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끼리 (1/5)

by 걍마늘

“캐나다 눈코끼리 알아?”

영원이 물었다.

“눈코끼리?” 빛나가 되묻는다.

“캐나다는 알아?”

“캐나다? 국기에 단풍잎이 있는 나라잖아.”

영원은 무릎까지 쌓인 눈을 푹푹 밟으며 전진했다. 운동장이 하얀 생크림 케이크 같다. 그 위에 설탕을 뿌리는 것처럼 눈이 온다.

“캐나다에 미국까지 이어진 어마어마하게 큰 산이 있는데 일 년 내내 눈에 덮여 있대. 빙하기 때부터 계속. 빙하기는 알지?”

바깥은 냉장고처럼 추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리털 파카를 입고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6월이고, 어제만 해도 에어컨을 틀 만큼 더웠다. 신기한 일이었다.

“당연하지. 공룡이 멸종했잖아.”

교문 앞은 부모와 아이들로 북적였다. 영원은 사람들을 비집고 나가다 미끄러운 바닥을 밟았다. 넘어질 뻔한 영원을 빛나가 붙잡았다.

“고마워.”

“그런데?”

“그런데?”

“눈코끼리 말이야.”

“아 그래, 그 산에 하얀 코끼리가 산대. 그런데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눈에 띄지 않게 숨어 다닌다는 거야.”

“하얀색이니까 잘 안 보이겠지.”

“맞아. 그래서 눈이 펑펑 올 때만 산을 내려오는데, 몸집이 아프리카 코끼리보다 큰데도 사뿐사뿐 걷고 움직임이 빨라서 본 사람이 없대.”

“잠깐만. 눈코끼리를 봤으니까 눈코끼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거 아냐.”

“그러네.”

“넌 어떻게 알았어?”

“엄마가 빌려온 책에서 봤어.”

“엄마가?”

많은 눈이 잠시도 쉬지 않고 내렸다. 쌓이고 또 쌓이면서 조용하고 빠르게 세상을 정복해 나갔다. 영원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 어디에 이렇게 많은 눈이 들어 있었을까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그 산에 쌓인 눈이 다 녹았대.”

“빙하기 때부터 안 녹았다며.”

“지구 온난화.”

빛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은 모르지만 들어본 말이었다.

“그럼 눈코끼리들은? 숨어 다녀야 한다며.”

길이 완전히 눈에 덮여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았다. 건널목 앞이었다. 언덕길 건너에 집이 있었다. 아이들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집에 살았다. 영원은 초등학교 입학 직전에 이사를 왔고 빛나는 그 전부터 살고 있었다.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었다.

“이상하지 않아?” 영원이 말했다.

“뭐가? 아직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은 게?”

“아니, 그게 아니라. 지구온난화는 지구가 더워지는 거잖아. 그런데 왜 다시 겨울이 됐지?”

어디선가 고함처럼 경적이 울렸다. 아이들은 눈을 헤치며 길을 건너다 소리가 들려온 쪽을 돌아보았다. 비탈 위에서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차가 돌진해 왔다. 재촉하듯 파란 불이 깜빡거리고 경적은 간절하게 울려댔지만 영원은 몸이 얼어붙어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아웃렛 피규어 매장에서 취급하는 모형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했다. 동물로만 한정해도 삼엽충이라든가 앵무조개, 실러캔스 같은 고대 생물부터 중생대의 공룡은 물론이요 검치호랑이처럼 커다란 이빨을 가진 신생대 포유류까지 자연사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컬렉션을 자랑했다. 호랑이, 사자, 곰, 기린, 코뿔소 같은 흔한 동물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심지어는 개와 고양이도 종류별로 있었다. 실제 크기로 제작한 황제펭귄이라든가 사막여우, 미어캣도 처음 보았다. 아이들을 위한 가축 시리즈와 마니아를 위한 조류와 파충류 시리즈도 있다. 물론 디테일이 정교한 만큼 가격대도 상당했다.

그런데 네스 호의 네시를 닮은 엘라스모사우르스와 빅풋을 떠올리게 하는 기간토피테쿠스 사이에 코끼리 같은 것이 있다. 시베리아 매머드라. 봉우리처럼 솟은 이마와 위풍당당한 상아는 매머드의 특징이다. 털이 하얀색이라는 점이 색다르다.

아들은 공룡을 좋아했다. 장난감을 사러 갔을 때 보니 흥미가 있는 눈치라 티라노사우르스와 트리케라톱스를 사 주었는데 나중에는 그것만 갖고 놀았다. 그래서 이후로는 선물할 일이 생기면 무조건 공룡을 샀다. 값이 나가더라도 디테일이 좋은 것을 골랐다.

언젠가부터 공룡은 무한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한때는 지구를 뒤덮도록 번성했으나 한순간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생명체다. 상상조차 불가능한 긴 시간을 실감케 하는 존재였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쩐지 위안이 됐다.

직원이 머리와 옷을 털면서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흩날린 눈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비가 오나 싶었는데 느닷없이 눈이 쏟아지더니 하역장을 나오자 눈보라가 몰아쳤다. 아무리 기상 이변의 시대라지만 여름의 눈은 아무래도 불길하다.

“눈이 엄청나게 쌓였어요.”

“빙하기가 온 게 아닐까요?”

“네?”

무한은 두 손으로 매머드를 들었다. 의외로 묵직하고 견고하다. 신뢰가 가는 무게다. 십대가 된 것을 기념하는 특별한 생일 선물로도 제격일 듯싶었다.

“책에서 봤는데 지구의 역사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면서 진행됐대요. 이제까지는 간빙기였고요.”

“큰일이네요.”

여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계산대로 갔다.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은지 분주하게 자리를 정리한다. 종종 겪는 일이다.

마음에 없는 말은 못 하고 에둘러 말할 줄도 몰라 본의 아니게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 때가 있었다. 그래서 되도록 말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더니 상대방이 하는 말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딴생각에 빠졌다. 맥락을 놓쳐 생뚱맞은 대꾸를 할 때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더 어려워졌다. 자신의 말에 진심으로 호응해 주는 사람은 아내와 아들뿐이었다.

시베리아 매머드를 구입하고 밖으로 나와 보니 세상이 온통 하얀색이었다. 마술처럼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여름이 한순간에 겨울로 변했다.

그러나 지금은 원래 여름이고 겨울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눈이 그치면 다시 여름이 되겠지 생각하니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목이 잔뜩 움츠러들 정도로 추워서 더는 감상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늦어지는 만큼 집에 가는 길도 더 험난해질 듯해 황급히 하역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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