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친구 A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어릴 때 이사를 많이 다닌 관계로 소꿉친구라든가 초등학교,
심지어 중학교 동창과도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는 없다.
그러므로 사실상 가장 오래 된 친구인 셈이다.
코로나로 만나지 못한 지난 2년을 제외하면
1년 중 서너 번 정도, 즉 분기에 한 번 꼴로는 만나서 점심을 먹고 수다도 떨었다.
일부러 말 한 적은 없지만
우리는 알고 지낸 시간만큼 서로 깊이 이해하는 사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5년 쯤 전에 A와 제주 여행을 했다.
나는 일주일 일정으로 먼저 가 있었고
출근을 하는 A는 주말을 끼고 휴가를 하루 내서 3박 4일로 합류했다.
공항에 마중 나갔다가 내가 묵고 있는 세화리 숙소로 가는 정류장에 내렸을 때
“어머, 제주도 온 거 같지 않다 얘, 우리 시댁 동네하고 똑같네.”
아차 싶었다.
30년 지기 친구였지만 밤을 같이 보내는 여행을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대부분 비슷한 상황에서 본 모습이었다.
유쾌하고 긍정적이고 재미있는 성향의 A는
여행도 좋아하고 노는 것도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보는 순간 탄성이 나오는 수려한 풍경을 보는 것이 A의 여행 목적이라면
그 무렵 사진기를 필수품처럼 들고 다니던 나는
오래됐거나 쓸쓸한 풍경에 마음이 끌려 그런 곳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세화리 버스 정류장 풍경이 삼척의 풍경하고 닮았는지는 처음 알았다.
우도에 갔을 때는 그나마 나았다.
우도 등대로, 산책로로 마냥 걸어 다니는 동안
와! 좋다! 를 연발하며 이런 데 데려다 줘서 고맙다고 까지 했다.
A와의 첫 여행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이 후로 만날 때마다 A는 그 때 얘기를 자주 하곤 한다.
B는 온라인 음악 채팅방에서 만났다.
씩씩하고 시원시원한 그녀의 성향은
실시간 올라오는 대화글로도 선명하게 전달이 됐다.
어느 해 가을, B가 근처에 예쁜 곳이 많다며 놀러 오라고 했다.
시외버스가 광혜원에 멈췄을 때 우리는 한 눈에 서로를 알아봤다.
B가 말하던 카페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서 있었는데
그래서 인지 이름이 [산에서 산에서]였다.
가을이 깊숙이 내려앉은 주변 풍경은 매혹적이었다.
스무 살 때부터 니콘 카메라를 가지고 혼자 사진을 찍었다는 그녀는
나를 모델로 정신없이 사진기를 눌러댔다.
네 나이에 그렇게 천진하게 웃는 사람 처음 봤다며.
B는 찍은 사진을 곧바로 현상을 해서
어떤 것은 확대를 하고 어떤 사진은 액자에 넣어 우편으로 보내주었다.
그 때의 기억은 아직도 단풍 빛이 화사한 가을날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C는 부산에 살 때 사진 강좌반에서 처음 만났다.
기계치에다가 사진이라고는 찍히는 건 모를까 내가 찍는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다.
내가 강좌에 등록한 것은 순전히 K의 생각이었는데
갑작스러운 타향 생활로 우울에 빠진 나를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따지고 보면 그 것이 인생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된 것은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진여행을 간답시고 새벽이고 밤중이고 집을 비우는 나를 보면서는
아차 싶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수업이 끝나면 강의실에서 스프링처럼 튕겨 나와
집으로 가기를 반복하다 보니 3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마지막 수업은 영도다리 야간 촬영이었는데
추위에 오돌오돌 떨면서 벌브셔터를 열어놓고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었다.
나 뿐 아니라 수강생 대부분이 낯을 많이 가리는 성향으로
그 때까지 제대로 대화 한 번 나눴던 사람이 없었는데
뒤풀이를 하러 간 자리에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냥 말해도 싸우는 것처럼 들리는 부산 사투리로 각자 자기 여행담을 얘기하는데
오늘 안에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 때 먹은 음식이 감자탕이었던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한 쪽 귀퉁이에서 신발 신을 준비만 하고 있던 내게
C가 먼저 말을 건넸다.
“나도 10년 전에 남편 따라 처음 부산에 와서 낯설고 어색해서 한참 힘들었어요.”
10년 전 자신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C는 내게 호의적이었다.
강좌를 듣던 3개월보다 수료 후 촬영 여행을 다니면서 한결 친해진 느낌이었다.
그 중에도 몇몇 사람들은 소그룹으로 여행을 했는데
나는 C와, 운전을 하는 반장과 한 팀이 되어
경상도로 전라도로 때로 제주도로 사진촬영을 다녔다.
K에게 부산 생활이 인생 중 화양연화였다는 것처럼
다른 방향으로 나 역시 그 곳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았다.
C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감성적인 사진을 찍었다.
통찰력이 있었고 사람들을 끄는 힘이 있었다.
B에게서 사람에게 다가가는 용기를 배웠다면
C를 보면서는 사람들 안에서 스스로 단단해 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그 때는 그들이 절친이었다.
같이 나이 들어가면서 우리만 아는 오래 전 기억들을 나누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B도 C도 없다.
그쯤이 성인이 되어 만들어진 우정의 유효기간이었거나
나는 모르는 사이 내가 상처를 주었거나
아니면 그냥 그 것이 그들의 이별 방식이었거나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제는 오랫동안 찾아보지 않던 두 친구의 블로그를 들여다봤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생각을 하다 보니
어쩐지 찌질한 전남친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B도 C도 각자 자기들 방식대로 잘 지내고 있었다.
어느 소설에서인가,
한 번 끊어진 인연은 다시 이어진다고 해도 언젠가는 끊어지게 된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알게 됐지만 특별히 뜨겁거나 차가워진 적 없는 A나
호적에 없는 친언니가 생긴 것처럼 내게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줬던 B나
짧지만 굵게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바꿔 주었던 C 모두
내게는 베스트 프렌드다.
그 것이 한 때 였든, 영원하든.
그들은 몰라도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