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끔했다.
설렘대신 골골대며 가을을 맞았다. 여기 저기 병원 돌려막기를 하느라 오히려 병이 더 날 지경이었다.
그러느라 노트북 펼쳐놓고 글을 쓴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나름 올해들어서는 꽤 오래 주 2회 글을 쓸거라는 계획을 잘 실천했었다.
그걸 가지고 하는 말인가 하는 한 편 ‘절필’이라는 고상한 표현 씩이나 써주는 K가 고마운 마음 쪼끔, 이어서 밀려오는 민망함에 손가락이 오글거렸다.
민망함은 그의 다음 말을 들은 후 제대로 현타로 바뀌었다.
“절필은 무슨... 근데 갑자기 왜?”
괜히 쭈글해져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물었더니, 다용도실 문을 닫고 돌아오면서 K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연필을 몽땅 버리셨길레.”
방금전 K가 단추와 산책을 나갔을 때 책상정리를 했다. 필기도구 함을 뒤집어 정리를 하면서 언제든 쓰겠지 하며 꽂아두었던 몽당연필들을 모두 꺼내 버렸다.
단추 발 닦은 휴지를 버리면서 그걸 본 모양이었다.
“연필을 꺾었어야 절필이지 그건 그냥 버린 거잖아.”
멋쩍음에 되는대로 아무 말이나 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아침, 문장 근육좀 기르라는 브런치팀의 알림이 왔다.
한동안 소원하기는 했지만 그게 벌써 이 주나 지났다는게 놀라웠다.
[자기앞의 생]에서 로자 아줌마는 자기는 절대로 암에는 걸리기 싫다고 했다.
다행(?)히 암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치매에 걸려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오래전에 친구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이다음에 나이 들어서 건강이 나빠지더라도 시력만은 남아있으면 좋겠다고.
다리가 아파서 걸을 수 없거나, 귀가 어두워져서 잘 들을 수 없어도 보이지 않으면 책을 읽을수도 글을 쓸 수도 없을 것 같아서그랬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다리가 아프니 밖에 나갈 수 없고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생각이 제자리를 맴돈다.
허리가 아프니 앉아있기도 힘들고 누워도 괴롭고 서있기도 힘이 빠진다.
위가 아파 커피를 마실 수 없으니 머리도 아프고 머리가 아프니 생각이 모아지지 않는다.
볼 수만 있다고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니고 머리카락부터 새끼발가락까지 모두
있는줄도 모르게 제자리에서 각자 할 일을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게 없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저장되지 않은 개인 번호로 전화가 왔다.
보통은 받지 않는데 최근에 바느질거리를 맡겨놓고 완성되면 전화준다는 말에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렸다. 그러느라 여름도 다 지나가고 추석도 지나고 계절이 바뀌었다.
며칠 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와서 거절을 누른 다는 것이 통화버튼으로 미끄러졌다.
“......”
“여보세요? 매트리스 커버 맡기셨죠?”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 수선을 떨었다.
“아 예~ 완성돠면 전화주신다더니 연락이 없어서 잊어버리신 줄 알았어요.”
“아유 웬걸요. 전화를 몇 번을 했는데도 안 받으셔서 어디 해외라도 나가신 줄 알았죠.”
그래서 받았다. 그리고는 이상하지만 저 쪽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여보세요? 여기 우체국인데요. 000님에게 등기 우편이 있어서요. 지금 집에 계신가요?”
“네.”
“반드시 본인이 수령을 해야해서요.”
“네,”
“지금 거기 와 있는 건 아니고요, 한 시간쯤 걸릴거예요.”
“네, 근데 어디서 발송한 등기인가요?”
“동부지법이에요.”
순간 쎄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뭐 소송을 당했나? 하다가, 근데 어째 집배원이라면서 주변 소음이 전혀 없네? 했다.
그러다 우체국에서라면 택배는 물론 소포도 미리 문자 연락을 주는데 등기를? 그냥 온다고?
한 편 겁도 나고 한 편 궁금하기도 했다.
한 시간이 지나도 등기는 오지 않았다.
아마도 겁에 질려 왜 안오냐고 회신 전화를 했어야 하는 각본이었나보다.
무슨 상황인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전화를 다시 하지 않은 건 잘한 것 같다.
체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져가지만 아직 정신은 쓸만 한 것 같기도 하다.
절필 했냐고요?
아니요, 나는 그냥
죽을 때까지 쓰려고요.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이 천천히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