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떤 아줌마가 나를 이렇게! 치웠어.”
이렇게, 라고 말할 때 팔까지 휘두르며 아이가 말했다.
지하철을 타는데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자기를 몸으로 밀쳐 저만큼 튕겨 나갔는데
돌아보니 할머니보다는 조금 젊어 보이는 아줌마가 막 자리에 앉고 있더란다.
그러더니 나를 어깨로 밀쳐 보이며 다시 한 번 상황을 재현한다.
“이렇게! 이렇게 말이야.”
안 그래도 체구가 그리 크지 않은 아이는
놀라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아줌마들은 사람이 안 보이냐고
도대체 왜 다른 사람을 밀치면서 자기 갈 길만 가냐고.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엄마가 지하철을 자가용 삼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던 시절
동대문 시장에 털실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다 열차가 도착해 문이 열렸다.
엄마는 사람들이 다 내리기도 전에 밀고 들어가는 그런 매너없는 할머니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맞은편에 빈 좌석이 보이자
앞에 서 있던 학생의 백팩을 치는 줄도 모르고 성큼 가서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가방을 메고 있던 아이는 체격이 있어서인지 튕겨 나가지는 않았고
힐끔 뒤를 한 번 돌아봤을 뿐이었다.
미안하다는 눈인사를 건네고 엄마 앞에 섰다.
엄마에게는 학생은 보이지도 않았고 가방에 대한 감각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미안 할 것도 없고 아무 일도 없었던 거다.
작년 봄, K가 자전거를 사 주었다.
이 전에 탔던 것들과는 다르게
안장이 편하고 핸들과 기어 조절이 쉬우며
무엇보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새 자전거를 타고 천변으로 나갔다.
상류 쪽으로 가면 작은 대나무 숲이 있다며 K가 그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갈수록 길이 좁아졌다.
보행로와 자전거도로를 구분해 놓은 선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그런 만큼 지나는 사람의 수도 적었다.
더러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이어폰을 낀 사람보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자전거가 한 대 휙 지나갈 때마다 들리는 음악 소리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대부분 경쾌한 트로트가 많았는데
어떤 때는 자전거보다 음악소리가 먼저 들리는 경우도 있었다.
왕복 8km 쯤 될 거라는 경로 중
돌아오는 길에 쉼터가 있어 잠시 자전거를 세웠다.
안 타던 자전거를 타느라 벌써부터 허벅지가 후들거리고
어깨가 뻣뻣해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자전거들이 하나 둘씩 쉼터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는 휙 지나가 버리니 잘 몰랐던 음악들이
하나씩 모두 한 곳에 모이니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아모르파티에 무슨 메들리에 나훈아 등등 나는 알지도 못하는 온갖 노래들이
제각각 자기 소리로 떠들어대자 그건 음악이 아니라 소음폭탄이었다.
누구도 소리를 끄거나 줄일 생각 따위는 없는 것 같았다.
사이클 복장을 한 자전거 주인들이 헬멧과 선글라스를 벗자
놀랍게도 거의 나이가 드신 어르신 들이었다.
그 때는 나도 시끄럽고 불쾌한 마음에 이어 아이와 비슷하게 좀 의아하다고 생각했었다.
왜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 생각은 안하는 걸까?
자기가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 음악을 들어야 하는 건 아닌데
왜 소음 민폐를 끼치는 걸까?
산책을 할 때면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는 했다.
지난 달, 이명 때문에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커피도 안 좋고 이어폰 사용이 좋지 않다고 했다.
이어폰을 끼지 않으니 당연히 전보다 주변의 소리가 잘 들렸다.
그 중, 유독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들리는 음악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그 때서야 지난 봄 자전거 쉼터에서의 일이 생각이 났다.
‘아하, 이제 알겠네.’
나이가 들면 감각이 무뎌진다.
더구나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면서
가린 건 코와 입인데 이상하게 귀도 잘 안 들리는 것 같고
사물을 분별하는 데도 전보다 시간이 걸리는 기분이다.
그러다보니 상황 판단이나 반응 속도가 전보다 느려지는 것 같기도 하다.
감각만큼 마음도 무뎌지면 좋겠다.
그리하여
산책 가자고 하면 갑자기 피곤해지는 A
얘기 좀 하자고 하면 문득 분주해지는 B
차별을 하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C
점점 조금씩 멀어지는 D
모두 그저 무심히 흘려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