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와 오후 운동을 하기 위해 천변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날이 흐린 건지 대기질이 안 좋은 건지 하늘이 온통 잿빛이었다.
그 때였다.
아파트 사이에 비행기가 떠 가는 것이 보였다.
전에도 자주 보던 장면이라 무심히 가던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여느 때와는 다르게 비행기 동체가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는 와중에 K는 벌써 저만치 멀어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비행기가 움직이지 않는다. 고도 때문에 오는 착시인가 생각하는 와중에도 비행기는 그 자리에 머물러있는 것이 분명해보였다.
뛰어가서 K를 불러 세웠다.
“저거 봐. 비행기가 서 있는거 같지?”
이미 앞서가던 K가 서 있는 곳에서는 비행기가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가 하늘에서 서 있을 수도 있는 건가?”
“글쎄, 착시 아닌가?”
“아니면 누가 여기서 내려달라고 했나?”
잠자코 다시 걸으면서 K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안양 사는 데요~. 이렇게?”
“엉? 어, 하하하하 웃겼다!”
결혼 전까지 공항 근처에 살았던 K는 어렸을 때 친구들에게 공공연하게
“너네 그거 알아? 우리 동네에는 길에 똥이 천지야. 비행기에서 싼 똥이 떨어져서.”
라고 말했다고 한다.
친구들이 거짓말 말라고 하면 K는
“야, 비행기가 뜰 때 연료도 딱 도착할 때까지 필요한 만큼만 넣는다잖아. 오줌 똥을 어떻게 싣고 다니겠냐?”
라고 특유의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듣던 친구들 중에는 여전히 거짓말이라는 녀석도 있었고 한 두 명은 긴가민가 하고, 드물게 몇은 그 말을 정말 믿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농담을 할 때와 진지한 얘기를 할 때의 표정이 거의 변화가 없어서 나는 아직도 그의 농담에 마음이 상해 말다툼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나는 그의 진지한 농담에, 그는 나의 잘 삐치는 성격에 지금쯤 익숙해질만도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는 점점 뾰족해지고 그는 갈수록 일방통행이 되어간다.
K의 소통방식에 적응이 되지 않는 사람이 나 뿐은 아니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됐다.
나와는 다르게 자기 생각을 똑부러지게 말할 줄 아는 K2에게 종종 ‘너는 아빠가 있어서 참 좋겠다.’ 라고 말하고는 했다.
같은 말을 두 번 하는게 싫어서, 한 번 했던 잔소리를 다시 하기 싫어서
보통은 ‘으이구 말해 뭐하냐.’하며 눌러 담는 나와 달리 K2는 상대방이 이해를 할 때까지 말하고 또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 대표적인 결과가 사위 유니다. 유니를 처음 봤을 때는 착하고 똑똑했는데 지금은 착하고 똑똑한데 주변을 두루 살필줄도 아는 즉, 뒤에도 눈이 달린 것같은 배려맨이 되었다.
그들보다 네 배나 긴 시간을 함께 했으면서도 아무 변화도 없는 우리는 뭔가 직무유기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K2가 아빠의 일방적인 소통방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그 순간,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우리 K선생 어쩌면 좋냐. 하는 생각이 동시에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졌다.
집에와서 K에게 그 말을 전했다.
나도 그렇고 딸도 그렇게 느꼈다면 주변 사람들을 위해 소통방식을 바꿔보는게 좋지 않겠냐고.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우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좋겠다고도 했다.
듣고 있던 그의 간결한 대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게 내 방식의 유머야. 유머가 싫다면 그런 말을 이제 안 하면 되는 거지 전문가는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