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지간하면 나쁜 기억은 빨리 털어버리는게 좋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설날만 되면 초하룻날부터 눈물바람을 했던 새댁 때 기억이 떠오르고는 한다.
결혼하고 첫 설날이었다.
연예인에게 신인상이 인생에서 한 번 받는 상이듯이
새댁시절도 인생에 한 철밖에 없다
하여 명색이 새댁이니 한복에 두루마기까지 입고 시댁에 갔다.
한국전쟁 때 팔남매 중 사남매가 월남을 했던 시댁 어른들은
일가를 이루고 서로 우애 있게 지내는 것이 인생목표인 것처럼 보였다.
명절이면 조부모님과 큰아버지의 차례를 지내야 해서
하루 전 날 사촌 큰집에 가서 차례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녹두용과 만두용 돼지고기 양이 거의 돼지 한 마리는 되겠다며 깔깔 웃는 사촌 동서를 보면서
그게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명절 며칠 전부터 여러 차례 장을 보고 준비를 해놨기 때문에
할 거 별로 없다고 했는데
아침 아홉시에 시작한 녹두부침개와 만두 빚기는 밤 열한 시가 돼서 끝났다.
녹두 반죽을 담은 커다란 양푼이 비워지면 다시 채워지기를 몇 번인지
나중에 들은 얘기로 녹두 서 말 하던 것을 줄여, 이 번에는 두 말 밖에 안 된다고 했다.
온 집안에 기름연기가 가득 찼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머리카락에서 기름 냄새가 풀풀 났다.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차례를 지낼 거라서 큰 집 문간방에서 끼어 잤다.
베개에서도 기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잠을 잤는지 말았는지 새벽 일찍 눈이 떠져 조용히 욕실로 가 머리를 감았다.
그 사이 사촌형님이 일어난 것 같았다.
머리에 수건을 감은 채 아침 인사를 했다.
그런데 형님 표정이 이상하다.
식구들이 잠에서 깨서 거실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꽃다운 새댁의 설움의 설날도 시작됐다.
“아유~ 세상에 초하룻날부터 여자가 머리를 감았지 뭐예요.”
첫째 큰어머니에게 고자질하듯 시작했던 그 말은
고모님, 둘째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우리 시부모님
시숙들 시누이들이 속속 집에 도착할 때마다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리플레이 됐다.
기름에 쩐 머리를 초하룻날 감은 여자가 대역죄인이 됐다는 사실보다
하루 종일 똑같은 말을 카세트테이프처럼 되풀이하는 형님이 더 놀라웠다.
세배도 해야 하고 친정에도 가기 위해 한복을 차려입고
기름에 쩐 머리카락으로 냄새 풀풀 풍기면서 가야했었던 건가?
집에 와서 옷도 벗어놓지 못하고 울었다.
창피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30년이나 지난 후
잊힌 건지 묻힌 건지 까마득했던 그 일을 다시 꺼낸 건 사촌동서였다.
“자네 큰엄마한테 되게 혼난 적 있지? 초하룻날 머리 감았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돌아가신 큰어머니가 벌떡 일어나
“내가 언제!!”
라며 튀어와 멱살이라도 잡을 일이다.
그 날 분명 큰어머니는 형님의 말을 듣고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그랬냐?’
한 마디 하고는 자리를 피했었다.
때린 사람은 발 뻗고 못 잔다고 했던가?
아니다, 때린 사람은 잘 자다가
자기가 때린 것도 잊어버리고 때린 데를 또 때렸다.
오미크론의 확산이 심상치 않은데다
K의 운전피로가 심해져 명절에는 집에서 쉬고
연휴가 끝난 후 평일에 시댁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이들도 연휴에는 휴가답게 쉰다고 했다.
아침부터 눈이 탐스럽게 내렸다.
올해는 눈 인심이 후한 것 같다.
설날 아침에 내리니 좋은 기운이 세상을 감싸주는 기분이다.
딸에게서 영상전화가 왔다.
랜선 세배를 받고 세뱃돈까지 톡으로 받았다.
새해 첫날에 딸의 전화를 받으니 좋아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오후에는 아들이 왔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는 떡국이 아닌 누룽지를 끓여먹었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오던 두통도 없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남아 일주일은 앓던 허리 통증도 없을 것 같다.
초하룻날에 머리도 감았다.
명절이 명절 같지 않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