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가 사는 동안 한 번도
시킨 사람도
하고 싶은 적도
해야만 했던 적도
할 필요도 없었던
음식 만드는 과정을 시작한지 3개월 차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음식 만드는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과정이다.
원래 의도는 조리 과정을 배워
가끔 일품 요리도 만들어보고
어차피 하고 있는 아침 식사 준비에 도움이 되면 좋겠어서 라고 했다.
강의 첫날부터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 과정에 들어가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혹은 매일 세 끼 식사를 함께 하는 동안,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내 눈빛이 따가워서)
포기 하지 않았더니 그게 벌써 석 달이나 됐다.
문제는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하는 말처럼
베이비부머 세대인 K는 어쩌면 뜻하는 것은 모두 이루며 살았던 셈이다.
물론 그것 역시 노력 없이 얻은 결과는 아니었다.
지금 하고 있는 과정에 면접을 치르면서 조차
“난 뭐, 시험에 떨어져 본 적이 없어서.”
라고 의기양양하는 K의 뒤통수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 필기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에만 해도
그 시절 엄연히 구분된 남(기술)녀(가정,가사) 과목 덕분인지
그가 난생 처음 들어본다는 수많은 단어나 과정들이 익숙해서 줄줄 읊었더니
안 그래도 큰 K의 눈동자가 금방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었다.
그런데 실습이 시작되면서부터는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날마다 실습 결과물을 통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와 이름을 말했지만
그 것이 음식의 이름인지 조리도구의 이름인지 조차 도통 알 수 없었다.
특별한 개성이 있는 맛은 아니었지만
나는 흉내 내 본 적도 없는 데코레이션과
그럴듯한 맛에 내 입이 호강을 하는 기분이었다.
중요한 건
그 어려운 걸 K가 해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사 분담을 하면서 저녁은 내 담당이었는데
그조차 공수되어 온 음식 품평을 하느라
어떤 날은 밥만 하거나 그 것도 하지 않는 날이 많으니
에헤라 디여~
내게 이런 날도 다 있다.
그.러.나.
K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일과가 끝나고 집으로 들어서는 그의 표정은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것 같다.
천성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향으로
출입문에 달린 풍경 소리가 끊기지를 않았었다.
지난여름, 에어컨 없을 때 어떻게 살았나 싶을 만큼
집 밖에 나가기를 무서워했었던 나에 비해
K는 풀방구리 쥐 드나들 듯 집 안팎을 드나들었다.
그랬던 그가
요즘은 집에만 오면
저녁 먹고 TV뉴스 켜놓고 졸다가
아홉시면 방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잠을 자는 쳇바퀴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가까운데 바람을 쏘이러 가자거나
하다못해 마트에 장을 보러 가자는 말조차 꺼내기가 어려웠다.
K의 일상 때문에 나의 일상조차 바뀌어 가고 있는 셈이다.
지난 주말, 눈치만 보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혹시... 기운이 좀 남아있으면 호수에라도 갈래? 가을이 끝나가는 것 같아.”
“그래, 그러지 뭐.”
의외의 대답에 한 마디 더 얹었다.
“바다면 더 좋구, 이왕이면 동해바다가 더 좋지만 아쉬운 대로 서해라도....”
“.........”
너무 갔나? K는 아무 대답도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이후로 나는 입버릇처럼 K에게 말을 할 때
‘혹시 기운이 좀 남아있으면’
을 붙이게 됐다.
아이들이 왔다가 분리불안이 심한 강아지를 두고 갈 때 K에게 말했다.
“혹시....기운이 좀 남아있으면 강아지 데리고 먼저 산책 나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