝게도 K2네 집은 집 밖에 나서면서부터 어느 방향으로든 언덕이다보니 개를 산책시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두어 번인가 그 집 개들이 우리집에 와서 집이 온통 ‘개 판’이 됐을 때 K는 누구도 서운치 않게 한 놈씩 산책을 데리고 나가는 수고를 하고는 몸져 누웠다.
그래서인지 고기는 우리집에만 오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고 사위가 말했다.
개를 매일 산책시키는 얘기가 나오면 K는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덧붙인다.
“얘는 올레도 걸었던 강아지야. 봐봐 근육이 빵빵하지?”
한 살도 되기 전 아가 단추가 얼결에 비행기 타고 제주에 실려(?)가 아저씨를 따라 산으로 바다로 걷다가 픽 쓰러진 적이 있었다는 얘기를 K는 사골처럼 우려먹는다.
이제 곧 아홉 살이 될 단추는 근육도 많이 빠졌고 몸매도 날로 펑퍼짐해져가는데도 그런다.
비오는 날, 눈오는 날, 바람이 센 날, 너무 더운 날, 추운 날, K가 오전 약속이 있는 날, 그리고 가끔 K가 나가기 싫은 날을 빼면 단추가 날마다 산책을 하는 행복한 강아지 인 것은 맞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K와 단추가 아침마다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다.
전 같으면 ‘가자!’ 한마디에 호로록 뛰어 나가 현관에서 기다리고는 하던 녀석이
근래에는 어쩐일인지 불러도 반응이 없다.
반응이 없을 뿐 아니라 며칠 전 부터는 아예 소파 위로 숨어버리기까지 한다.
옷을 입히려고 다가가면 미꾸라지처럼 쏙 빠져나가며 K의 애를 태운다.
그 날도 한바탕 실랑이 끝에 나가는 문소리를 들었는데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효~ 안 간대. 아파트 모퉁이 돌아서더니 꼼짝도 안하고 서서 버티는 거야. 겨우 똥만 뉘고 왔네.”
쪼고만 녀석한테 봉변이라도 당한 것처럼 K는 약이 올라 씩씩거렸다.
“뭐, 얘도 기분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오늘은 산책할 기분이 아니었나보지.”
어떤 날은 텅빈 아파트 공원을 내려다 보고 있는가 하면 어제는 인간들 저녁식사 하고 있을 때 소파 앞 계단에서 소파쪽을 향해 오도마니 앉아있었다. 밥 나올 시간이 되면 밥통 방향으로 그렇게 앉아있던 적은 있어도 이 모양은 도무지 의도를 알 수 없는 자세였다.
“쟤 뭐하냐?”
“벌 서는 거 같지 않아?”
죽었다 깨나도 개의 마음을 알 수는 없을 것 같은 나와 달리
K는 단추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일테면 이런 것들
내가 화장실에 가야되는데 좀 내려갈 수 있겠니?(단추를 안고 있다가.)
밥도 먹었잖아, 근데 뭐 어쩌라고.(두발서기를 하며 매달리는 단추에게)
이리 와! (자기 무릎을 탁탁 치며, 그러나 단추는 소파위에 앉아서 빤히 쳐다보기만 함)
애들하고 좀 사이좋게 놀아.(산책 중 다른 개를 만나서 으르렁거리고 왔을 때)
어쿠 어쿠 그렇게 좋아? 좀 전에 봤는데 뭐가 그렇게 좋아.(밖에서 들어왔을 때 단추의 뽀뽀세례를 받으며) 등등
묻는 말에 대답 한 번 듣기를 무한한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하는 나와는 완전 딴판이다.
그런데 가만 듣다보면 그게 참 일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추가 시든 양배추를 먹지 않는 건, 인간도 양배추는 신선해야 맛있으니 그럴테고
늘 듣던 노래도 어느 날에는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죽을 때까지 여행을 하면서 살고 싶지만 어떤 때는 그냥 내 방이 가장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단추라고 다를까?
산책이 즐거운 건 맞지만 때로는 그럴 기분이 아닐 때도 있는 거겠지.
그래도 여전히 신기한 건 한 번도 사료를 거부한 적이 없다는 거다.
먹어본 적이 없어 맛을 알 수는 없지만 아무리 맛있는 것이라도 매일 똑같은 사료를 먹어도 늘 밥 나오는 시간을 기다린다.
단추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오늘따라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