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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어야 배부르지

by 이연숙



“나는 내 몫의 음식을 빨리 없애려고 먹어.”


식구들하고 밥을 먹다가 왜 그렇게 밥을 빨리 먹냐는 말에 내가 했던 말이다.

말을 해놓고 좀 이상하게 들릴 것 같아 덧붙일 말을 고르는 중인데 사위가 곧바로 맞장구를 친다.


“저도 그래요. 빨리 먹어서 치우려는 생각으로 밥을 먹어요.”


다른 식구들의 ‘그 참 희한한 소리 다 듣겠네.’ 하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이한 습관을 공감해주는 이가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좋았다.

따지고 들어가면 각각 조금씩 다른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위는 어차피 설거지와 뒷정리를 자신이 해야하니 빨리 먹고 치우고 싶다는 말이라고 했다.

내 경우에는 주로 음식을, 준비하는 입장이다보니 편하게 앉아 맛을 즐길 수 없던 예전 습관이 몸에 배서 일 수도 있고 그렇다보니 누군가와 함께 앉아 식사를 하는 상황이 어색해진 탓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맛있는게 멀리 있으면 나는 내 앞에 있는 국하고 밥만 먹는다고 말했을 때는

청중(?)들에게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왜? 덜어달라고 말하기 부끄러워서?”


K2가 물었다.


“응, 번거롭잖아.”

“하이고오...”


그런 상황이고 보니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걸 유심히 본 적이 없고

그걸 보면서 내 배가 불렀던 경험은 더더욱 없다.

물론 그 것은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자식만큼은 굶기지 않으려는 부모들의 절박한 마음에서 나온 말이겠지만 거기서부터 파생된 웃픈 얘기들이 많다.

일테면, 엄마가 좋아한다며 유학간 아들이 생선대가리만 한 박스를 보냈더라는, 우리 엄마는 뼈에 붙은 살을 제일 좋아한다며 치킨을 먹을 때마다 뼈만 남겨 주더라는, 뭐니뭐니 해도 그중 대표적인 것은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가 아닐까 한다.

나는 아직도 짜장면이 제일 맛있고 생선을 구우면 공평하게 한 토막씩 놓아주었으며 닭날개가 좋다며 윙봉만 시키는 K에게 당당하게 나는 닭 가슴살이 좋다며 한 마리로 주문하라고 말한 적도 있다.


..

나는 아이들 먹는 모습을 유심히 보지 않았지만 아이는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엄마 벌써 배부르구나?”


K2가 나의 숟가락질이 느려진 것을 눈치채고 콕 집어 말했다.


“으잉? 벌써 끝났다고요?”


주주가 한술 거든다.


“뭔소리여 내가 배가 고파서 눈도 안뜨고 을매나 허겁지겁 먹었는디.”

“에고, 새모이만큼 드시네.”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적은 없지만 식구들이 모두 모여 밥을 먹는 장면이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다.


20250708내가 먹어야 배부르지.jpg


내가 독재력이 있기는 한 것 같다.

빕스 좋아할리 없는 K의 생일에 아이들을 빕스로 초대했다.

고기 좋아하는 주주와 해산물 좋아하는 K2 모두 무난하려면 뷔페만한 것이 없다...는 건 핑계고 외식 물가가 어마무시하게 오르는 요즘 꽤 오래 가보지 못한 터라 내가 가고 싶었다.

두루 무난하기보다 둘 다 뭔가 부족할 지도 모름에도 아이들은 역시나 기쁘고 즐겁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빕스를 즐겼다.

나는 아이들이 먹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는 배가 부르지 않다.

내가 먹어야 배가 부르지.

나는 그냥, 배가 부른 것보다 함께 밥을 먹는 게 행복하다.

음...

그게, 배부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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