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코에서 미국 냄새가 났다

by 이연숙


미국에서 처음 코스트코에 갔을 때가 생각이 난다.

도심 외곽에 위치한 그 곳은 단층의,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게 큰 창고건물이었다.

주차 건물이 필요할리 없으니 평지에 있는 주차장은 끝도 없이 넓었다.

차간 간격도 널찍해서 그 곳에서라면 문콕 같은 상황이 벌어질 일도 없겠다 싶었다.

그렇다보니 차를 세우고도, 칠 월 그 무시무시한 캘리포니아 땡볕 아래서 한참을 걸어야 매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네 식구가 좀비처럼 몰려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K가 요란하게 재채기를 했다.

K의 재채기 소리는 주차광장을 건너가 메아리로 되돌아올만큼 위력이 대단했다.

저 쪽에서 장을 보고 카트 가득 물건을 싣고 나오던 피부가 하얀 미국 여자가 또렷한 목소리로 뭐라고 하고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생긋 웃으며 지나간다.


“뭐랬어?”

“블레스유래.”

“하이쿠우~ 얼마나 요란했으면.”


한차례 와르르 웃고 지나갔던 그 여름의 코스트코 장면이 지금도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일년 사는 동안 정작 그 곳에 장을 보러 간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식재료는 대부분 집근처 마트나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국인 마트를 이용하고는 했다.

코스트코에서는 주로 대용량 맥주와 와인을 샀다.

한국에서 만든 멤버십카드를 미국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미리 만들었는데

쓸 수는 있었지만 결제할 때마다 직원의 확인이 필요한 것이 번거롭기는 했다.

그럼에도 코스트코에 갈 때가 나는 좋았다.

크고 풍부하고 다양하면서도 뭔가 거칠고 기교없는 단순 심플한 느낌이 좋았나보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몇 번인가 맥주와 와인을 사러 갔는데 두 세 번 멤버십 갱신을 하다가 연회비도 오르고 결제카드도 바뀐 후에는 해지를 했었다. 식구도 줄었고 집에서 멀어지기도 했고 게다가 일년이면 두 세 번 가는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에 아쉬울 것도 없어 꽤 오래 잊고 있었다.


20250715코스트코에서 미국냄새가 났다.jpeg


벌써 십이 년이 지났다.

나도 십이 년 만큼 나이가 많아졌다.

이십 대였던 아이들은 결혼했고 K는 퇴직했으며 그 사이 이사를 세 번했다.

이삿짐을 정리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미국에 살 때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이 나왔다.

옷, 신발이 있고 대학교구경을 갈 때마다 구입했던 연필이며 머그컵 집업도 나왔다.

버릴까 하다가 다시 넣어두었던 커뮤니티 스쿨 강사가 준 영어교재도 책장 한 칸을 차지했다.

그 중 가장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은 스타벅스 머그컵이다.

지금은 두기에는 부피가 너무 크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장식장 아래칸을 차지하고 있다. 그 때는, 언제 또 오겠냐며 가는 도시마다 유아히어 컵을 보이는대로 사들였었다. 시애틀에 갔을 때는 스타벅스 일호점에 가서 컵에 텀블러에 원두까지 사기위해 (줄서기가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이) 줄을 섰었다.

K와 생각이 다른 부분이 어디 한두 가지겠나마는 기념으로 구입했던 물건들에 대한 생각의 차이 또한 달라도 아주 많이 다르다.

어떤 물건이든 구입을 하면 그 즉시 상표를 떼고 사용을 개시하는 K와 달리

나는 그릇이면 깨질까봐, 노트는 다 쓰고 나면 버려야하니까, 금장 테를 두른 티팟이며 찻잔등은 금장이 벗겨질까봐 쓰지 못한다. 세탁을 할수록 변형되는 옷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K가 그라나다에서 사온 커플머그컵을 깼을 때 눈앞이 캄캄해진 나와는 달리 K는 쓰던 소주잔 하나 깨진것처럼 덤덤했다.

그러면서 던진 한 마디가 더 황당하다.


“깨야 또 사지.”

“아! 진짜 이 싸람이!@#$%^&*”


그렇게 하나 둘씩 사라지는 물건들과 함께 미국에 대한 기억들도 희미해졌다고 생각했다.

아들과 함께 가기로 약속도 했었고 둘이서라도 가자고 예약까지 했었지만 결국 불발 된 그 곳에 이제 다시 갈일은 없을 거라 마음 먹으니 차라리 편했다.

그래서 코스트코에 가고 싶었다.

미국에 갈 수 없으니 미국 느낌이 비슷한 곳을 생각하다가 그 곳이 떠올랐다.

다시 회원권을 만들어야하는 과정도 번거롭고 요즘 공부한다고 도서관 출근하는 K의 시간도 사정해야했지만 그래도 가고싶었다.

예전에 준비없이 갔다가 갑자기 카드에 넣을 사진을 찍어서 현상수배범처럼 나왔던 것이 기억나 머리도 깔끔하게 묶고 사진을 찍을 때는 살짝 미소도 띄었다.

여전히 시커무리하지만 사진은 마음에 들었다.

그 사이 연회비는 세 배쯤으로 올랐고 입구에서는 직원대신 스캐너가 회원권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 매장은 미국처럼 단층 구조라 무척 넓었다. 카트를 밀며 입구에서 들어서는 순간


“엇! 미국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미국 냄새는 어떤 냄샌데?”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 기분은 어쩐지 촉촉해지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레드 화이트와인 각각 하나씩 그리고 맥주와 메모해온 식재료를 카트에 담고 스낵코너를 기웃거렸다. 피자 핫도그 양송이 스프 모두 미국에서와 같았다.


“조각피자 하나 살까?”

“한 판을 사야지.”


K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다. 내 기억으로 피자 한 판이면 거의 파티사이즈였는데.

실제로 나온 피자박스를 보고서야 K의 기억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십이 년전 나에게 미국은 탈출이자 자유였고 살면서 나도 몰랐던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았던 공간이었다.

한 달은 짧았을 테고 십 년은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모 배우의 말에서

돈은 없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이라 비로서 나로 살 수 있었나보다.

그래서 나는 요즘 가끔

그 때가 가슴 시리게 그리울 때가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브리타는 정수기 이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