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K는 친구사이에서 꽤나 ‘재수없는 자’였을지도 모르겠다.
배운 적도 없는데 한글이 저절로 알아졌다는 것으로 시작해서
초등학교 때 선생님한테 매를 맞고 왔다고 해서 엄니가 화가나서 좇아 가니(그 시절에도 우리 엄니 자식사랑에는 물불 안 가리심) 선생님도 모르는 교과서 내용을 K어린이가 따박따박 따지고 들어서 그랬다나 뭐라나. 따진게 문제인지 선생님 자존심이 긁힌게 문제인지는 선생님만 알 일이다. 중학교 때까지 시험성적은 늘 일 등이었고 진학 취업등 시험에 떨어져본 적이 없었다, 고 했다.
그런 그가 몇 개월 전부터 한 자격증 시험에 도전할 거라고 했었다.
역시 몸을 쓰는 일보다는 공부를 하는 편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는 그런가보다 했다.
집에서는 공부가 안 된다며 지역 도서관에 간다고 매일 가방을 싸서 집을 나섰다.
나하고 같이 스타벅스에 가서 하자고 했더니 그건 집중이 안 돼서 싫다고 했다.
어디는 구내식당이 없고 다른 곳은 너무 언덕 위에 있고 또 한 곳은 식당이 있기는 한데 먹을만한게 없다며 이 지역에 있는 도서관을 몽땅 탐방이라도 할 기세다.
그래도 뭔가 할 일을 찾은 것 같아 마음으로 응원하는 날들이 한동안 지속되...
나보다 했는데 어째 그의 얼굴은 날마다 흑색으로 변하는 느낌이다.
“내가 뭘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어. 분명히 읽었는데 하나도 남은 게 없어.”
나도 해봐서 안다, 눈으로 읽는 동안 훨훨 휘발되어버린다, 다시 읽어도, 아이고오! 처음 보는 문장이네 한다, 그러니 일본어 공부한다고 삼 년을 가방메고 다녔으나 짧은 인사 한 마디가 튀어나오지 않는 거 아니야, 며 쥐 고양이 생각하듯 위로를 건넸으나 그 소리가 들릴리 없다.
전례없이 핫했던 여름한 철을 끙끙거리며 보내고 드디어 시험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필 그 날이 여의도에 불꽃축제가 있는 날이란다.
불꽃축제를 보러 간다는 생각은 물론 그 무렵이 되면 주변 호텔요금 목좋은 식당요금에 이 번에는 근처 아파트 베란다까지 대여한다는 말에, 저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겼었다.
그런데 재직중 한 번이나 될까말까하는 행운이 주주에게 찾아왔다고 했다.
즉, 한강변에 있는 회사에서 불꽃쇼를 하는 날에 직원 가족들을 위해 식사와 파티를 제공하는 행사에 당첨이 됐다는 얘기였다. 초대인원은 네 명이었으므로 나와 K와 함께 갈 예정이라고 했는데 그 날이 시험이라는 말이었다.
K대신 K2가 가기로 했다.
그래놓고 날짜가 다가오면서 자꾸 흔들렸다.
“에이, 그냥 시험 보지 말고 불꽃쇼 보러 갈까?”
불꽃쇼를 꼭 보고싶어서인지 시험이 부담스러워서인지는 K선생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창 밖을 내려다보며 혼자소리를 한다.
“그거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말인지 알 것 같았다.
한 편으로 짠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취미나 특기가 될만한 일에는 딱히 잘하거나 해보고 싶은 것이 없다는 그 였지만
그래도 지적호기심이나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은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하여 얕지만 다양한 방면에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것을 굳이 겸손하게 가리지 않는 성향으로 가끔은 재수없음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 것이 또 K다... 생각하면 못참아 줄일도 아니라 스스로 그 부분에 자신감을 잃어가는 건가 싶은 그 말이 적잖이 충격이기는 했다.
K1부부와 K2 그리고 나는 그 맛있기로 유명한 H사 구내식당에서 특식으로 저녁을 먹고 환상적인 불꽃쇼를 직관하고 약간의 게임으로 받은 상품과 참가 기념품을 한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오니 K가 TV를 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톡으로 시험 잘 봤냐고 물으니 시험지(!)는 잘 봤다고 말했다.
나는 어렸을 때 자주 다리가 아프다고 울었다.
딱 한 번 아버지가 울던 나를 달래주다 속상해서 방바닥에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워물었던 기억속에도 찌릿찌릿했던 다리 통증이 있다.
성장통이었는지 신경통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희한하게도 운동하기를 싫어하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은 걷기다. 아니, 걷기 였다.
그 것이 앞으로도 계속 과거형으로 남을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지금은 보름 넘게 걷기운동을 못 하고 있다.
왼쪽 둔부 통증은 전에도 가끔 있던 일이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주 여행 이후 통증이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가 싶더니 어느 날엔가는 발을 땅에 디딜 때 통증이 심해서 악!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도 찍고 초음파도 했으나 뼈나 인대에 이상이 없고 약간의 염증이 있다고 했다. 순식간에 이십만 원에 가까운 치료도 받고 약도 처방 받았지만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어쩔수없이 걸어서 이십 분 거리의 교육원에 차를 타고 갔고 병원에도 K의 신세를 져야했다.
침을 맞고 와서 잠깐 통증이 줄었을 때 쇼핑을 갔고 습관처럼 집 안에서 식후 보행을 했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웠을 때부터 다시 다리가 아파 밤새 뒤척였다.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는 거 그거 하나였는데, 이제 걷는 운동을 못하면 뭘 해야하나?’
요가에서 과하게 비튼동작이 있었나를 복기해보며 일단 당장은 요가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다음달 등록을 취소하고 헬스를 해야하나 필라테스를 해야하나를 머릿속으로 고민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