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이유

오늘은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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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아직 겨울기운이 가시지 않은 천변은 황량했다.

자전거 도로와 보행로 양 옆으로 더러 꽃을 심어 놓은 곳도 있었지만

그 주변으로는 정리되지 않은 나무와 잡풀로 뒤엉켜있었다.

봄이 되면서 그 길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주 오는 사람과,

걸음 속도가 다른,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 걷느라 신경을 써야했다.

산책로에서 조차 정체현상이 생기는 상황이 웃기면서도 슬펐다.

나무보다 많을 것 같은 빌딩숲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신호등이 없고 내가 흐르는 천변으로 몰려오는 것이다.

아이가 사는 집 근처의 갑천 변과는 사뭇 대조되는 광경이었다.

지난겨울 그 곳에 갔던 날 저녁 산책을 하면서는

오히려 마주치는 사람이 너무 없어 긴장이 되기도 했다.

이 곳에서 첫 겨울을 보내는 지금

산책은 겨울이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날이 추우니 사람들이 별로 없다.

강아지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간혹 혹한기 체험이라도 하듯 똘똘 싸맨 자전거 족이 보일 때도 있지만

바닥이 보이지 않던 봄가을에 비하면 길이 부쩍 넓어진 느낌이다.

자전거를 타고 남쪽 방향으로 약 4킬로미터쯤 가면 산책로로 조성해놓은 길은 끝이 난다.

물은 그 위에서부터 내려오는데 진원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길의 시작에서부터 한강으로 갈수록 천변 조경이 점점 화려하다고 한다.

하류 쪽에는 봄이 되면 사진을 찍으러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 곳의 꽃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인스타나 페북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상류 방향으로 올라갈수록 길은 좁아지고 길 가장자리는 어수선하다.


그런데 지난 해 막 겨울에 들어설 무렵이었나?

가로수 가지치기를 하는지 길 가에 잘린 나뭇가지들이 수북이 쌓인 곳이 자주 눈에 띄었다.

어떤 날은 길에 표시 선을 다시 칠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고

어느 날에 보니 마른 풀을 깎아 건너편 길이 훤하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군데군데 나무를 벤 흔적도 있었다.

둔치의 폭이 좁아 산책로를 좁게 조성할 수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나무를 베고 키 높은 잡풀들을 베어내고 나니 꽤 넓은 평지가 됐다.

그런 곳은 몇 군데 더 있었다.

잘린 나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넓어진 천변 풍경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설렜다.

내년 봄에는 이 곳에 꽃을 심으려나?

개나리 유채 진달래가 먼저 폈다 지고나면

여름에는 수국도 심고 가을에는 코스모스도 심겠지?

중간쯤 어디에는 작은 벤치를 놓을지도 모르지.

나와 관련성 1도 없는 단지 옆 비즈센터 건물이 완공된 후에도 그랬다.

봄이 돼서 일층 상가에 점포들이 입주를 하면

이 주변에 사람들로 북적이겠지?

그러면 집에서 내린 커피를 들고 나와

건물 사이에 있는 소공원에서 해바라기를 해야지.

그러다 한 번씩 천변도 걸어보고

겨울이라 한 번도 앉아본 적 없는 돌 벤치에 앉아 물멍도 해봐야지.


내가 언제 이렇게 봄을 기다려 본 적이 있었나?

이 전의 봄하고는 다른 느낌으로 올해 봄은 간절하게 기다려진다.


봄에는 조카가 수술을 잘 이겨내고 다시 예전처럼 건강한 청년이 되면 좋겠다.

봄에는 사위가 발령이 나서 서울로 이사 오면 좋겠다.

봄에는 엄마가 다시 노인정에도 가고 전철타고 우리 집에도 올 수 있으면 좋겠다.

봄에는 캠핑을 가면 좋겠다.

봄에는 기분 좋은 일이 많아지면 좋겠다.

봄에는

봄에는

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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