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열여섯 살에는 스무 살의 의미를 특별하게 생각했었나보다.
열여섯 살이 되는 설날 아침에 일어나니
스무 살이 되려면 겨우 4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잔뜩 들떠 있었다.
중학생이었을 테고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터다.
스무 살에 대한 어떤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스무 살이라는 말 자체가 좋았을지도 모른다.
정작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내가 스무 살 인 것도 의식하지 못했고
열여섯 살에 스무 살이 되는 것을 기대했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때와 비슷한 기분으로 예순 살이 되었다.
아직도 60이 내 나이를 말하는 숫자로 느껴지지 않아
의식할 때마다 흠칫 놀라고는 한다.
오래 전에 부산에 살 때 알게 된 친구, A가 있다.
이미 수필로 등단을 했고 그림을 그리는 친구였는데
사진을 배우러 갔다가 만났다.
그리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으로 낯선 동네에 적응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남편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나 온 나의 상황을
나보다 격하게 공감하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이 많았지만
그 친구의 일상은 한 살보다 늘 몇 걸음 앞 서 있었다.
크게 다른 점은 없는 것 같으면서도
모든 면에서 나보다 딱 부러울 만큼 나은 A에게
질투를 느끼기 보다는 그대로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전공을 한 적이 없는 데도
삽화를 넣은 수필집을 이미 출간했고
매체에 일러스트를 곁들인 단상을 연재하고 있었다.
처음 배우는 거라던 사진 역시
A의 그 것은 특별해보였다.
그녀는 예술적 재능을 타고 난 것 같았다.
다소 허당기도 있으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했다.
A와 함께 있는 시간은 늘 유쾌했다.
그런 친구를 알게 된 것이 좋았다.
갑작스러웠던 K의 부산 발령조차
행운이라고까지 생각될 정도였다.
“난 환갑이 되면 찐한 연애를 할 거야.”
맥주를 한 모금 물었다가 하마터면 뿜을 뻔 했다.
행여 누가 들었을까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단체 출사 후 뒤풀이 자리였는지
둘이 만났을 때였는지,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데
A의 그 말은 오랫동안 이따금 한 번씩 떠올라서 혼자 웃었다.
A가 말하니 어쩐지 멋있어 보여서
나도 예순에는 사랑에 빠져 볼 거라고 말하고는 맥주잔을 부딪혔다.
궁금하기는 했다.
왜 한 살이라도 젊고 예쁠 때가 아닌 하필 콕 찍어 예순이라고 했는지.
내가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도 몇 해 동안은
내가 부산에 가기도 하고 A가 서울에 오기도 했다.
각자 출발해서 제주 공항에서 만난 적도 있고
어느 해엔가는 겨울 대관령을 양떼처럼 몰려다니며
코가 빨개지도록 사진을 찍고 웃고 밤새도록 수다에 빠진 적도 있었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져서인지
내가 눈치 채지 못한 오해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별 이유 없이 무심해진건지
언제부터인가 차츰 연락이 뜸해지다가 지금은 끊겼다.
내가 예순 살이 됐으니 친구는 작년에 예순이 됐겠다.
A는 지금 연애를 하고 있을까?
십여 년 만에 그의 블로그를 들여다봤다.
친구는 정말 사랑에 빠져있었다.
그 사이 손주가 둘이나 되어
블로그는 온통 인형 같은 아기들 사진 천지였다.
정이 뚝뚝 묻어나는 A의 달콤한 목소리가 컴퓨터 화면을 통해서 들리는 것 같다.
세상 그보다 행복한 표정이 없었다.
연애가 아니더라도
예순에는 사랑하는 게 조금 더 쉬워진 것 같은 느낌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사람들 시간들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애틋함이 생기고
쉬이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무심히 읽었던 소설에서 전에는 몰랐던 감동이 느껴지고
무덤덤하게 봤던 오래 전 영화를 보며 눈물을 찍어낸다.
치열하게 살았던 적은 없지만
불안과 긴장 속에서 주위의 눈치를 보며 살았던 시간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조금 느긋해져도 될 것 같고
마음을 표현하는 데 좀 더 솔직해져도 괜찮을 것 같다.
나이가 드니 좋은 것이 많다.
열여섯 살에 스무 살을 기다린 4년 보다
이제 막 쉰에서 예순이 된 시간은 거의 울트라 메가급 스피드로 다가왔다.
스무 살을 기다렸다면
예순은 오지 않기를 바랐고
나와는 무관한 나이라고 생각했었다.
A는 그 때 이미 알아차렸던 걸까?
예순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거라는 것을.
예순에 연애를 할거라는 말은
예순에도 두근거리는 일상을 살고 싶다는 의미였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 것 같다.
가끔 한 번씩 무기력해지지만
내 심장은 아직 별 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