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꺼짐 예약을 새벽 두 시로 설정해 놓는다. 자다가 목 부근에 땀이 배는 느낌에 잠이 깨면 창문을 열어두고 다시 잠을 청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렁찬 굉음소리에 다시 잠이 깨면 새벽이구나 한다. 굉음의 정체는 쓰레기수거차 소리고 그 중 일주일에 두 번은 집게차가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느라 또 다른 방식으로 요란한 소리를 낸다. 어떤 주기인지는 모르지만 가끔은 폐가구 수거차가 오는데 짐을 싣기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가구를 일일이 분해하느라 공사장을 방불케하는 소음이 날 때도 있다. 베란다에 서서 내려다 보고 있으면 어떤 때는 정말 멀쩡한 책상이, 소파가 둔중한 헤머를 맞고 박살이 나기도 한다.
오늘은 어느 집에선가 아침으로 김치찌개를 끓이는 모양이다. 그 것은 참치가 아닌 돼지고기를 넣은 찌개냄새 같다. 어느 날에는 아침부터 생선굽는 냄새가 바로 옆집에서 굽는 것처럼 진하게 들어올 때도 있다. 바로 위층에 노인 혼자 사는 집이라 거기서 나는 거라고 추측하지만 사실 어느 집에서 오는 건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 것은 청국장일 때도 있고 어느 날은 진한 MSG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오늘은 라면을 끓이나보다 했었다.
환기를 하느라 잠깐 여는 것 말고 창문을 열어놓고 생활하는 것은 보통 봄이 무르익었을 무렵잠깐이다. 그 것도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나 꽃가루가 심한 시기를 빼면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는 날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지난 봄 창문을 열어 놓고 있을 때 창 밖에서 요란한 재채기 소리가 들렸다.
그 때 마치 잊고 있던 지인의 목소리를 들은 것처럼 반갑고 또 한 편 짜증이 났다.
설마설마 했는데 그 소리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한 번 시작하면 최소 스무 번이상(언젠가 한 번 세 본적이 있는데 스무 번까지 세고 포기했었던) 연거푸 아파트 광장을 쩌렁쩌렁 울리던 그 소리였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또 그 전 해에도, 저 사람 괜찮을까? 저렇게 재채기를 하다가는 몸안에 있는 것들이 모두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죽하면 서양사람들이 재채기하는 사람에게, 심지어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위로의 말을 할까.
이 전에 살던 집은 사층 빌라의 일층이었다. 사람은 모름지기 지기(地氣)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K의 깊은뜻(?)이 반영된 집이었다.
그 지역의 특색은 녹지가 많다는 점이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살던 단지는 숲처럼 무성한 나무가 많을 뿐 아니라 봄이 되면 갖가지 꽃이 릴레이하듯 피었다.
첫 해 여름 밤에 딸과 에어컨을 켠 거실에서 자려고 누웠을 때 잔뜩 긴장을 해서 한 숨도 못잤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가느다란 채넬지지대위에 나무 선반을 얹고 책을 빽빽이 꽂아 놓은 책벽이 무너질까 두려웠고 그 다음에는 에어컨을 끈 후 창문을 열어 놓고 그 창문으로 누군가 저벅저벅 들어올까봐 온 신경이 곤두섰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 창문을 열어놓고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집에선가 피아노 소리가 났다. 일정한 부분을 되풀이 하는 것으로 보아 가정레슨을 하는 집인 것 같았다.
피아노 레슨 받을 아이가 없는 상태인지 무척 오래 되었으므로 그 소리가 꽤나 정겹게 들렸다. 내가 보기엔 그 동네는 산책할 코스가 너무 많아서 선택 장애가 있을 지경인데 어찌된 일인지 두세 명의 동네 친구로 보이는 무리가 우리 동과 나란히 선 옆동을 길게 여러바퀴 도는 것으로 운동을 하는 모양이었다. 가끔은 창 밖을 내다보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여자가 셋이 혹은 둘이 걷는데 당연히 수다가 빠질리 없다. 들으려고 했던 것도 아닌데 때리는 시어머니 말리는 시누이 얘기, 말귀를 못알아듣는 남편 얘기, 대회에서 상 탄 아들 얘기 사춘기에 들어간 딸 얘기 등등 소재도 무궁무진했다.
산책할 데가 얼마나 많은데 남의 집 앞을 저렇게 왔다갔다 하냐며 K는 볼멘소리를 했지만 나는 그 소리가 어쩐지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늘 스스로 해 왔던 사촌언니가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홀로 산골로 간다고 했을 때 무척 부러웠다.
직원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 근무하는게 지겨워서 그만 뒀다는 직장 후배 S에게는 그 런 곳있음 나 소개해달라고 했었다.
단추와 산책을 하려고 될수록 사람 안 다니는 길을 찾았을 때 무척 뿌듯했다.
틈만나면 부동산 사이트에서 꼭 시골이 아니더라도 복잡하지 않은 호젓한 동네를 찾아보곤 했다.
나는 자발적이 아닌 태생적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었다.
언젠가부터 K2는 ‘엄마는 도시형 인간이야. 한적한 곳에 살면 안 돼.’ 라고 한다.
그런가하면, 캐나다여행은 대자연을 보러가는 거라 싫다고 했던 K2가 지난 주에 개 둘 우리집에 맡겨 놓고 이탈리아 돌로미테로 여행을 갔다.
고작 옹색하게 끄집어낸 표현으로, 엽서같은 하늘과 구름, 산, 계곡 사진을 날마다 보내며 행복해한다.
시골주의자였던 엄마는 창문을 열어 놓았을 때 들리는 바깥 소리며 냄새, 풍경이 정겨워졌고
도시주의자인 딸은 영끌해서 사 놓은 서울집 비워놓고 먼나라 대자연 속을 날마다 걷고 있다.
상황은 바뀌게 마련이다.
취향은 변한다.
사람이 달라지기도 한다.
어쨌든 지금은 창문을 열어 놓았을 때 생기는 일들이
이 곳이 사람 사는 동네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