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음과 다름, 그리고 흑백이 만나 완성하는 삶의 균형에 대하여
오랜 시간 소중히 채워온 기록이 한순간에 무참히 찢겨 나갔을 때, 우리는 다시 삶의 펜을 쥘 수 있을까.
영화 <패터슨>은 때로는 빈 페이지가 더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라는 극 중의 대사처럼,
단조롭고 텅 비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우리의 하루도 언제든 다시 새로운 시가 될 수 있음을 속삭인다.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은 언뜻 보면 지루하리만치 똑같은 일상의 축적을 보여주는 듯하다.
주인공 패터슨은 매일 같은 노선의 버스를 운전하고, 같은 장소에서 일기를 쓴다.
하지만 그 단조로운 표면을 조금만 들춰보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다채로운 미세함으로 진동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영화는 일상을 구성하는 '같은 것'과 '다른 것'의 대비를 통해 삶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같은 것들
패터슨이 운전하는 버스 노선, 일기(시)를 쓰는 장소(아침 출근 전의 버스 운전석, 점심시간의 폭포 앞, 퇴근 후 집 안 지하실),
그리고 그가 들고 다니는 비밀스러운 비밀 노트 등.
다른 것들
매일 아침 만나는 직장 동료 도니와의 대화(어느 날은 하소연을 쏟아내고, 어느 날은 차갑게 돌아선다),
버스 승객들의 대화 내용(아이들의 수다에서 철없는 어른들의 허세로),
그리고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버스 고장이라는 예외적 사건 등.
이러한 대비는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우리의 일상이 매번 똑같이 반복되어 지루해 보일지라도,
사실 그 안에는 매일 다른 대화와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흐르고 있다고.
일상은 결코 고여 있는 물이 아닌 것을 말이다.
흥미로운 대사가 있다. 패터슨의 노트가 찢겨 로라가 위로를 건네자
그저 물 위에 쓴 말들일 뿐이라고.
일상은 흘러간다, 고인 물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패터슨과 로라가,
로라가 그토록 집착하는 무늬인 '흑백'처럼 완벽하게 다르다는 사실이다.
패터슨은 일상의 여백을 가만히 두고, 그 공백을 자신만의 언어와 시로 채우는 데 만족한다.
그는 거창하게 세계와 줄다리기를 하려 들지 않는다.
반면 로라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덧칠하고 채워 넣으려 한다.
커튼과 벽에 기하학적인 흑백 패턴을 그리고, 농산물 직판장에서 컵케이크를 팔아 기뻐하며,
내친김에 컨트리 가수가 되겠다며 기타를 사고 강의를 듣는다.
그녀는 자신의 일상을 넘어 세계를 향해 자신을 증명하고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지만, 어쩌면 그토록 다르기에 서로를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건 패터슨의 태도다.
그는 로라와 함께 있는 집 안에서는 다소 수동적이며 웃는 빈도도 낮다.
오히려 버스 승객들의 엉뚱한 대화를 엿듣거나,
단골 바에서 닥과 얘기할 때, 에버렛과 마리의 사랑 이야기를 볼 때 미소 짓고 웃기도 한다.
짐 자무쉬는 사랑을 그저 '서로 마주 보며 끊임없이 웃고 행복해하는 상태'로 정의하지 않으려 하는 듯하다.
패터슨은 로라가 자신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그 간극마저 껴안는다.
그가 쓴 시 '호박(Pumpkin)'에서 다른 여자가 자신의 삶에 들어오는 상상을 해보지만,
결국 가슴이 찢어지고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 고백하듯 말이다.
다름을 인지하면서도 묵묵히 곁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 패터슨의 사랑이다.
이 부부의 삶에서 반려견 마빈을 빼놓을 수 없다.
마빈은 견고한 일상에 균열을 내는, 일기를 찢고 심통을 부리는 변주곡이다.
마빈은 패터슨의 야간 산책 중 항상 바 앞, 같은 곳에서 기다린다.
화요일과 수요일엔 그것이 익숙한 듯 얌전히 엎드려 기다린다.
하지만 동물적인 본능이 가득한 마빈에게 그런 일상의 축적은 지루할 뿐일 것이다.
주말 중 산책 코스에선 다른 길을 가려 고집하거나,
패터슨이 출근한 사이 우체통을 매번 비스듬히 기울여 놓으며 소심한 반항을 한다.
급기야 패터슨과 로라가 외출한 사이, 패터슨의 시 노트를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단조로웠던 패터슨의 일상에 닥친 가장 거대하고 폭력적인 상실의 순간이다.
그렇다고 마빈을 어떻게 하겠는가.
로라가 차고로 내쫓는 것 외엔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다.
패터슨은 점잖다. 그저 마음에 안 든다고 한 마디 던질 뿐이다.
그리고 산책을 나선다.
평생을 축적해 온 시를 잃고 상실감에 빠져 폭포 앞 벤치에 앉은 패터슨.
그곳에서 그는 우연히 패터슨 출신의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를 동경해 여행 온 일본인을 만난다.
시라는 공통분모로 대화를 나누던 일본인은 떠나기 전 패터슨에게 텅 빈 노트 한 권을 선물한다.
"때로는 빈 페이지가 더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패터슨은 그 빈 노트의 첫 장에 다시 펜을 든다.
"차라리 물고기가 될래?(Would you rather be a fish?)"로
끝나는 '선(The Line)'이라는 시를 적어 내려가며,
그는 다시금 새로운 가능성이 가득한 일상을, 월요일을 시작한다.
결국 <패터슨>은 단순히 예술과 탐미주의를 찬양하는 영화가 아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개인이 가진 고유한 흥미와 욕구, 예기치 못한 상실감,
그리고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과의 다름을 어떻게 조화롭게 엮어내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고 다정한 질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