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눈이 탐스럽게 펑펑 내린 다음 날이었다.
거래하기로 한 티 포트를 예쁜 쇼핑백에 넣어두고
사흘 전에 정했던 약속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 30분을 앞두고 시간을 30분 뒤로 미루자는 톡이 왔다.
그러마 했고, 도착 오 분 전쯤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러다 문득 약속 장소를 어디로 했었는지 헷갈렸다.
아파트 출입구는 총 다섯 곳인데
그 중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남문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북문이라는 단어가 자꾸 어른거리는 것이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채팅창에는 버젓이 00일 00시에 북문에서 보자고 돼있었다.
북문은 집에서 가장 먼 곳에 있다.
(짧은 거리이지만 북문과 남문 사이에 버스 정류장이 세 곳이나 있는)
그나마 미리 생각이 나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도착 전 연락을 받기 전에 집을 나섰다.
눈길을 조심하느라 발목에 힘을 주어가며 약속장소에 도착했더니 5분 전이었다.
도착 전 연락은 아직 오지 않았다.
혹시 몰라 휴대폰 화면을 켜 놓은 상태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15분이 지났다.
오시는 중이냐는 문자를 보냈다.
이제 00역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뭐시라?)
다시 5분이 지났다.
복지 센터 앞이란다.
(복지센터는 남문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북문에서 만나기로 한 문자를 긁어 보냈다.
00 타운 앞이란다.
(지금 뭐하시는...??)
제가 걸어가는 것보다 차로 이쪽으로 오시는 편이 낫겠다고 했다.
파리바게트 앞이란다.
(어쩌자는 거죠?)
그 앞이 남문이니 통과해서 쭉 오시면 된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이미 약속시간에서 20분이 지나있었다.
지금 어디냐고 다시 물으니 북문이란다.
(아 뭐 이런...!@#$%%^&*)
근처에 금방 와서 선 자동차는 보이지 않는다.
안 보인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아이스크림 가게 앞이라고...
화도 나고 짜증도 나서
만나면 한마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씩씩거리고 있는데
건널목 건너편에 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보였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폼으로 봐서 90% 당근.
너 이제 죽었어! 하는 마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갔는데
힝..
적어도 70중반 정도는 돼 보이는 여성분 이었다.
하려던 ‘한 마디’는 종적을 감추고
하마터면,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말할 뻔했다.
쇼핑백을 받아 들고 두 번 접은 만 원짜리를 건네고는
미안하다 죄송하다 말 한마디 없이 돌아 차로 향하던 그가 휙 뒤를 돌아본다.
아, 뭐 괜찮아요. 라고 말하려는데
“근데 이거 작동은 잘 되는 거죠?”
“아, 네...”
작년에 이사를 앞두고 당근 온도가 한참 올라갔다.
대부분의 당그너들은 일정수준의 매너가 있었다.
그 중에는 시간이 지나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내가 이러려고 당근을 했나, 라는 자괴감이 들게 하는(?) 분들도 있었다.
보스턴 중고시장에서 샀던 가죽 서류가방은
사실상 한 번도 들고 나간 적은 없었다.
실용성보다 추억 때문에 간직하던 것이었는데
소장 욕심은 보관할 공간이 없다는 현실을 이길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구매금액보다 올려 내 놓아도 시원치 않았지만
나한테나 추억이지 다른 사람들에게야 그저 흔하지 않은 가죽가방일 뿐일 터라
3분의 1가격으로 올려놓았다.
그걸 또 깎자는 사람이 있었다.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냐며.
차라리 거래가 안 되기를 바라며
에누리는 이미 했으며 나는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랬더니 대뜸, 그거 남자가 들어도 괜찮냐고 물었다.
그거야 개인 취향문제이니 상관없겠지만 끈이 길어서 좀 이상할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면 끈을 줄이는 수선료만큼 가격을 빼주면 안 되겠냐고 한다.
(으...내가 이러려고 당근을 했나, 라는 자괴감은 바로 요 부분)
결국 거래는 성사가 됐고, 대신 거래를 하고 온 K의 말에 따르면
B**를 타고 온 70대 쯤 돼 보이는 남성이라고 했다.
그 거래가 워스트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반면
같은 시기에 두 번째 거래를 하러 와서는
거래대금과 빼빼로 한 상자를 내밀었던 **맘
나의 생애 첫 책상을, 남편과 아들까지 동원해서 손수레에 실어가면서
서운한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걱정하지 마세요, 좋은 기운 받아서 저도 소중하게 잘 쓸게요.”
라고 속삭여 주던 꾸**
내 놓았던 큰 화분들을 싣고 나서 비실비실하던 화분 하나도 혹시 가져 가시려냐고 물으니
“주시면 제가 한 번 잘 키워볼게요.”
라며 흰 봉투에 담긴 대금을 건네주던 ***주
생각해보니 나쁜 거래보다 착한 거래가 훨씬 더 많았다.
그래도 걱정이 되기는 한다.
내가 70대가 되어서 과연 착한 당근인이 될 수 있을지.
물건 값이나 깎고 마음대로 안 되면 버럭버럭 소리나 지르는
블랙 컨슈머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닐지도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