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타는 정수기 이름이고

by 이연숙


아침부터 나란히 차를 타고 병원에 가면서 커피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미국에서는 오달러나 하는 스타벅스 커피가 너무 비싸서 스타벅스가 망해가고 있다데?”

“우리 미국 살 때도 싼 편은 아니었잖아.”

“에이 왜, 우리커피값의 삼분의 일 밖에 안 된다며 매일, 그것도 그랑데 사이즈로 마셨잖아.”

“그때도 스타벅스 커피는 중저가였지 싼 편은 아니었어. 아무렴 메가 컴포즈커피만 하겠어?”


이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정색을 하고 반박을 하는지 기가차서 얘기를 끝내려는 의도로 내가 말했다.


“뭐 암튼 커피는 별로야. 거긴 그냥 자리가 편해서 가는거지.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면 프루타나 브리타로 가야지. 아싸! 이제 외웠다 브리타!”


운전하는 K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피식 웃고는 묵직하게 한 마디 한다.


“브리티겠지. 브리타는 정수기 이름이고.”

“@#$%^&*”


브리티는 가끔 호수 드라이브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베이커리카페다.

커피맛이 기억날만큼 특별하지는 않지만 입구에서부터 진열된 각종 빵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커피와 함께 먹고 또 한 봉지 사서 가지고 오고는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름이 도대체 외워지지 않는다는 거다,

단조로운 일상을 나날이 긴장시키는 건망증 탓이라고 하기에 이건 좀 경로를 많이 벗어난 느낌이다.

거기에는 결정적인 원인이 하나 있기는 하다.

얼마전부터 K가 이용하는, 몸에 부착하는 혈당측정기의 이름이 리브레인 것이다.

내가 처음부터 리브레를 알았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그 베이커리 카페를 말해야하는 상황에서 리브레가 먼저 나오는 거다.


“오늘 비도 오는데 호수 산책하고 추어탕 먹고 리브레에서 커피 마실까?”


라고 하면 역시나 K가 낮은 목소리로


“리브레는 내가 쓰는 거고.”


한다.

그럼 카페이름은 뭐냐고 물으면 그건 자기도 생각 안 난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면서 한사코 내가 틀린 부분은 기를쓰고 지적하고야 마는 심보가 참 고약스럽다 싶으면서도 당체 떠오르지 않는 그 카페의 이름이 늘 미스테리였다.

호수를 일년에 두 세 번 갔다 치고 그게 벌써 사년 째이지만 여전히 카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리브레? 브레니? 레브란가?

그러다 정작 그 곳에 갔을 때 ‘브리티’ 라고 쓴 간판을 보면

‘아 뭐야, 그렇게 어려운 이름도 아니네.를 열여섯 번쯤 한 것 같은데 그 쉬운 이름이 그 곳을 떠난 이후에는 다시 까맣게 지워진다는 거다.

그랬었는데, 오늘아침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이 술술 나와서 스스로 뿌듯해서 나도 모르게 흥분을 했다.

’브리타‘라고 확신에 찬 단어를 내 뱉는 순간 K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20250711브리타는 정수기 이름이고.jpg


최근에 동네에 새로 오피스텔 건물에 입주가 시작됐다.

입주를 시작하고도 일층 상가는 한동안 비어있었다.

저녁 산책을 할 때마다 코스를 이리저리 바꾸는 K가 그 날은 세탁 맡긴 운동화를 찾는다며 방향을 틀었다.

작년 여름에 큰 도로 횡단보도마다 길을 막고 홍보에 열을 올리던 그 오피스텔주변이 무척 깨끗해졌다.

다가가보니 얼마전까지만 해도 휑하던 일층 상가 입구에 근사한 현수막 간판이 서 있고 대체적으로 어두운 조명이 가게 안에서 은은하게 비치고 있었다.


“어? 여기 입주했네?”

“응 내가 말 안 했구나? 여기 카페 생겼어.”

“아, 카페야?”

“커피 마시고 갈래?”


라면 먹고 갈래 만큼이나 유혹적인 소리였다. 마다할 이유가 없어 성큼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가본 적은 없지만 TV에서 봤던 우아하고 분위기 있는 고오급 와인바 느낌이었다. 세련된 소파좌석과 좌석사이는 멀찍이 떨어져있어 시원했고 특별한 전망은 없지만 통유리 창은 근사했다. 커피값까지 착하기를 바란다면 양심없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특별하지도 그렇다고 특별하지 않지도 않은 그 곳의 커피값은 사악했다.

저녁시간이라 나는 딸기라떼를 K는 일관성있게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다행히 한 입 맛본 커피맛은 훌륭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어쩌다 한 번쯤은 후덜덜한 커피값을 내고라도 오고싶은 맛이었다.

그.런.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K2가 집에 왔을 때, 동네에 맛있는 커피집이 생겼다고 말하면서 그런데 이름은 모른다고 했다. 내 말을 들으면서 검색을 한 사위가 000 라고 해서 맞아, 그런 것 같아, 라고 말하고선 또 잊어버렸다.

오늘아침 커피집 얘기를 하면서 프루타 브리타와 함께 그 카페도 말하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헷갈리는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뭐 그냥, 그 커피 생각이 나면 가면 되지, 라고 생각하다가 불쑥 심술이 낫다.


’아 왜! 도대체! 뭐 때문에! 우짜자고! 커피집 이름을 그렇게 어렵게 짓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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