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윙봉은 질리셨나봐요?

by 이연숙



소설 수업을 할 때 멤버 중 A가 동네 단골 세탁소에서 일어난 자잘한 이야기를 소재로 쓴 글을 합평하는 중이었다. 이야기는 단골에 대해 흘러가던 중 B가 말했다.


“난 어디든 가게 주인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하면 그 곳에 다시 안 가요.”


‘아니 왜?’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멤버 둘, ‘나도 그래’라는 공감파가 둘이 되어 어느 덧 단골에 대한 취향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아니 왜? 알아봐주면 좋은 거 아닌가?”

“불편하더라구요, 그래서 난 스타벅스도 같은 곳에 잘 안 가잖아요.”


핑퐁게임 관람하듯 이쪽 저쪽 고개를 돌려가며 듣고만 있던, 나는 어떤 쪽일까 생각해봤지만 그 때만 해도 잘 몰랐다.

어렸을 때는 아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기한이 되었는데 방을 빼지 않는 세입자와 엄마가 싸울 때, 집수리를 하고 비용얘기를 하다가 언성이 높아지면서, 여자 혼자라고 무시한다며 엄마가 울 때, 자다가 오줌을 누려고 요강을 끌어당기다 엎어서 팬티바람으로 방 밖으로 쫒겨났을 때 (겨울 밤 바람이 추워서 였는지 각 방마다에서 빼꼼히 문열고 내다보는 사람들에게 창피해서였는지, 그 때는 딱 죽고 싶었다.) 누군가, 삼촌이나 아빠 친구 혹은 옆집 아저씨 같은 건장한 사람이 대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모든 상황을 해결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얘기지만 어쩌자고 그 때는 그런 상상을 하고는 했다.

B의 그 다음 얘기는 다소 의아했다.

그 무렵 B는 서울과 경기도 사이 휑한 동네에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했다고 했다.

그가 자주 글쓰러 간다는 스타벅스가 있을 리 없고 상가는 텅 비어있다가 겨우 편의점 하나가 들어 온 것은 두 달이 지나서였다고 했다. 장은 대부분 외출에서 돌아올 때 봤고 편의점에는 밤 늦게 맥주나 라면을 사러 두 어번 간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런데 하루는 오전시간에 그 곳에 들렀는데 직원이 알아보는 듯한 인사를 하더란다.

이후로 그 편의점에 다시 가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편의점이 입주 했을까? 작은 마트라도 생겼을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세대수가 그리 많지 않은 단지라서 그 후로도 한참동안 빈 상가가 많다는 얘기를 다른 얘기를 하던 중에 들었던 것 같다.

그 때는 뭐 굳이 그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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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음식을 잘 먹는 편이다. 그래도 구색은 맞춰야했는지 자기는 닭은 즐기지 않는다는 말을 묻지도 않았는데 자주 했었다.

그렇다고 삼계탕이나 백숙 혹은 치맥을 먹을 기회를 사양했냐하면 그런 적은 없다.

오히려 어느 시점 부터는 축구 중계방송이 있는 날에는 치킨을 맥주와 함께 먹었다.

처음에는 그 때 그 때 먹고 싶은 메뉴를 내게 고르라고 하여 각 브랜드의 잘 나가는 치킨으로 주문했었다.

그 것이 점차 진화를 했는데, 한 마리치킨에서 윙봉으로, 브랜드는 동물복지를 우선한다거나 하루 육십마리만 튀긴다거나 고급치킨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브랜드 등으로 좁혀졌다가 요즘은 튀기는게 아닌 오븐에 구운 윙봉과 웨지감자를 추가하는 것으로 일원화되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오리지널과 오븐, 고추 등 선택의 여지는 남겨두었다.

한동안 뜸하다가 근래 들어 며칠 간격으로 축구경기가 있었다.

K는 예외없이 전화로 치킨을 주문했고 치킨을 가져오는 길에 맥주를 사 왔다.

혹시 다른 걸 먹고싶으냐고 물어 놓고도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자기가 축구 하는 날에 저녁을 치킨으로 먹자고 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딱 하나 좋아하지 않는 음식인 치킨을 그 정도 간격으로 자주 먹는 K가 결코 치킨 싫어하는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던 차라 말해주겠다고 하니 조금 궁금하기는 했다.


“당신 때문이지. 축구하는 날에는 채널권을 뺏기는 거니까 그 보상인 셈이지.”


결국, 나를 배려해서라는 얘기였다. 여전히 K 자신은 치킨이 싫은데도 말이다.

며칠 전 한일전이 있는 날이라고 했다.

K가 치킨봉투를 들고 들어와 테이블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굽네치킨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더라?”


못알아보는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생각이 들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이제 윙봉은 질리셨나봐요?”


하더란다.

치킨박스를 열어보니 어쩐일로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왜 윙봉으로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당신이 가슴살을 좋아하니까 한 번씩 바꿔가려고 그랬다고 한다.

그리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나야 서너 조각 먹으면 끝인데, K가 윙봉에 질린 것도 아닌데 뭐 굳이.

그나저나 자기를 알아보는 그 가게에 K는 다음에도 가게 될까?

얼마전 K2와 얘기 중


“나이가 들면 사람들과 지내는게 두루 편안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뭘 하려고 하다가도 사람들을 겪어야 하는 일이 먼저 겁이 나네?”


했었다.

나는 그런데

K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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