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전화하고 있잖아.

오늘은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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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H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

전화기 너머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그 집도 개를 키우니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짖나보다 했다.

그런데 통화를 하는 동안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이윽고 말소리가 개 소리에 묻히자 잠시 말이 끊겼다.


“그런 적 있지 않아요? 애들 어릴 때 꼭 전화만 하면 옆에 와서 조르던 거?”

“그랬죠, 희한하게도 통화만 하려고 하면 뭘 찾고, 심심하다고 보채고 그랬죠.”

“하하 우리 쫑아가 지금 그래요. 가만히 있다가도 요즘 내가 전화만 하면 저러네.”


쫑아는 H네 여덟 살 된 반려견 이름이다.

잠시 통화를 멈춘 사이 방으로 들여보냈는지 간식을 줬는지

개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오래 전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작은 아이가 낯가림이 심해서 많이 울었고

엄마에게만 껌처럼 붙어 있으려 한 것 말고는

아이들 키우면서 크게 힘이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신혼 초에는 시집살이와 다름없는 시댁에서 오 분 거리에 사느라, 아이를 키우느라

친구들과 연락이 끊어져 가고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했었다.

작은 아이까지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서

비로소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 몇몇은 소식이 끊겼고 몇은 결혼을 했으며

한 친구는 남편 직장 따라서 멀리 외국에 나가 산다고 했다.

가지고 있던 전화번호 수첩에는 두 자리 국번 번호가 적혀있었는데

그 무렵 지역 번호와 더불어 전화번호 체계가 한차례 개편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오래전 집 번호를 아직 사용하고 있는 친구를 찾은 적도 있었고

간혹 통신사마다 부여되는 앞자리를 붙여 전화를 걸어 봤다가 연결이 된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빈곤한 친구관계를 회복하는 성과를 이뤄낸 셈이다.

어떤 친구는 내가 결혼과 함께 잠수를 탔다고 했다.

전화는 연결이 됐으나 아이들이 어려 아직 완전하게 자유롭지는 못한 터라

만나기는 어려웠고 대부분 통화로 밀린 수다를 떠는 일이 많아졌다.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전화만 붙잡으면 한 시간을 넘기는 일이 보통이다보니

아이들에게는 엄마와 같이 있기는 한데 지금 여기 없는 것 같았을 터다.

꼭 엄마가 통화를 할 때 아이들은

배가 고프거나, 아프거나

궁금한 게 많아지거나

책이 읽고 싶거나

친구네 집에 가도 되는지 물었다.


“엄마 전화하고 있잖아!”


정작 통화가 끝났을 때

아이들은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내가 다른 데 집중하는 것을 참지 못하기는 K도 마찬가지다.

3월 새로운 일정이 시작되기 전 잠시의 휴식기에 들어간 K와

요즘은 삼시세끼를 함께 하는 중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면

K는 단추와 산책을 나가고

나는 집안 정리와 청소를 마친 후 노트북을 연다.

K가 산책에서 돌아오면 자기 방에서 각자 볼 일을 본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내가 음악을 켜 놓고 가볍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는

방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던 K가

마음잡고 뭔가에 집중하려는 순간에 꼭 옆에 와 앉아 말을 건다.

설마 방문 앞에서 귀를 기울이다가 저사람 집중하려고 하네? 말시켜야지.

할리는 없겠지만 그 타이밍이 늘 기가 막힌 건 사실이다.

낮잠을 자다가도 하필 내가 통화하는 시점에 내 방문을 열고 나간다는 인사를 하는가 하면

한참 원고에 집중하고 있는데 잠깐 방으로 좀 와 보란다.

얘기 좀 하자고 하면 대번 지루한 표정부터 짓다가

내가 TV 좀 집중하려고 하면 궁금하지도 않던 설명이 장황하다.


‘이 사람, 관종인가?’


하긴 그게 어디 K뿐이겠나.

아이들도 노인들도 심지어 강아지도 관심 받고 싶은 건 마찬가지겠지.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왜 꼭 통화중일 때인지.

왜 맘 잡고 뭐 좀 해보려고 할 때인가 하는 거다.

관심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받고 싶을 때와 줘야 할 때를 가르쳐주는

학원 같은 건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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