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이 넘어가면 열네 살이 되는, 사람나이로 환산하면 구십팔 세쯤 되려나?
아무튼 우리집에서 키우다 딸이 데리고 간 웰시코기가 똥을 먹더라고 했을 때 질겁을 했었다.
K2와 두 블록 거리에 살 때 산책을 하면서, 봄이면 풀을 뜯어먹기도 하고 가끔은 뭔가 물고와서 보니 그게 생쥐더라고도 했다. 그런가 하면 비둘기떼를 보면 냅다 달려 쫓아버리고 가끔 제가 싼 똥을 먹을 때도 있다고 K2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할 때 뻥치지 말라고 했다.
설마 했는데 사실이었다.
지난 여름, K2가 여행을 가면서 개를 우리집에 맡겼을 때 넓게 깔아놓은 배변패드 위에 응가를 하고는 돌아서서 아무렇지도 않게 덥썩 제가 싸 놓은 똥을 먹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었다고는 하지만 고기는 여전히 해맑은 얼굴을 하고 먹을 것에 욕심을 부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때 엄청 행복해한다. 다만 웰시코기에게 자주 있다는 디스크 증상으로 뒷다리가 조금씩 불편해보이더니 급기야 요즘은 아예 통제가 안 되는 듯 질질 끌고 다닌다.
공만 보면 던지라고 개미지옥처럼 물고 오고 뛰어가고 하던 녀석이 몸이 뜻대로 안되니 짜증도 좀 는 것 같고 표정도 많이 어두워진 것 같다.
걸어서 산책이 어려우니 개모차에 싣고 나가는데 체념을 했는지 그 조차도 뿌듯해한다는 말이 마음 아프다.
한동안 위통으로 고생 좀 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광어회에 소주를 먹어서 인 것 같다.
나는 제주에서, K는 집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고 섬에서 잡아서 먹는 광어회가 그렇게 맛있어 보였다. 집에 온 다음 날 K가 기꺼이 광어회를 사 줬고 나는 소주 첫잔의 퐁퐁거리는 소리를 귀를 대고 들으며 기분 좋게 저녁을 먹었었다.
다음 날 아침, 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먹었던 아침을 다 게워내고도 하루종일 배가 고프지 않았다.
위장이 일을 못하겠다고 아예 전원을 끈 것 같았다.
몸은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프고 방바닥이 꺼져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내과에 가서 약을 받아 먹었지만 별 차도는 없었다.
다음 날 일본어 수업도 조퇴하고 집으로 오는 길이 천리는 되는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죽만 먹었다.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마시고 싶은데 참은 것이 아니라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는 거다.
건강도 챙기고 비용도 절약되니 그리 나쁜 일도 아닌 것 같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커피를 내리는 일이 한 번도 귀찮은 적이 없었는데
귀찮아서라기 보다는 커피 마셔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나지 않았다.
K혼자 커피를 내려 마시거나 인스탄트 커피를 타서 마셨다.
그가 커피를 마실 때 나는 티를 마셨다.
그러다보니 어느 덧 오래 묵었던 티박스에 있던 티백이 모두 없어졌다.
세상에서 커피가 사라지지 않는 한 내가 커피를 끊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뭐든 단정을 지을 수 있는 일이란 건 없다.
원두가 떨어진 줄도 몰랐다.
K가 말해줘서 알았다.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K가 그릇 정리를 하는 동안 나는 커피물을 올리고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고는 했다.
우리가 식탁에서 일어서면 단추도 소파에서 내려와 같이 주방으로 쪼르르 가는 모양이 마치 커피 내리는 시간을 아는 느낌이다.
커피를 마시지 않다보니 뭔가 아침 루틴 하나를 빠뜨린 것 같았다.
그렇게 거의 한 달 쯤 됐다.
허브티를 사서 티백상자를 채워두었다.
여행하면서 사 두었던 예쁜 홍차잔도 꺼내 씻어 놓았다.
우아하고 점잖은(?) 티 생활을 하게 되나보다 했.었.다.
지난 주말, 동생 생일에 초대받았다.
아침밥을 먹고 분주하게 외출 준비를 하다가 불쑥 커피 생각이 간절해졌다.
디카페인은 괜찮겠지 하면서 오랜만에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는데 그 향이 황홀했다.
올해 예순 번째 생일을 맞은 동생이 그간 온갖 바깥음식을 다 먹어봤다는 의미인지 생일상을 집에서 차려 달라고 했단다. (아마도 간이 배보다 큰 남자가 아닐까.)
착한 올케는 또 그걸 해준다고 전날부터 장봐다가 갈비찜에 잡채 등등 환갑잔치 분위기다.
동생 뿐 아니라 사실상 나조차도 집에서 차린 생일상은 오랜만이라 정신없이 식사를 하고 커피는 사다 먹기로 했다. M커피는 맛없다며 굳이 사 먹어 본 적 없었는데 세상에, 한 잔을 올케와 두 잔으로 나눠 마시는 그 커피가 입에 착착 붙었다.
커피 끊었다더니 하루에 두 잔을 마신 것이다.
그럼 그렇지.
개가 똥을 끊지, 내가 커피를 끊을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