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티앙 비베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상실하며 살아갑니다. 미련은 해충처럼 성장을 방해하죠. 상실은 때로 질병으로 번져 우리를 썩게 합니다. 더 이상 나아지지도, 나아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퇴보했다는 기분이 듭니다. 아무리 팔을 휘두르고 물장구를 쳐도 제자리를 맴돌 뿐입니다.
남자는 척추옆굽음증이 있습니다. 물리치료사가 수영을 권해 실내 수영장을 찾았습니다. 딱히 재미를 느끼진 못하고 있어요. 영혼 없이 풀 사이드를 왔다 갔다 합니다. 아무래도 시간 낭비 같습니다. 때려치우고 싶은 기분이 드는데 물리치료사가 말하죠. “수영장 계속 가야 된다.” 싫어도 일단은 참고 계속해 보라는 뜻이겠죠.
남자는 아레나 수영복을 입은 멋진 여자와 마주칩니다. 수영 실력도 훌륭합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수영이 삶의 일부처럼 보일 정도죠. 수영장에 오면 그녀를 먼저 찾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단순히 반했다는 감정 이상의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죠.
알고 보니 그녀는 과거에 수영 선수였고, 메달도 꽤 많이 딴 듯합니다. 말을 트고 나자 수영장에 오는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수영에 임하는 태도도 진지해졌죠.
남자는 고백합니다. “나는 있는 힘껏 노력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최선을 다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러고는 묻습니다. “수영은 왜 그만뒀어.”
여자는 대답합니다. “그냥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남자가 되묻죠. “그러면 네 길은 뭔 거 같은데?” 그러자 여자는 남자에게 같은 질문을 합니다. 남자는 대답합니다. “자기 길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건지 잘 모르겠어.”
남자는 다시 묻습니다. “이런 거 생각해 봤어?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못할 것 같은 거.”
여자는 한참이 지난 후에 대답합니다. “포기하기 싫은 것들이 있을 것 같긴 한데, 목숨까지 바치지는 못할 것 같아.”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한참 후 여자는 물속 깊은 곳으로 남자를 데려가 무어라 말합니다. 그러고는 물 밖으로 나와 무슨 말인지 이해했느냐고 묻습니다. 남자는 알아듣지 못했죠. 여자는 다음에 만나면 얘기해 주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남자는 그녀가 오길 기다리며 수영을 계속하죠.
그러던 어느 날, 깊은 물에서 잠영을 시도하다가 그녀처럼 보이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쫓아갑니다. 죽을 것처럼 숨이 막혔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죠. 마침내 풀 사이드에 도달합니다. 무언가를 상실한 기분이 들었을 때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무언가를 해냅니다.
이제 작가는 다시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에게는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못할 것이 있습니까?
바스티앙 비베스는 크로키하듯 장면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처음에는 너무 대충 그리는 거 아니야 했는데, 생김새가 명확하지 않으니 감정이입이 더 잘 되는 것 같더군요. 장점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일렁이는 선의 느낌이 수영장 물의 일렁임과도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감을 자극하는 제목도 좋았습니다. 간결한 대사와 절제된 감정 표현, 마치 수영하듯 흐르는 장면의 리듬도 상당히 세련된 느낌입니다. 소설을 읽지 않는 시대를 위한 소설의 미래가 이런 모습일까 잠깐 상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