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염으로 동네 의원에 갔을 때 커피를 마셔도 되냐고 물었다. 약을 먹느라 커피를 안 마셨더니 머리가 너무 아프더라고도 덧붙였다.
사십대 중반이나 됐을까 싶은 말끔한 인상의 의사가 표정까지 반듯하게 하며 말했다.
“커피를 안 마셔서 머리가 아프다고 또 커피를 마신다는건 뇌를 속이는 일이에요. 머리가 많이 아프면 차라리 진통제를 드세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한 편 이상하게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감기로 갔었다.
열은 없는데 오한이 들고 두통이 심하며 온 몸이 아프다고 했다.
잘생긴 의사는 그 날도 진지한 표정으로 목을 들여다보고 청진을 한 후 사흘치 약을 줄테니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다시 오라고 했다.
“감기인가요?”
보통은 간단하게라도 진단을 하는데 말이 없어서 물었을 뿐 별 뜻은 없었다.
“그게요, 증상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놓고 봐야해요. 감기 같다고해서 다 같은 감기가 아니고 독감이나 코로나 혹은 새로운 인플루엔자를 의심해 볼수도 있어서요.”
“!@#$%^&*???”
집에 와서 약봉지를 늘어놓으며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그거 참, 딱히 불친절 한 건 아닌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단 말이야.”
“거기도 C대 출신인가? 킥킥”
라고 말하며 K가 웃었다.
이 곳으로 다니기 전에는 두 블록 건너에 있는 다른 내과에 갔었다.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원장은 C대 의대출신이라고 했다.
처음 그 곳에 갔을 때는 건강검진 결과표를 가지고였다.
결과지를 대충 훑어본 의사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설명을 했다.
나도 읽은 내용을 읽어주는 수준이라, 그래서 바로 치료를 해야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건조한 표정으로 종이에 수직과 수평의 선을 그어놓고 경계를 넘지는 않았으나 넘을 수도 있다는, 나의 콜레스테롤 수치와 골감소율에 대해, 말귀 못알아 듣는 노인에게 하듯 지긋하게 강압적으로 말했다.
그 때도 집에 와서 같은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따지고 보면 틀린말은 없는데 기분이 이상하게 찜찜하네?”
그 무렵 매일 저녁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들이 그 대학 출신이라고 했는데 하는 말마다 부아를 돋우는 얘기 뿐이었다.
“아 진짜 C대 법대에서는 도대체 뭘 가르치는거야?”
라며 K를 바라보며 버럭 한마디 했다. 다른 때 갔았으면 왜 나한테 그러냐며 맞섰을 그가, 억울하지만 참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C대 잖아.”
우리동네 의사와 부아를 돋우는 국회의원들, 그리고 K사이에는 이력서에 사용할 대학명이 같을 뿐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 역시 학벌 차별주의자가 아닐 뿐 아니라 그 좋은(?)대학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학교에 대한 편을 가르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냥 순전히 우연한 공통점을 굳이 끌어다 붙였을 뿐이다.
K와 나 사이에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다.
아내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 남편들의 대표적인 성향이라고 하기에 나는 억울한 감이 조금 아니고 많이 있다.
얘기좀 하자고 해서 대화를 시작하면 딱 오 분만에 화장실이 급하거나 단추가 신기하거나 무척 졸리거나 한다는 핑계로 주의를 돌린다는 말은 이미 여러번 한 적이 있다.
질문을 하면 대답을 생략하는 건 다반사고 내가 질문했던 사실조차 잊어버렀을 때쯤 대답을 해서 어리둥절하게 하는 경우도 여러번이다.
내가 제안하는 건 일단 거절한 후 나중에 자기 생각인 것처럼 결국 실행한다거나
결정적인 건, (실수였다고 했지만) 내 번호를 차단했던 일, 톡의 내 알림음을 꺼 놨던 적도 있었고, 그리고 꼭 필요한 순간에 전화를 받지 않았던 일도 종종 있었다.
부부싸움(사실상 나 혼자 삐치고 화나고 미치는)의 구십구 퍼센트는 모두 K의 이런 습관에서 시작한다.
저녁산책을 나갈 때 브라보콘을 사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을 차려주는 걸로 시작해서 지금은 김치, 밑반찬이 떨어질 때쯤에는 뭐가 먹고 싶으냐고 묻고는 그걸 다 한다. 비가오면 교육원에 차를 태워주고 심지어 더운 날에는 걷기 운동(?)까지 대신해준다. 적은 용돈임에도 내가 갖고 싶었던 물건을 쿨하게 사 줄 때도 있었..었....다.
요 며칠 우리는 말을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얼마전 일본어 끝나고 오면서 막국수 먹을까? 라고 문자로 물었을 때 답이 없었고, 답이 없었던 이유는 지금까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와 중에 도서관을 간다고 나서면서 언제 올 건지 점심을 먹고 올건지를 말하지 않고 가서 두 시까지 점심을 굶고 기다렸던 일은 불과 사흘 전 얘기다.
왜 그렇게 말을 아끼는 걸까.
왜 나하고 말하기가 그렇게까지 싫은걸까?
따지고 보면 딱히 나쁜 남편은 아닌데, 그 참 이상하게 매번 기분이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