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선생 방식의 고백

by 이연숙


저녁 준비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K가 방어를 먹자고 했다.

제주도에 갔을 때 혼자라서 못해보는 것 중 하나가 먹고싶은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먹을 거리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는 괜찮은데 K는 그 것이 먼저 걱정됐었나보다.

하여 제주에서 먹지 못한 방어를 쏘겠다고 했고 그 날이 그 날이었던 거다.

술이든 밥이든 나는 식당에 가서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K는 포장해서 집에서 먹기를 즐긴다.

바로 조리된 음식을 먹는다는 장점 말고도 시간차를 두고 하나씩 나오는 밑반찬을 기다리는 과정도 좋다.

특히나 산처럼 부풀어 오른 뚝배기 달걀찜이 나올 때는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가끔 기본찬에 달걀찜이 들어있지 않은 식당에서는 K가 따로 주문해 주기도 한다.

제각각의 주제로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다른 테이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테이블마다 목소리의 크기가 다른 것이 식당에 온 순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엄청(?) 대단한 발견을 한 것도 뿌듯하다.

그런가하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이미 지겹도록 해봐서 흥미가 떨어진 건지 K는 한사코 집에서 먹자고 나를 설득한다. 어차피 뒷정리는 그가 다 하니 나야 귀찮을 것도 없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여 열 번 중 일고여덟번은 거실 바닥에 좌식 테이블을 놓고 앉아 TV를 켜놓고 먹는다.


술을 마실 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맛있는 음식에 술을 곁들일 때 K는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지며 평소 안 하던 말을 할 때도 있다.

나를 비롯한 우리와 상관있는 얘기를 주로 하는 나와는 달리 그는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얘기들을 한다며 참 특이한 사람이라고 했더니 큰올케가 우리집 남자도 그렇다고 맞장구를 친다. 그런 사람이 K뿐이 아니라니 그만 별난 사람은 아닌가보다 싶으면서도 ‘아니 그런데 왜?’ 풀리지 않은 의문은 여전하다.




TV에서는 저녁 생활정보 프로그램이 방영중이었다.

시골에 집을 짓고 살면서 그림을 그리는 아내와 돌을 모으는 남편이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PD가 두 분은 처음에 어떻게 만났느냐고 물었다.

칠십 대의 나이가 무색하게 미인형의 시크한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에서 꿀이 떨어지는 것으로 봐도 남편이 먼저 고백했을 거라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젊었을 때 뭇 남성들의 가슴 꽤나 설레게 했을 것 같은, 도도해 보이는 아내가 먼저 고백을 했고 결혼을 하자고 했더란다. 그리고는 ‘내가 더 많이 좋아했어예.’라고 덧붙일 때 남편이 수줍게 웃었다.

그 다음 말이 하이라이트였다.


- 그래가 마 저래 돌을 모아들여도 내가 말을 몬하자나예. 더 좋아하는 사람이 손해라예. 하하“


좀처럼 소리내서 웃지 않는 K는 빙그레 웃고 있었고 나는 빵 터져서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니까..@#$%^&*“


내 웃음소리에 섞여 K가 뭐라고 하는 소리를 못 들었다.


”뭐라고?“

”당신은 다행이라고, 내가 더 좋아하니까.“

”......“


약, 삼 초 설렜다.

사실 K는 내게 프러포즈도 하지 않았다.

부모끼리 맺은 정략결혼이 아닌데도 그랬다.

굳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되짚고 헤짚고 쥐어 짜내보자면 만난지 일 년쯤 됐을 때였나? 성당숙직을 한다며 늦은시각 통화를 하는 중 얼핏 ‘우리는 결혼을 할 거니까....’ 뭐라고 했었던 것 같기는 하다.

누가 들어도 그게 프러포즈는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야구장 전광판이나 극장을 통째로 빌린다거나 혹은 자동차 뒷 트렁크를 열었을 때 풍선이 날아오른다거나 등등 화려하게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도 결혼하자고 말한 적도 없는 남자와 결혼해 얼굴도 모르는 조상들 제사상을 준비하며 삼십 년을 넘게 살고 있다는 게 가끔은 억울한 느낌이 없지는 않다.

아이들하고 얘기를 하다가 그 말을 했더니 누구보다 주주가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머나! 어머니, 그런데 왜 결혼하셨어요?“


한다.


‘그러게 말야, 그 때 이 세상에 남자가 느이 아부지 딱 한 사람만 있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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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더 좋아하는 쪽은 K일지 모르나 먼저 좋아한 사람은 나였다.

내가 중 일 때 고등학교 일학년이었던 오빠가 생일에 시커먼 교복을 입은 친구들을 우루루 데리고 집에 왔다. 호국단 간부들이라는 그 들은 키가 크고 덩치도 좋아 순식간에 집 안이 꽉 차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수줍음이 많았던 나는 부엌에 숨어서 그 광경을 훔쳐보기만 했다.

며칠 후 한 친구가 혼자 집에왔다. 카메라 뚜껑을 빠뜨리고 갔다고 했다.

검은 뿔테 안경에 깡마른 그가 슬그머니 마음에 들어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긴 하다. 렌즈뚜껑이야 오빠한테 가져다 달라고 하면 될 걸 굳이 버스를 갈아타고 집까지 왔다는 것이.)

얼마 후 군대에 간 그가 오빠에게 보낸 편지봉투에 가지런히 적인 그의 이름을 볼 때마다 심장이 먼저 두근거렸던 것 같다.


우리 어머님은 내 나이에 벌써 손주가 넷이었는데 할머니가 되고도 남았을 나이에 나는 사랑타령을 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다.

삼 초라도 아직 설렐 가슴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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