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휴지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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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러다 지옥 간다?”


여섯 살이었던 나는 언제나 마음 좋은 웃음을 웃는 한 큰이모의 말에 마당에 노는 닭한테 뿌리던 물바가지를 든 채 이모 얼굴을 심각하게 쳐다봤다.


“그 뿐인 줄 아니? 지옥 문 앞에서 네가 평생 버린 물 다 마셔야 된다?”


한 여름이었는데도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아 바가지를 내 팽개치고 이모의 품으로 뛰어들었었다. 내가 뿌리는 물길을 피해 분주하게 이리저리 피해 다니던 닭들이 그제서야 마당 구석 햇볕 아래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졸기 시작했다.


K가 퇴직을 이 삼년 남겨 놓았을 무렵 저녁을 먹다가 내가 물었다.


“퇴직 하면 뭘 할 거야?”


사실상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집에서의 시간보다 두 배는 많을 뿐 아니라 회식이나 약속으로 열두 시를 넘기는 일은 익숙했다. 그 뿐 아니라 골프 낚시 등 주말에 하는 취미생활조차 회사동료들과 함께였으니 회사를 제외한 그의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말을 하고 보니 경제적인 의미보다 그의 일상의 변화가 생각보다 너무 커서 그 시간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나의 거창한 뜻을 품은 질문에 비해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당신한테 아침밥을 해줄 거야.”


나는 잠시 회로가 정지한 것처럼 눈만 씀벅거렸다.


“아니, 내 말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거냐는 말이지. 꼭 수입이 생기는 일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생겼을 때 하려고 미뤄 뒀던 일 같은 거 없었어?”


“그러니까, 당신이 삼십 년 동안 새벽밥 해 줬으니 이제 시간 많으니까 앞으로 삼십 년 동안은 내가 당신 아침밥 해 준다고...”


“......”


어쩐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것 같지는 않지만 감동의 여운을 붙잡기 위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년에 퇴직을 한 K는 약속대로 아침 식사를 챙겼다. 라면과 계란프라이 말고는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으니 별 기대는 없었다. 그래도 이 후로 나의 아침 생활이 느긋해진 것은 사실이다. 최근에 손목과 허리의 잦은 통증을 핑계로 내친 김에 집안일도 나눠 하기도 했다. 아침 식사와 설거지는 K가, 저녁과 청소 세탁은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집안일 이란 것이 표도 안 나면서 힘든 일이었다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났다. 작은 부분을 나눴을 뿐인데 내가 느끼는 여유는 백배쯤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K의 설거지 습관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는 식탁을 정리하면서부터 줄곧 수도를 틀어 놓는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수도에서는 계속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무심히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해지고는 했다. 말로하면 잔소리가 될 테니 내가 커피 물을 받거나 행주를 헹구면서 슬쩍 잠그기도 하지만 수도는 금세 좀 전 보다 더 시원하게 물을 흘려보냈다. 어느 날 보다 못해 내가 말했다.


“물 많이 버리면 지옥간대, 지옥문 앞에서 내가 평생 버린 물, 다 마셔야 된대.”


여섯 살의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공포심과는 달리 이 분, 늘 그랬듯이 들었는지 말았는지 별 반응이 없다.


한동안 마라탕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K와 딸아이 부부 함께 자주 가는 양꼬치 집에서 양꼬치와 마라탕을 칭따오를 곁들여 흡족한 저녁을 먹은 후 였다. 문득 테이블 위를 내려다보니 유독 내 앞에만 사용한 냅킨이 수북하다. 매운 음식을 먹을 때 K는 땀을 비처럼 쏟아내는데 나는 콧물이 줄줄 흐른다. 그렇다고 그의 자리에 땀을 닦은 냅킨이 쌓인 것을 본 적은 없다. 치킨을 먹으러 갔을 때에도 나는 냅킨 통을 아예 옆에 끼고 먹는다. 동생네 집에 가면 음식도 맛있고 디저트에 커피까지 만족한데 이상하게 그 집에는 휴지가 보이지 않는다. 달라고 말은 못하고 화장실 휴지를 뜯어다 쓰기도 했다. 심지어 커피숍에서 조차 한 장씩 얹어주는 냅킨이 불안해서 자율 준비대에서 몇 장 더 집어 오고는 한다.


양꼬치 집을 나오면서 K가 키득거리며 물었다.


“하늘나라 갈 때, 자기가 평생 버린 휴지는 어떻게 한대?”


“응? 아... 글쎄? 그건 잘...”


이모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구 년이 됐다. 이모는 내가 휴지를 낭비하는 것을 보면 뭐라고 했을까? 나무를 백 그루쯤 심어야 한다고 했을까? 백 년 동안 사람들의 눈물, 콧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했을까?

이모는 세상에 없지만 이모가 했던 말은 아직도 수도를 틀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경고를 늦추지 않는다. 물을 쓸 때마다 나는 이모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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