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여덟시에 산책을 한다.
아파트 단지의 남쪽 쪽문으로 나가
횡단보도를 건너 안양천으로 내려간다.
산책을 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이고
출근전 운동을 하기에는 늦은 시각이라서인지
평소보다 사람들이 덜 붐벼서 좋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대부분은 무심히 지나치지만
휴대폰을 보면서 걷다가 개를 보고는 흠칫 놀라
웅덩이를 피해가듯 원을 그리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저만치서 부터 꿀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을 하고는
어쩜 이렇게 귀여우냐며 손을 내밀어 냄새를 맡게 해주는 이도 있다.
며칠 전에는 아파트 입구 사거리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길을 건너려는 남자를 향해
"왕!"
단추가 짖었다.
당황해서 리드줄을 바짝 잡아당기고
미안하다고 말하려는데
남자가 활짝 웃으며 뒤 돌아서서는
"아! 무단횡단 하지 말라고? 미안!"
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그 곳은 네 방향 보행신호가 한 번에 들어오는 곳인데
남자가 신호도 바뀌기 전에 길을 건너려는 중이었나보다.
콩알만한 강아지가 신호를 알겠으며
무단횡단을 알 리가 없지 않은가.
혼자 산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강아지와 산책을 할 때에는 온 신경을 녀석에게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운동은 되지도 않으면서 신경을 쓰느라 몹시 피곤한 것도 사실이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냥 신경 쓰지 않는 사람
그리고 개를 싫어할 뿐 아니라 남이 데리고 다니는 개 조차 짜증나는 사람이 공존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한다.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은
더러 남자처럼 유쾌한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는 점이다.
K의 일정이 생기면서부터 시작된 아침 산책이
이제는 일정한 일과가 되어간다.
늘 새로운 길을 탐색하기를 좋아하는 K와는 달리
나는 늘 가던길을 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안양천을 건너는 세 번째 다리를 건너 다시 큰 길로 올라와서
아파트 단지를 크게 돌아 집으로 오면 몇 걸음 모자란 오천 걸음이 된다.
오늘 아침
천 건너편에서 세 번째 다리를 건너 되돌아 가는 중에
물가에 핀 억새가 아침 햇살에 비쳐 화사하게 반짝거리는 풍경을 봤다.
강아지 실외 배변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나섰던 산책길에
계절이 건너가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주변의 잡풀을 깎아 놓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덕분에 강아지 발에 온통 마른 풀 투성이지만
이제 곧 그 곳도 휑하게 비어갈 것이다.
지난 번 엄마가 말했었다.
- 언제든 거기 가면 아들도 있고 딸도 살고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없겠네, 싶으니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들어.
이 전에 살았던 곳은 엄마와 아버지의 고향이었다.
동생은 그 곳에서 이십 년을 살았고
나는 고작 만 사 년을 살았지만
그 곳은 단순한 거주지의 느낌과는 다른 무엇이 있었다.
집 밖에 나설 때마다
단추와 산책을 할 때마다
나는 종종 그 곳을 그리워하고는 했다.
엄마도 그랬나보다.
어쩌면 엄마의 그 것은 나와는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그 곳에서 태어났고 자랐고
결혼을 했으며 신혼 살림을 차렸던 곳이기도 했다.
형제들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형제가 있다.
그리워할 고향이 있다는 것은 마음 따뜻해지는 일이다.
나는 어디에서도 고향을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사를 할 때마다
늘 이 곳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상하게도 이 곳으로 올 때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고향이든 아니든
어디에는 길은 있다.
아침에 봤던 길의 풍경이 좋았다.
이 곳에 사는 동안만큼은
이 길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