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2021
예전에 10년 동안 살았던 30년 된 아파트는 정남향이었다.
거실 테라스에서 앞 동에 반쪽이 가린 청계산이 보였고
출입문에서 승강기까지 이어지는 복도에 서면
관악산 능선이 아이맥스 영화 화면처럼 펼쳐져있었다.
드나들면서 매일 보이는 광경이지만 볼 때마다 감탄을 하고는 했었다.
미국에서 1년을 살게 된 것을 계기로 이사를 했고
지금 사는 곳으로 오기 전에 살던 집에서는 4년을 살았다.
경제성이며 투자가치는 안중에도 없이
저층 빌라의 1층에 살고 싶어 그런 집을 찾았을 뿐이었다.
앞뒤로 화단이 있었고 게다가 거실 쪽 테라스 앞에는 오래된 목련나무가 있었다.
그야말로 단독주택에 살지 않는 한 누려볼 수 없는 혜택이었다.
도시가 20년을 훌쩍 넘어 30년이 다 되어가는 덕분으로
나무들이 굵어져 숲속의 집처럼 보였다.
또 하나, 지하에 세대별로 창고가 하나씩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다 좋아서 그 집이 동남향이라는 건 옥의 티 정도로 생각했었다.
처.음.에.는.
겨울이면 서울 기온보다 평균 3도 가량이 낮다는 말을 듣고
집수리를 할 때 무엇보다 내 외부 새시를 새로 했다.
첫 겨울은 얼결에 지나갔다.
두 번째 겨울은 달랐다.
집 안에서 내복을 껴입고도 후리스를 입는 것이 평상복이었다.
두툼한 폴리소재 덧신은 필수였다.
난방을 올리면 조금 낫긴 했지만 이상하게 항상 등이 시렸다.
올케는 집에 올 때마다 이 집에만 오면 발이 시리다며 알아서 실내화를 꺼내 신었다.
추우니 몸이 움츠러들고 몸을 움츠리니 마음이 우울해졌다.
세 번째 겨울로 들어설 무렵 어느 날
집 안이 을씨년스러워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집 안과는 달리 밖은 초겨울 쨍한 햇살이 눈이 부셨다.
그 때서야 알았다.
집 안에 햇살이 한 줌도 들지 않는 시점이 있다는 것을.
그 것이 12월, 바로 이 무렵 쯤 이었던 것 같다.
연 초에 집을 보러 이 집에 왔을 때
다른 건 보이지 않고 거실 끝까지 햇볕이 들어와 있는 것만 보였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냉장고 자리는 어떻게 생겼는지, 가스대가 있었는지 오븐렌지가 있었는지
방문은 무슨 색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고
테라스 창은 당연히 두 쪽 미닫이 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집을 보러 와서 집은 보지 않고 해만 보고 간 셈이었다.
3월에 이사를 한 후
이전 집 하고는 반대로 이 집은 여름을 지날 때
햇볕이 테라스를 완전히 사선으로 비켜가느라 한줌도 들어오지 않았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비켜가던 햇살이 조금씩 거실로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12월이 되면서부터는 거실과 나란히 있는 방 두 개 모두
햇볕이 한 바닥 내려앉기 시작해서
겨울이 깊어질수록 아예 길게 드러누워 넘실거린다.
소파를 창가로, 테이블을 거실 중간으로 옮기고
노트북을 들고 나와 글도 쓰고 책도 보고 미드도 본다.
산책을 하고 돌아와 소파에 길게 누웠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훈훈한 느낌에 깨어보니 햇빛이 얼굴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이러다 집 안에서 얼굴 타겠네, 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진다.
10년 살았던 집이 정남향이었다는 것을 그 집을 떠난 후에야 알았다.
늘 곁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느라 그 것의 존재조차 몰랐던 거다.
돌아보고 의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았던 거나 마찬가지다.
올 해는 햇살 한 줌이 아쉽던 집에서
해 잘 드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됐고
글을 쓸 때 비로소 내가 잘 살고 있다고 느껴진다.
오래 잊고 있던 것들을 기억하게 됐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이런 느낌을 오래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이 글을 읽어주시는 그대가 고맙습니다.
새해에 건강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