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나오거나
드라마 대사 혹은 노래말에 나올법한
서정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영어수업에서였다.
지난 수업에 결석했던 수강생에게
강사가 무슨 일 있었느냐고 물었다.
화상으로 하는 수업이라
제각각 인터넷 상황이나 이용하는 기기의 차이가 있어
더러 소리가 끊기거나 화면이 불안정할 때도 있다.
내가 못 알아 듣는 건지 그녀의 시스템이 불안정한 건지
그녀의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대충 들린 단어를 모아 보자면
허스밴드...라이크.....리브즈...바더.... 정도였다.
이해를 못한 적이 어디 그 때 뿐이겠나.
못 알아 들을 땐 그냥
남들 웃을 때 따라 웃거나
책을 보는 척 고개를 수그리고 있으면 된다.
그런데 이해를 못한 사람이 나 뿐은 아니었나보다.
모두 넋 나간 표정으로 화면만 쳐다보는데
오히려 말 한 사람이 답답한지 냅다 한국말로 쏟아낸다.
“우리 남편이 만날 나를 불러 대서요.
비에 젖은 낙엽처럼 찰싹 붙어서는.... 아주 지겨워 죽겠어요.“
사업을 하는 남편이 직원을 뽑기보다
아내에게만 의존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본인은 편하게 자기 시간을 갖고 싶은데
자꾸 불러내서 귀찮다고 하는 말이었다.
비도 좋아하고 낙엽도 좋아했던 터라
그 예쁜 단어들의 조합이 지겨워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얼핏 의미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게 쓰인 그 말을 들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나의 이름 첫 글자와 성을 바꿔놓은 이름의 친구 Y를 만났다.
3년 전 임피상황을 맞았던 K가 나보다 세 살이 많으니
Y와 동갑인 그녀의 남편은 올 해 임금피크에 들어간다고 했다.
주어진 보직이 그 간의 위치와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이라
퇴직을 할지 고민하는 남편에게
“딱 달라붙어 있어!
비에 젖은 낙엽처럼.”
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 말이 어쩐지 웃기면서 슬프게 들렸다.
영어수강생의 그 말은 내게 자꾸 달라붙지 말라는 뜻이고
친구의 그 말은 회사에 꼭 붙어 있으라는 말이지만
결국 집에 머물면서 자주보지 말자는 뜻이니 그 말이 그 말인 셈인 것 같다.
K가 다른 일상을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아침 먹고 커피를 내리고
커피를 마신 K가 집을 나서는 시각이 여덟시에서 조금씩 빨라지고 있지만
어쨌든 그 무렵 강아지와 아침 산책을 나가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 되었다.
가장 좋은 건 글을 쓸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그 동안 친구를 만나러 서울 나들이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어
어쩌면 조금씩 예전의 일상을 되찾아 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K가 출근하는 일상이 32년 이었던 것에 비해
하루 세 끼를 K와 함께 했던 시간은 불과 2년 정도였는데
나는 이미 함께 했던 2년에 길이 들어있었나 보다.
주말이나 공휴일은 직장인들에게 양보하자며
쇼핑이며 당일 드라이브, 부모님 댁에 가는 것 모두 평일에 하니 한적하니 좋았다.
제주에, 올해는 따뜻한 남원에서 한 달 살기를 하려고 했었다.
차를 바꾸고 일단 기본적인 장비를 구입해서 강원도든 전라도든 떠나보자고 했었다.
자전거 싣고 한강에 가서 자전거를 타다가 한강 라면도 먹자고 했었다.
그랬는데
당분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돈을 버는 일이 아니더라도
뭐든 하는 일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은 내가 더 바랐던 일이지만
지금은 K가 곁에 없는 일상이 불편한 게 너무 많다.
이 번 일정이 끝나고 나면
그냥 집에 딱 붙어 있으라고 해야겠다.
그래봐야 같이 할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한 시간, 매 순간이 아쉬운 요즘이다..
그런데
8개월 후
다시 이 일상에 익숙해진 다음에도 이런 마음일지는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