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네 가족이 대전에 살 때
주방 개수대쪽 창밖으로 멀리 고속도로가 보였다.
설거지를 하면서 저절로 창밖으로 눈이 갔다.
다른 건물로 가리지 않아 너른 들판 건너 차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자리에 서서 마냥 설거지만 해도 좋겠다 싶었다.
우리가 서울로 돌아 갈 때 저 길을 지나면서 손을 흔들면 보일 것 같았다.
다들 어디로 가는 중일까?
그 자리에만 서면 여행을 하는 것처럼 마음이 설레
오빠네 집에 가면 설거지를 자처했었다.
이사할 집을 알아보던 중,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은 한 번도 염두에 둔 적이 없는 지역이었다.
이 지역과 관악산을 나눠가진 옆 동네에 이십 년 동안 살았기 때문에
그리 낯선 동네는 아니었지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처음에는 이 집이 아닌,
인근 아파트에 비해 가격 메리트가 있다는 다른 집을 보러 왔었다.
그 집은 특이하게 집의 두 면 즉, 동쪽과 남쪽에 큰 창이 있는 구조라고 했다.
거실에 있는 창은 놀이터 전망의 남쪽으로 나 있고
큰 방은 기찻길이 보이는 동쪽으로 통 창과 테라스가 있다고 했다.
기찻길이라는 말에 나는 순간 마음이 설렜다.
집에서 기차가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니...
그 것도 내가 작업실로 사용할 큰 방에서 기찻길이 내려다보인다니.
마음이 급해져서 집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집 주인이 직장에 있을 시간이라
내부를 보려면 주말에 다시 와야 한다고 했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그렇다면 집 주변이라도 보고 싶다고 했다.
이 아파트 단지의 장점은
최근 새로 짓는 다른 단지에 비해
동간 거리가 멀고 단지 내 조경이 잘 꾸며져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부동산 사장의 말처럼
단지 안에서만 산책을 해도 될 만큼
건물 간 밀도는 성글었고
중간중간 독특한 조형물과 정원같은 휴식공간도 있었다.
최소 25년 이상 된 아파트에만 살았던 터라
입주 4년차의 새 아파트 단지 내 산책로를 걷는 내내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게만 보였다.
보러 갈 동 앞에 거의 도착했을 때
갑자기 트레일러가 백대 쯤 지나가는 것 같은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잠시 동안 서로의 대화 소리도 끊겼다.
소음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니
소음방지벽이 있는 곳, 바로 철길에 전철이 지나간 모양이었다.
그 곳은 전철과 기차, 때로는 화물차도 지나가는 오래된 철길이라고 했다.
이제까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던 K가 조용하게 한 마디를 했다.
“안되겠다. 이 소리가 날마다 새벽부터 밤까지 들린다고 생각해봐.”
짧은 순간 머릿속으로
기찻길의 낭만과 소음의 비중을 재고 있는데
부동산 사장님의 들릴 듯 말 듯한 소리에 생각이 멈췄다.
“화물차는 주로 새벽에 다닌다더라구요.”
하여 기찻길 옆 아파트 대신
천변 산책로 옆 동으로 이사를 했었다.
아침 산책 코스를 조금 늘리기로 했다.
천변 산책로를 건너서 2킬로미터쯤 가다가 다시 건너와
아파트 단지를 크게 돌아
마지막으로 단지 안 산책로를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우리 집과 반대편 단지는 야트막한 경사로 위에 있었는데
그 뒤편으로 산책로가 이어져있었다.
걷다보니 평지에서는 소음방지 벽에 가려 보이지 않던 전철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물론 전에 들었던 그 소음과 함께였다.
일부러 멈춰 서서 기차를 기다렸다.
의외로 전철보다 기차의 소음이 더 작았다.
무궁화호의 아련한 기차소리가 잠시 마음을 흔들었다.
이 방향은 아니었지만
무궁화호를 타고 갔던 오래 전의 기억들이 거품처럼 피어났다.
기찻길 옆 아파트에 설렜던 이유가 이런 거였을까?
단추가 이 아줌마가 왜 이러나 하는 얼굴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무궁화호가 사라진 자리에 다시 전철이 쾡한 소음과 함께 스쳐 지나갔다.
아무리 미화하려고 해도 그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그 곳을 지나 산책로의 끝에 왔다.
또 한 번 방금 지나온 뒤 쪽에서 굉음이 들렸다.
천변으로 오기를 잘했네.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서 아기는 어떻게 잘도 잘 수 있었을까?
소음도 익숙해지면 무뎌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