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에세이 코너를 돌아볼 때, 제목에 ‘엄마’가 들어있는 것은 무조건 제외하는 습관이 있다.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출간 책 이름이 ‘엄마 덕분입니다’ 인데도 그렇다.
그런가하면 TV든, 책이든,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서든 엄마 관련 얘기가 나올 때는 숨길 사이도 없이 왈칵 눈물이 쏟아질 때도 있다.
이 번에는 시어머니였다.
시누이와 어머니 같이 앉아서 올해 대학에 들어간 시누이 딸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난 딸한테 우리 엄마처럼 해주지 못했어요.”
우리 어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첫 손주, 즉 형님네 첫 아이를 거의 땅에 발을 디뎌볼 틈 없을 정도로 귀하게 키우셨다. 물론 어머니 뿐만은 아니었다. 그 당시 직장에 다니고 있던 두 고모들과 삼촌까지 아이없던 집에 첫 아이를 어화둥둥 함께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어나서부터 엄마와 외할머니를 제외한 (심지어 아빠까지) 모든 사람들의 손이 닿는걸 결사적으로 싫어하던 K2를 빼고 목욕하다 할머니한테 등싸대기 한 번 안 맞아본 아이는 없다.
큰 집 두아이는 그야말로 조부모님의 물적 심적 사랑을 넘치게 받았으며 우리집 첫아이 K1은 그에 비하면 매우 빈약하지만 나름 할머니가 갈아준 사과정도는 먹고 자랐다.
작은 시누이의 아들을 세 살까지 키워준 것이 마지막이려니 했는데 이번에는 큰 시누이가 느즈막이 어렵게 얻은 손녀를 지금까지 키우고 있는 셈이다.
사실 어느 시점부터는 할머니가 키운다기보다 손녀가 조부모님을 돌보는 것 같은 상황이 되기는 했지만.
시누이 말은, 매우 보수적이고 원칙을 고수하는 어머니처럼 딸을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고 될수록 딸이 하고싶은대로 둔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아이가 밝은 것 같다고, 언제 저렇게 컸나 싶은데 벌써 제 할 일 알아서 딱딱 하는 걱 보니 참 잘 자란 것 같다고 했더니, 그거야 엄마가 잘 키워줬으니 그렇죠. 라고 한다.
‘아, 그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라는 말을 소리내서 하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사남매를 완전히 손 안에 휘어잡고 키웠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신다.
사춘기 시절 큰 아들과 큰 딸이 잠깐 일탈을 했었다는 얘기를 하며 나는 한 번 눈에 난 사람은 절대 다시 보지 않는다고 말할 때 어머니의 굳게 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난 어머니의 자녀 양육 방식이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엄마의 엄마도 엄마를 귀하게 키우셔서 엄마도 나를 그렇게 키우셨는데 나는 00이 한테 그렇게 못 해줬거든요.”
그 때 잠자코 듣고 있던 어머니가 뭔가 생각난 듯 한 말씀을 하셨다.
“@#$%^& 이걸 누굴 주나 했는데.”
“엄마, 뭐라고?”
“늬 할머니가 말야, 내가 마루에 앉아있는데 머리를 빗겨주면서 ‘이 이쁜 걸 누굴 주나.’그랬다고. ”
가슴 안에서 뭔가 툭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육이오때 헤어졌다는 시 외할머니가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엄마가 그렇듯 살뜰한 말을 딸에게 해 주었을까.
누구나 엄마에게서 그런 말은 다 듣고 자라는 거 아니야? 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고
그건 특별한 거지, 그 시절 아이들, 엄마한테 그런 달달한 말 듣고 자란 사람 없어. 다 그렇게 살았어. 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마음이 아팠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들을 마음아파하느라 곁에 있던 딸을 봐주지 않던 엄마가 임종을 앞두고
힘겨운 목소리로 ‘외롭게 해서 미안해.’ 라고 말했다. 세상을 향해 독을 품었던 딸은 엄마의 그 한 마디에 무너졌다. 드라마였지만 그 딸이 부러웠다.
동생은 매일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가 행복해 보여서 좋다고 했다.
기대한 적도 없었지만 이제는 엄마에게서 이쁜 딸이라거나 외롭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수는 없게 된 것이 먼저 떠오르는 나는 아마도 좋은 딸은 아닌 것 같다.
자꾸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이 이쁜 걸 누구한테 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