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는 생일이 몰려있다.
그나마 K의 생일이 6월에 있지만 결국 네 식구 모두가 여름에 태어난 셈이다.
아이들 어렸을 때에는 여름이면 집에 미역국 끓이는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올해 생일 아침에는 K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었다.
그 다음, K2는 생일 무렵 이탈리아 여행중이었다.
아침에 약간의 축하금과 축하 메시지를 보냈더니 오후가 돼서 굳모닝이라며 답이 왔다.
낳아주셔서 고맙다고 했다.
엄마 덕분에 그런 좋은 여행도 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게 왜 내 덕분이냐고 물으니 엄마가 낳아줬으니 그렇다고 했다.
날카로운 송곳 끝으로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 그럼 나도 엄마한테 고마워야긋네.
어색한 마음을 급하게 수습해보려다 그렇게 썼다.
뭐 그건 엄마 맘이지, 나는 울엄마한테만 고마우야지.
엄마를 생각하면 고맙고, 미안하고, 불쌍하고, 안쓰럽고, 생각하면 그냥 마음이 아프다.
그런 정서는 아동기 사춘기 청년 중년을 지나 장년기가 된 지금도 역시 그렇다.
어느 무렵부터는 그 감정에 뒤따라 서러움 억울함 가끔은 잠깐잠깐 원망하는 마음이 끼어들기도 하는데 어떻게 된 건지 그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는게 아니라 점점 선명해진다.
주된 의문이 ‘엄마는 나한테 왜 그랬을까.’ ‘꼭 그렇게까지 해야했을까?’ ‘내가 안쓰러웠던 적은 정말 한 번도 없을까?’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을까.’ 라는 지점까지 가면 명치께가 뜨거워져서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왜 이제야 그런마음이 사무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좀 더 일찍 내 감정을 들여다보았더라면, 엄마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받을 때 그 즉시 예쁜말로 내 마음을 말했더라면 달라졌을까.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지금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 두더지처럼 불쑥 튀어오르는 아픈 기억들에 의연해지기 위해 엄마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중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매 순간, 내가 잘 못하고 있는 건가, 나중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후회를 하게 되는 건 아닐까 등 자책과 불안한 마음이 카드청구서 처럼 어김없이 찾아온다.
해마다 생일이 있는 달에는 몸이 아팠다.
아이가 여행을 가면서 맡겨놓은 개 두 마리와 함께 정신없이 2주를 보냈다.
올해 열한 살, 허리디스크로 몸이 불편한 으르신(?) 웰시코기와 성격 까칠한 한 살짜리 유기견 그리고 그나마 평범하지만 전형적인 푸들 우리 단추까지, 신기할 정도로 각각 개성이 다른 아이들은 잘 어울리지 못했다. 결국 동거시작 이틀만에 박힌돌 단추를 K1집으로 피신을 보냈다.
남은 두 녀석은 서로 충돌은 없었지만 국보급 샘쟁이에 식탐 또한 남달라서 그저 무심하게 지내기 어려운 아이들이었다. 수시로 놀아주고 만져주고 게다가 마음을 다친 유기견 출신 아이와는 소통이 어려워 줄곧 조심스럽게 대해야 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2주도 지나가고 어제는 아이들이 집에와서 개 들을 데려 갔고 드디어 단추도 집으로 돌아왔다. 이 얘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올해 칠월은 정신없이 보내느라 아플 겨를도 없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칠월이 무사히 지나가나보다 했다.
그런데 단추의 행동이 달라졌다. 뭔가 특유의 생기가 사라진 느낌이다. 잔뜩 주눅이 든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이 주만에 만난 주인을 본체만체 자꾸 구석을 찾아 잠만 자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단추 입장에서 보면 자기 영역에서 엄한 놈들 때문에 정작 자기가 쫓겨난 기분일 수 있겠다. 그런 주인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자기를 예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 라고 생각을 하니 미안해서 마음이 아팠다.
오늘은 일본어 수업이 있는 날이었고 낮기온이 36도까지 올랐었다.
오후 일정이 있는 K와 시내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훅하고 끼치는 열기에 숨이 막히고 걸음이 잘 걸어지지 않아 버스를 타려고보니 정류장이너무 멀었다.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습관처럼 평소에 걸어다니던 길로 접어들었던 거다.
집에 와서 결국 앓아 누웠다.
자고 또 자도 자꾸 졸렸다.
27도로 설정해놓은 에어컨 바람에 몸이 시렸다. 담요를 덮으면 열이 났고 치우면 추웠다.
엄마가 보고싶었다.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화를 하려다 그만두었다.
엄마와의 이 거리는 언제쯤 좁혀질른지, 그런 날이 오기는 올건지, 이 상황이 슬프고 답답하다.
드라마에서 천국에 간 팔십대 딸이 환생을 앞에 두고 자기를 낳아준 엄마에게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그 말을 내 엄마에게 하고 싶었다.
“다음번엔 나 실컷 이뻐해주라,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