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까?

by 이연숙



나와 띠동갑이라는 L은 성당 사진 동호회에서 만났었다.

그게 벌써 십여 년전인데 나보다 열두 살이 많다면 그는 그 무렵 환갑이 되었을 나이다.

그 말을 전하는 동호회장도 다른 멤버들도 그 한 번 쳐다보고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아무리 봐도 예순살로는 안 보인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수근거렸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어디로 봐도 낼모레 환갑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말은 별로 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늘 생긋 웃는 표정인 L과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내가 그 동네를 떠나고도 이따금 한 번씩 들은 얘기로 그는 사진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고 했다. 사진강좌가 있는 각 대학 교육원코스를 무려 네 곳이나 수료를 했고 5D에 24-70렌즈를 장착한 카메라 하나만 가지고도 무거워서 쩔쩔매는 나에비해 그는 일일이 렌즈 갈아끼우기 번거롭다며 줌렌즈와 광각렌즈를 끼운 바디를 양쪽 어깨에 하나씩 가지고 다녔다. 시간이 많이 흘러 더 이상 그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도 없게 됐지만 언젠가 출사를 갔다가 식사를 하면서 그가 했던 말이 가끔 한 번씩 떠오르고는 한다.


“나는 손주가 생기면 카메라 들려서 데리고 막 여기저기 여행할 거야.”


아들만 둘이라던 그가 결혼을 앞 두고 있는 큰아들의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 즉 미래의 손주와 보낼 재미난 계획을 말하며 함박 웃으며 했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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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을 결심이 서지 않은 딸과 가지려고 힘들게 노력하고 있는 아들부부가 안타까워서 어쩌면 우리는 손주를 안아볼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끔은, 손주가 얼마나 예쁘면 자기 프로필사진을 온통 아기사진으로 도배를 할까? 자기 손주 자기나 예쁘지 만다꼬 자꾸 톡에다 사진을 보내노? 하기도 했고 허리통증에 손가락 관절이 죄다 망가졌는데도 손주를 봐주러 매일 딸 집에 간다는 친구가 의아할 때도 있었다.

제 엄마아빠가 알아서 하게 이제 그만 하지 그러냐는 내 말에


“그건 안 해보면 몰라, 지인~~~짜 예뻐. 몸이 아파도 이쁜짓 하는 거 보면 자꾸 가게 돼.”


라고 말했다.

하긴 안 해봤으니 손주가 자기 몸을 갈아넣을만큼 예쁜지 내가 알 길이 없지.




일본어 수업을 마치고 종종 서점에 들른다.

보통은 소설 코너를 서성거리는데 그 날은 에세이코너에 한참 머물렀다.

그러다 색감이 예쁜 책표지가 눈에 띄었다.

게다가 제목이 [@#$%& 할머니가 되고싶어] 인 것이 재미있어 몇 장 훑어보다 인터넷 주문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불과 네 시간 쯤 후 인터넷 서점에 도서주문을 했다.

바로 다음날 배송이 됐다.

화사한 느낌의 표지도 비슷하고 뭐라뭐라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제목도 맞...

는 것 같은데 저자이름이 달랐다. 물론 서점에서 본 책의 저자명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 책은 무려 브런치 대상수상작이라고 했었다.

그 책이 아닌 건 맞는데 신기하게도 두 권 ,다 되고 싶은 할머니를 말하고 있었다.

정리하자면 서점에서 봤던 것은 [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싶어] 였고 인터넷 서점에 주문했던 것은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였다.

며칠 전에는 K2와 이야기 중에 또 할머니가 나왔다.

요즘은 외할머니 친할머니로 부르지 않는다고, 그 것 역시 남녀 성별을 구별하는 말이라 이름을 붙여, ‘정희할머니 집에 가는 거야? 수남할아버지 보고싶어’ 라고 한다고.

그러면서 엄마한테 손주가 생기면 외할머니가 아닌 ‘연숙이할머니’라고 부를 거라고 말이다.

그거 참 똑똑한 젊은이들이다 싶었다.


오늘 아침, 인터넷 서점에 새해 독서 다짐 댓글을 달면 포인트를 준다는 말에 사 놓고 아직 읽지 않은 문제의 그 ‘할머니’책을 들여다보다

문득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가, 에 생각이 미쳤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도 멋질 것 같고 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는 말만으로도 가슴까지 징하게 울리는 감동이 있다.

L처럼 나도 카메라 들려서 이곳 저곳 여행을 다닐까? 했더니 K2가


“아이가 뭘 좋아할지 모르잖아.”


라며 단호박처럼 선을 그었다.

하긴, 그렇긴 하지.

내가 아이에게 카메라들려 여행을 다닐 용기있는 할머니가 될리 없다.

멋진 할머니와는 거리가 멀고 감동을 주는 할머니가 될 자신도 없다.

나는 그냥

이 다음에 내가 세상에 없을 때 문득 한 번씩 보고싶은, 그런 할머니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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