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끼리 (2/5)

by 걍마늘

처음에는 어디서 스티로폼이 부서졌나 했다. 날씨가 흐리고 쌀쌀하긴 했으나 그것이 눈이라는 생각은 당연히 하지 못했다. 러시아워였고 하나의 생각을 길게 이어갈 여유가 없었다. 눈을 뒤집어쓴 차가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제야 눈인가 싶은 것이다.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지구 온난화가 어쩌고 하며 폭염에 에어컨을 튼 것이 불과 며칠 전이다.

초월은 라디오를 켜고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전문가들도 아직 원인 분석을 하지 못한 모양이나, 급격하게 대기 온도가 하강한 것은 분명했다. 그렇잖아도 반팔 차림이라 뚝뚝 떨어지는 기온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중이었다. 기상청에서는, 머지않아 눈보라를 동반한 폭설이 북반구 전체를 강타할 가능성이 크니 외출을 삼가고 신속하게 방한 대비를 하라고 경고했다. 실내 온도조절 장치 레버를 난방으로 돌렸다.

“지구가 망하려나 봐.”

서 주임이 껴입을 옷가지를 챙겨 왔다. 주섬주섬 껴입다 보니 현숙 언니 옷이다. 그녀는 정규직 전환 대법원 판결이 나고 구조 조정이 있었을 때 자회사 채용을 거부했다.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편에 섰다. 마침내 직접 고용이 되기는 했으나 마땅한 자리가 없어 휴게소 청소만 하다 제 발로 떠났다. 그때 그냥 놔두고 간 옷가지들 같았다.

“집에도 못 가는 거 아녜요?”

“난 좋은데. 애들도 없고, 남편도 없고, 한 소장도 없고. 휴가가 따로 없네.”

“소장님 안 왔어요?”

“휴게소에서 발이 묶였다네.”

부스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눈이 발목까지 쌓였다. 차가운 눈송이가 하루살이 떼처럼 날아든다.

“참, 미애 씨한테서 연락이 왔어.”

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는 톨게이트는 처음이었다. 차량이 뜸해지더니 도로가 통제되었는지 어느 순간 통행이 뚝 끊겼다. 제설차조차 보이지 않았다.

“미애 씨 집 어딘지 알지?”

“알아요. 완전 산꼭대기잖아.”

“미안하다고 꼭 전해달래. 나올 수 있게 되면 늦게라도 나오겠다고 했어.”

“미애 씨가 문제가 아닐 것 같은데요.”

정말로 지구가 멸망하면 어쩌나 싶게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연장 근무를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이대로 모든 게 끝장나 영영 다시 보지 못하면 어쩌나 가슴속에 빙산 같은 걱정이 들어앉았기 때문이다.

“여기 삽 있으니까 틈틈이 치워. 소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틈인가 부스에 눈삽을 기대어 놓았다. 좋은 사람이다 싶다가도 정색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냉정하다고 해야 하나 매정하다고 해야 하나.

부스로 들어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마 사고가 나진 않았겠지. 신호음이 끊긴다. 전화가 안 되는 것인지 전화를 못 받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학교 번호를 적은 쪽지를 들고 부스를 뛰쳐나와 연결 통로로 내려갔다. 미애 씨와 통화를 했다면 사무실 유선 전화는 가능하다는 소리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람이 맹렬하게 초월을 추격한다. 바닥이 미끄러워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사무실로 뛰어 들어가자 자리에 앉으려던 서 주임이 놀란 얼굴로 돌아보았다. 한 소장 자리로 달려가 수화기를 들었다.

신호음이 떨어졌다.

“여보세요.”

낯선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조무한 씨 휴대폰 아닌가요?”

“아, 여주 아웃렛인데요. 휴대폰을 놓고 가셨어요.”

“여주요?”

전화를 끊은 초월은 멍하니 앞을 봤다. 눈앞이 캄캄했다.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아들의 담임은 한참 만에 전화를 받았다.

“영원인 하교한 것 같은데요….”

“하교했다고요?”

“집에 보호자가 있던 아이들은 보호자와 함께 하교했고요,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은 아직 학교에 있습니다. 번호순으로 부모님들께 연락을 드리고 있었어요.”

“부모님이 집에 있는지 확인도 안 하고 보냈다고요?”

“대부분은 먼저 어머님이나 아버님이 오셨어요. 할머님이라든가 할아버님이 오신 아이들도 있고요. 영원이는 아빠가 집에 있을 거라고 했어요. 집이 가깝기도 하고, 빛나랑 같이 간다길래. 똑똑한 아이들이라… 빛나 할머님이 집에 계신다고 해서….”

울 것 같은 목소리였다.

“빛나요?”

“예, 강빛나요.”

앞집에 사는 아이다.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부모님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하기는 할 텐데, 휴대폰이 잘 안 터지더라고요. 어디 보자. 할머님 전화번호 알려드릴게요.”

“할머니요?”

“예, 할머니 집에서 다니는 걸로 아는데.”

“아아, 제가 헷갈렸어요. 불러 주실래요?”

결혼하고 십 년 사이에 원룸 월세에서 투룸 반전세로, 그리고 다시 쓰리룸 전세로 세 번을 이사했다. 맞벌이에 둘 다 출퇴근이 불규칙한 일을 하는 데다 집에 붙어있는 시간이 거의 없고 붙임성 있는 성격도 아니어서 가까운 이웃을 만들지 못했다. 얼굴은 알아도 인사만 겨우 하는 정도였다. 앞집 아이가 할머니와 산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다는 사실은 몰랐다.

빛나 할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부재중 멘트가 불길하게 들려왔다. 어쩌면 그 사이에 부스에 두고 온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을지도 모른다.

껴입은 옷 위에 점퍼를 걸쳐 입고 사무실을 나갔다.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 연결 통로로 들어섰다. 그런데 통로 안이 무섭도록 고요하다. 불길한 정적으로 가득 차 있어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부스로 나가는 출입구가 눈으로 막혔다. 다른 출입구도 상태는 마찬가지다.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갔다. 비품 창고로 달려가 삽을 찾아 들었다. 손바닥에 빨간 고무를 칠한 목장갑을 낀다. 바깥에서 눈밭을 헤치고 나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영업소 밖으로 나가 보니 허리 높이까지 눈이 쌓였다. 차라리 통로 쪽에서 눈을 파고 올라가는 편이 나을 듯했다.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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