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를 하고 나왔더니 K가 물었다.
내가 뭐 드라마 속 실연당한 여주도 아니고 옷을 입은 채 샤워를 했을리 없다.
비슷한 말은 딸에게서도 들은 적이 있다.
“엄마! 세수 한다더니 수영했어?”
그러고 보니 단지 세수(얼굴을 씻는 일이니 세안이라 해야 맞겠지만 일상적으로 쓰던 말이라 세수가 더 익숙하다.)를 했을 뿐인데 건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안방 화장실 바닥이 온통 물로 흥건하다.
“그럴거면 샤워를 하지 그랬어. 으이구.”
“아우 구찮어 샤워는 아침에 한다고.”
티셔츠 목주변이 축축하다. 가슴께는 푹 젖었다.
세수하면 다 그런거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K2가 세수할 때 뒤에 서서 유심히 봤다.
손에 물을 묻혀서 얼굴을 쓰다듬듯 닦아낸다.
팔꿈치를 따라 흘러내린 물방울이 떨어졌을만도 한데 신기하게도 화장실 바닥은 깨끗하다.
K가 세수하는 장면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밖에 들리는 소리로 봐서는
“푸파파파 푸파파파!!”
나와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옷이 젖지 않은 이유는 웃옷을 다 벗고 세수를 하기 때문이다...고 추측한다.
“늙으니까 자꾸 밥을 흘려.”
엄마는 함께 식사를 할 때마다 누가 뭐라기도 전에 지레 고백을 하고는 했다.
그런데 그 것을 엄마는 가끔 단추에게 이용(?)하기도 했다.
일종의 미필적고의라고나 할까?
아무리 봐도 영양가라고는 없을 것 같은 마른사료만 먹는 단추가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엄마와는 개를 키우는 문제 때문에 아파트 단지가 떠나갈 만큼 큰소리로 싸웠던 전적이 있었다는 말을 굳이 하고 싶지는 않다. 개가 싫은 건지 개를 키우는 딸이 싫었던 건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마는 집 안에서 개를 키우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했다.
그런 사람이 식사를 할 때마다 ‘늙어서 그런 것’을 빙자해 은근슬쩍 식탁 아래로 음식을 떨어트린다.
식탁 아래에는 단추가 있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는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쏜살같이 달려들어 고기나 과일, 때로는 생선 부스러기도 주워 먹는다.
마뜩치 않지만 그러지 마시라고 할 수가 없어 짐짓 못 본체 밥만 먹는다.
늙어서 그런 거라는데 어쩌겠나. 늙는 것도 서러운데 음식을 흘린다고 구박(?)하는 후레자식이 되는 건 순식간이라는 걸 이미 경험해봐서 알고도 남는다.
생각해보니 세수를 하고 난 후 옷이 젖는 건 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속내의만 입고 세수를 했는데도 접힌 소매와 목덜미가 흠씬 젖어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려서부터 그걸 보고 자라서 그렇다기에 K2의 세안 후가 너무 멀쩡해서 설득력이 없지만 어쨌든 다음에 또 뭐라고 하면 나만 그런건 아니라고 소심하게 우겨볼 생각이다.
요즘 가끔 한 번씩 젊었던 엄마의 모습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 것은 엄마의 오십 대의 모습일 때도 있고 육십 대, 더러는 지금 나보다 훨씬 생기있던 칠십 대 모습이기도 했다.
꿈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불쑥 떠올랐다 사라진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때는 잠결에 화장실로 들어갔을 때 거울속에서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잠이 확 깼던 적도 있다. 쌍커플없는 가느다란 눈, 우뚝한 콧대, 튼실한 다리 등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팩!’하는 승질모리(?)까지 빼도 박도 못하게 아버지만 빼 닮았다는 내게 엄마의 모습이 있었던가보다.
예전에 올케는 내 목소리가 엄마 목소리하고 똑같은 거 아느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
엄마와 나는 다정한 모녀사이가 아니었다.
엄마에게는 하나 있는 딸이 성에 안찼고 나는 엄마를 보면 늘 불안하고 긴장이 됐다.
엄마와 조심스러운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지금
엄마는 딸의 기억을 하나씩 잃어가고 있고 나는 자꾸 내게 있는 엄마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인터넷 서점을 구경하다가 ‘나는 울 때마다 엄마얼굴이 된다’라는 도서 제목에 눈길이 멈췄다.
나는 울 때 어떤 모습이더라?
엄마가 우는 모습은 많이 본 것 같은데 내가 울면서 거울을 본 적은 없다.
세수를 하고 나온 모습이 엄마를 닮은 것처럼
나도 나중에 음식을 흘리면서 먹게 되겠지.
그러면서 또 엄마생각을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