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 심은 데 콩 났네

by 이연숙
20211217팥 심은 데 콩 났다.jpg



절임배추가 배송됐다.

박스를 열어보니

배추보다 한 쪽 귀퉁이에 얌전히 벗겨 놓은 귤껍질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배추에 영향이 없을 것은 알지만

어쩐지 기분은 매우 찜찜하다.

김장 양념을 준비하느라 벌려놓은 일이 많아 분주한 가운데

대충 사진만 하나 찍어놓았다.

그 사진으로 뭘 어떻게 할 거라는 생각은 없이

박스를 뜯으니 이렇더라는 문자를 보내 놓았다.


K와 둘이서 마냥 하다보면

어찌어찌 하루 안에는 되겠지 싶으면서도

K2에게 도움을 청한 건 매우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이 빠르지도 않은데다

사실상 시댁에서 김장 독립을 한지 이제 겨우 3년 차라서

일에 앞뒤도 없으면서 마음만 바빴다.

요령이 없으면 미리미리 준비라도 해두자 싶어

전날부터 나름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김장이 무려 열두시가 되기 전에 끝나는 진기록도 세웠다.

돼지 수육과 굴 보쌈으로 점심을 먹고 있자니

비로소 김장을 했네 싶어 마음이 그득해진 기분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요. 라고 하네?”


업체에서 문자에 답이 그렇게 왔다는 말을 하자

아이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절대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거네.”

“그렇게 왔다고 하면 우선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 거지 어떻게....”

“그렇지, 자기 잘못이 아니더라도 택배사에 확인을 하든 어쩌든 일단 고객한테는 사과를 하는 게 먼저지.”


아이들이 말하는 동안

그러게요, 다른 것도 아니고 음식인데 포장 뜯자마자 이런 상황이라 당황했네요.


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조금 후 도착한 답

네 그러셨을 것 같아요ㅠ



어차피 김장은 했으니 뭘 어쩌자는 것도 아닌데

그러고 보니 그 쪽에서는 사과는커녕

어떤 식으로든 책임 질 말만 피해가는 느낌인 것 같아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어이가 없네, 한 철 장사라고 끝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사람 제대로 만났으면 환불을 해주든 새로 보내주든 확실하게 보상하지 않고는 안 끝날 일인데.”


바보가 된 기분이다.

K도 한 마디 거들었는데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모두 나를 쳐다본다.


“삼촌이 아는 사람이라고 숙모가 소개했던 것 같은데...아닌가?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

“뭐 그냥, 다음에는 거기서 하지 않으면 되지 뭐.”


업체에 다시 문자를 하지 않았다.

그 업체는 나한테 까인 거다.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새삼, 내 아이지만 고 놈 참 똑똑하네, 싶었다.

어떻게 나 같은 엄마에게서 저렇게 똑 부러진 아이가 나왔을까?

신기하다.

분명 허물렁 팥을 심었을 텐데 단단한 콩이 되어 나왔다.

하긴, 내가 팥이었어도

K가 콩이었으니 콩이 나온 게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차가 보이는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