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으로 달아 놔

by 이연숙



어쩌다보니 빚쟁이가 됐다.

K가 쿠팡 유료회원으로 가입한 이유는 축구중계방송 때문이었다.

TV는 지상파 4사 여섯 개 채널만 보기도 버겁고 화제가 되는 드라마나 예능은 OTT로 보면 되니까 크게 아쉬운 건 없었다.

문제는 축구 덕후 K였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거실에 스크린을 펼치고 컴퓨터를 프로젝터에 연결하고 스피커를 켜는 등 K가 무척 분주해진다. 와중에 치킨과 맥주를 준비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스포츠 중계가 지상파에서 방송하지 않는지 조차 몰랐기 때문에 그저 중계화면을 크게 보려고 그러나보다 했었다. 스포츠 관심없는 나로서는 그런 번잡을 감수하면서까지 축구 사랑 나라사랑을 실천하는 그가 감동스러울 뿐이었다.

어느 날, 피곤해서 일찍 잘 거니까 그냥 방으로 TV가져가서 조용히 보라고 했다.

안 그래도 큰 눈을 휘둥그레 뜨며 TV가 아니라 쿠팡플레이에서 하는 거라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잠시 회로가 중지 된 듯 눈만 끔벅거렸다.


“그럼 유료회원이라는 말이네?”

“그르치.”


덧붙여 회비는 삼천원 가량 밖에 안 하고 쿠팡은 무료배송이라고 했다.


“음식 배달도?”

“그럴걸?”


그 때부터였다. 이제까지 액면 그대로 주문하던 음식 배달주문을 K가 하게 된 것이.

얼마 후 회비가 올랐다고 아홉시 뉴스에서까지 나왔지만 그래도 배송료 무료에 할인도 되고 캐시백까지 된다고 하니 그걸 안 할 이유가 없었다.

하여 이후로 메뉴는 내가 고르고 주문은 K가 했다.

엄연히 결제수단이 다르니 주문후 요금을 내가 이체해주는 방식으로 였다.

그런데 그 것이

인간이 배고플 때 마음하고 배부를 때 마음이 바뀐 탓인지

처음에는 속전속결, 주문하고 바로 입금하는 것으로 ‘나 확실한 사람이야.’라며 의기양양했는데 회가 거듭하면서 입금 속도가 더뎌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오리발을 내미는 상황까지 오고야 말았다.


“그걸 언제 먹었는데? 내가 입금 안했나?”


등등. 사실 내가 그리 뻔뻔하거나 경우없는 사람은 아니라서, 먹고 떼먹었다기 보다는 부실한 기억력이 원인이라는 편이 맞겠다.

본의아니게 빚쟁이가 된 다른 하나는 시장에서 장보기였다.

정작 시장가기를 좋아했던 건 나였는데 요즘은 K가 주로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간다.

걷기운동을 하는 길에 들르거나 차를 타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가는 길에 들렀을 때는 산 물건을 들고 오기가 힘이 들고 차를 가져갔을 때는 주차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결국 K가 혼자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재래시장이다보니 현금 거래가 많고 혹 신용카드 이용이 가능한 곳에서도 현금일 때 할인을 해줄 때가 많다.

이 경우에도 내가 현금을 가지고 있을리 없으니 대부분 K가 선결제 후 내가 후입금을 하고는 했다. 보통 만 얼마 이만 얼마 정도로 한 번 이용한 금액이 크지는 않지만 그게 쌓이다보니 K의 재정에 타격(?)이 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생활비 입금이 되는 날 일정 금액을 미리 이체하는 것으로 정리를 했었다.


냉동실을 비롯해서 냉장고가 비어가고 다 먹은 반찬통이 쌓이는 것을 볼 때 하던 걱정을 이제는 나대신 K주부가 먼저 한다. 그런 K의 마음과는 반대로 나는 휑해지는 냉장고를 보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배추김치도 하고 반찬도 몇 가지 만들어야겠다며 K가 장을 보러 간다고 준비를 했다.

나는 TV를 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배추랑 양배추, 양파를 넣어올 수 있겠냐며 K가 백팩을 들어올려 보였다.

나는 얼핏 눈길 한 번 주면서 배추랑 양배추는 몰라도 양파까지는 안 될 거라고, 눈길은 여전히 TV에 둔 채 말했다.

다녀온다며 출입문 앞에 선 그가 다시 물었다.


“카드 안 주나?”

“어? 그냥 내 앞으로 달아 놔.”

“지난 번 점심 먹은 것도 안 주구선...!@#$%^&”


뭐라는지 잘 들리지 않는 말을 구시렁 거리면서 K는 마트로 갔다.

이런 경우를 두고 엄마는

‘팥이 터져봤자 그 솥안에 있지.’

라고 했었다.

‘그렇지 네가 쓰든 내가 쓰든 결국 다 여기 있는 거지.’

만두를 쪄도 될 것 같은 이 잔인한 날씨에 밖에 한 번 나갔다오면 입은 옷이 흠씬 젖는 K가

잘생긴 배추 한 통과 양배추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대신 내가 집안 일을 한 적은 있어도

누군가 힘든 일을 나 대신 해 준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나를 대신해 시장에 가기도 하고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며

심지어 내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던

나는 TV를 보고 주방에서는 누군가 김치를 담그는 그런 일이 내게도 벌어지고 있는 거다.

그런 그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고마워.”


20250802.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다음번엔 나 실컷 이뻐해주라,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