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검진 결과지를 받았다.
HDL은 정상치보다 낮고
LDL은 높다고 했다.
즉, 고지혈증이나 고혈압 등 병은 아니지만 주의해야한다는 말이다.
골감소가 시작됐지만
골다공증은 아니다.
당뇨는 아니지만 경계에 와 있다고 하고
비만은 아니지만 체지방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한다.
뭔 말인지도 모를 깨알 같은 수치와 그래프는
당장 죽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부터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보였다.
음식은 허기를 채워주는 수단일 뿐
특별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음식은 없다.
철마다 제철 음식을 챙겨 먹지는 않지만
나름 영양소별 식품군에 해당하는 식사를 하고 있....다?
고는 자신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몸에 이롭지 않은 음식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집에 틀어박혀 있는 걸 좋아하지만
집 안에서 걷더라도 하루 최소 오천 걸음은 채운다.
(에게게~ 그걸 운동이라고... 하고 비웃어도 어쩔 수 없다.)
내 검진의 결과는
정상B(경계), 일반 질환의심
판정을 받은 거라고 한다.
경계라는 말이 참 모호하게 느껴진다.
20년 쯤 전, 경계에 있다는 모호한 진단 때문에
큰 결단을 내려야했던 적이 있었다.
자궁암 검사를 했는데
암은 아니지만 여기서 진전이 되면 1기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보험 보장의 영역에 들어가지도 않았던
자궁암 0기, 자궁 이형증이라고 했다.
머리카락이 몇 가닥 남지 않아 훤한 이마를 가진 의사는
결정을 환자에게 미뤘다.
“이 상태로 백 살까지 살 수도 있고, 진행이 되면 바로 암이 될 수도 있어요.
잘 의논해 보시고 수술을 할지 결정하세요.“
K와 나는 뭘 의논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백 살까지 살고 싶은 건 아니지만,
진행되면 암이라는데...
다음 진료 예약 날짜까지 2주를 어떤 마음으로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술을 결정하고 진료실로 들어갔을 때 의사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빨리 오셨네요? 난 또 아기 하나 출산하고 오실 줄 알았죠.”
“................”
지금도 잘 모르겠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했어야 했는지.
둘 중 한 사람이 조금 더 현명했다면
다른 방법을 말할 수 있었을까?
경계에 있다는 것을 느낄 때는
늘 불안과 긴장이 극대화되지만
이내 무기력해지고는 한다.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 무의미할 때는 더욱 그렇다.
건강 검진을 받는 일이 싫어졌다.
언젠가 지인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난 검진 안 받아. 미리 알아서 환자로 사느니 때가 됐을 때 그냥 떠나는 게 나은 거 같아.”
처음엔 참 무모하고 이기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갑자기 그 말이 무척 멋있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