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 M에게서 전화가 왔다.
M은 내 고교 친구의 친구, 그 친구의 직장 동료로 처음 알게 됐다.
알고나서 보니 같은 동네, 같은 평수 아파트 오 층에 살고 있었고 그 당시 여섯 살 딸이 있다는 것도 같았다. 그 뿐, 그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으니 그리 가까워질 기회는 없었는데 얼마 후 아들을 만들어야(?)한다는 그의 남편 긴급 프로젝트에 따라 M이 직장을 그만 두었고 정말로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M이 외향인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는 직장을 그만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을 사귀었다며 내게 소개를 하고 이후로는 남편들까지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만들고는 했다.
M의 이웃이 먼저 이사를 가고 M도 남편 직장을 따라 그 곳을 떠났다.
그럼에도 M은 이따금 연락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주기적으로 부부동반 식사자리도 주선을 했다.
주변을 참 잘 챙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자신한테는 인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으면서 아이들한테 들어가는 돈은 아끼지 않는다며 얼핏 듣기에는 원망같은 얘기를 자주 했는데 그러면서도 결론은 늘
‘워낙 계획이 철저한 사람이라 그래. 대단한 거지.’ 로 훈훈하게 마무리 된다.
내가 보기에 그는 남편에게 순종적인, 요즘 보기드문 사람인 것 같았다.
제 아무리 사람 관계를 잘 이어가는 M이지만 그의 남편이 지방도시로 직장을 옮기고 주말부부를 하게 되면서 그의 ‘이웃’이었던 사람과 연락이 먼저 끊겼고 나와도 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와, 애들이 벌써 서른 중반이다. 세월이 왜 이렇게 빠르냐.”
“그러게 그 꼬맹이들이 결혼을 하고, 이제 곧 우리는 할머니가 되겠지?”
전 같았으면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하고나서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을 텐데
오랜만에 하는 통화에서 얘기는 자주 끊겼다.
그 것이, 그냥 오래 연락이 끊겼던 탓인지 아니면 비슷한 환경에서 출발했으나 삼십 년 후 백억대 부동산 자산을 가진 그와 십억도 안 되는 수도권 아파트가 전부인 나의 자격지심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유 말도 마, G시 집은 팔지도 못해.”
“왜?”
“양도세가 어마어마 하거든, 오십 프로나 된다니 어떻게 팔아.”
“......”
“게다가 종부세가 엄청나. 월급받아서 적금넣어서 내야 한다니까?”
“어! 그.. 그렇구나. 나도 종부세 좀 내 봤으면 좋겠다. ㅋㅋ”
“하하! 아 미안해.”
몇 번인가 통화를 마무리하는 말을 슬쩍 꺼냈지만 그는 아직 할 말이 많은 모양으로 통화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은 채 한 시간을 넘겼다.
그가 미안할 거야 뭐 있겠나. 그냥,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아 기분이 씁쓸했다.
친구를 두 번 건너 친구 말고도 생각해보면 신기한 조합은 또 있었다.
스무 살 초반 무렵이었다.
고등학교 친구 J와 여름 휴가 계획을 짜고 있었다.
나는 둘이어도 상관없었지만 J는 둘이 가기는 심심하니 같이 갈 사람을 찾아보자고 했다.
J에게는 친구 모임이 다양하게 있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수퍼 내향인이었던 나는 개인으로 만나는 친구는 몇 있었을 뿐 모임은 없었다. 그렇다고 J의 친구들 사이에 물컵에 빠진 고춧가루처럼 혼자 낄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결성된 여행 메이트는, 내 중학교 친구와 직장 입사동기 그리고 J의 직장 친구 그렇게 다섯 명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맥락없는 조합이었는데 그게 또 됐다.
그냥 됐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가끔 행복하게 꺼내보는 달달구리 곶감같은 추억이 되었다.
자동차가 없음은 물론 대중교통도 지금처럼 편리하지 않던 시절에 여행코스는 강원도 소금강, 하조대, 주문진 등 삼 박 사일 일정에 매일 장소를 옮겨다녔다.
“겁도 없이 어떻게 그렇게 다녔나 몰라.”
지난 번 올해가 가기 전에 얼굴 한 번 보자며 J를 만났을 때 상전벽해가 된 오래전 직장 근처를 걸으며 그가 말했다.
“물론 그 때는 세상이 지금처럼 팍팍하지 않기도 했지만 말야.”
“그러게 말야. 지금 생각해도 나는 그 조합이 너무 웃겨. 전혀 연관없는 사람들을 갖다 붙여서, 흐흐”
“네가 계획을 잘 세웠으니 그랬지. 너 추진력이 있잖아.”
“엉? 내가?”
어릴 때부터 통지표에 단골 멘트였던 ‘소극적’ ‘내성적’이라는 말에 나는 그냥 묻거나 따지지 않고 그런 사람인가보다, 했었다.
추진력이 있다는 말이 신선하게 들렸다.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잘 알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보다.
어쩌면 내 안에 미처 발산하지 못한 외향인의 피가 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