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끼리 (3/5)

by 걍마늘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에 깨달았다. 어디서 언제 잃어버렸을까 생각해 보았으나 생각이 난다 해도 이미 늦었다. 고속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이나 다름없었다. 앞뒤로 차가 꽉 막혀 옴짝달싹 못했다. 도로 사정은 상행선이나 하행선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전부터 주말처럼 차가 밀리기 시작해 설마설마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상황이 나빴다.

와이퍼가 부지런히 눈을 걷어냈다. 날이 급격히 어두워져 어두운 정도로는 벌써 해질 무렵이다. 지옥문이 열린 듯했다. 기름은 반쯤 남았고, 휴게소는 10㎞쯤 더 가야 나왔다. 여주 왕복은 충분하겠다 싶어 주유를 미루었는데 이대로라면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차가 퍼질지도 모른다. 기름을 아낄 필요가 있었으나 또 기온도 급격히 내려가 시동을 껐다가는 얼어 죽기 십상이었다.

라디오 주파수를 이리저리 맞추어 보았다. 잡히는 주파수가 몇 개 되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대설 경보가 내린 모양이었다. 평소라면 한 시간 내로 도착할 거리였으나 들은 대로라면 불가능했다.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바닥이 푹 꺼진다. 눈이 무릎 높이로 쌓였다. 휘몰아치는 눈에 눈이 가늘게 떠졌다. 롱 패딩과 부츠로 중무장을 한 상태였다. 마침 겨울 이월 상품을 상차한 차라 겨울옷은 충분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산뜻하게 여름옷을 차려입은 남자가 스노체인을 들고 우왕좌왕한다. 휴대폰을 빌릴 수 있을까 싶어 말을 걸어 보았다.

“도와드릴까요?”

“감사합니다. 스노체인은 처음이라.”

무한은 열심히 앞바퀴 주변에 쌓인 눈을 치웠다.

“어떻게 알고 단단히 무장하셨네.”

“운이 좋았죠.”

남자에게 스노체인을 건네받았다. 무한은 눈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 꼼꼼히 바퀴에 체인을 감았다. 손이 꽁꽁 얼어붙었다.

“전문가시네.”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한 번만 해 보시면….”

“차에 들어가 있어도 되죠? 너무 추워서.”

앞바퀴에 체인을 모두 결박하고 일어서는데 유명한 삼각별 엠블럼이 차갑게 빛난다. 운전석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창유리는 반만 내려갔다. 조수석엔 선글라스를 쓴 골프웨어 차림의 여자가 앉았다. 머리는 길고 치마는 짧다.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 보이는 커플이다. 거의 부녀 수준이었다. 부부 같지는 않다. 골프장에 가는 길이었을까, 아니면 골프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을까.

“휴대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휴대폰이요?”

남자는 한참을 망설였다.

“잠깐이면 됩니다. 휴대폰을 잃어버려서요.”

“아이고, 미안하게 됐습니다. 배터리가 별로 없어서.” 그러고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창문을 올렸다. 하마터면 손가락이 잘릴 뻔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은 창문조차 열지 않았다. 얼마나 버텨야 할지 누구도 모르는 형편이니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었으나 전화 한 통조차 할 수 없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무한은 따뜻한 트럭으로 돌아가 일단 몸을 녹였다. 아들은 집에 돌아왔을까. 아내는 무사히 퇴근했을까. 아들이 열 살이 된 기념으로 중국집이 아닌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만큼은 저녁 시간을 비워두기로 단단히 약속했었다.

선물 상자를 열었다.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 번성하기 시작한 인류가 벌이는 마구잡이 사냥을 피해, 혹은 부족해진 먹이를 이유로 시베리아에서 베링 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로 간 매머드들이 있다. 그 무렵에는 시베리아 대륙과 북아메리카 대륙이, 그러니까 현재의 러시아와 알래스카가 육교로 연결되어 있었다.

상자에서 시베리아 매머드를 꺼내 대시보드에 올려놓았다. 언젠가 스노클처럼 수면 위로 긴 코를 내밀고 바다를 헤엄치는 코끼리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육교로 연결되어 있었다고는 하나 바다에 잠긴 구간도 있지 않았을까. 매머드 가족이 포기하지 않고 바다를 건너는 장관을 떠올리는데 라디오에서 나른하면서도 흥겨운 보사노바가 흘러나왔다.

콜을 받지 말 걸. 그랬다면 지금 집에 있었겠지. 휴대폰도 잃어버리지 않았겠지. 밤새도록 운전해 여수에서 인천까지 왔는데 마침 대형 피규어 매장이 있는 여주 콜이 들어와 다시 내려온 것이다. 누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긴장이 풀렸는지 산소가 부족한지 졸음이 쏟아졌다. 저절로 눈꺼풀이 내려왔다.




차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사건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눈보라에 시야가 흐릿해서인지 너무 조용해서인지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마치 꿈속 같았다.

빛나가 찌그러진 차 곁으로 다가섰다.

“이 사람… 죽었나 봐.”

통제 불능의 차는 다행히, 운전자한테는 다행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신호등주를 들이받고 멈춰 섰다. 기둥은 드러눕고 신호등은 장대처럼 일어섰다.

운전자는 눈을 감고 단꿈을 꾸는 듯 평온한 얼굴로 운전대에 고꾸라져 있었다. 빨간 피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의 얼굴과 아빠의 얼굴이 겹쳐졌다. 언젠가 개미를 밟으며 놀고 있는데 아빠가 말했다. 걔도 엄마 아빠가 있겠지. 엄마 아빠는 집에서 언제 오나 언제 오나 하면서 기다릴 텐데 얘는 엄마 아빠 얼굴도 못 보고 세상을 떠났네.

영원은 그대로 돌아서서 달렸다. 눈밭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일어서길 반복하며 집 쪽으로 뛰어갔다. 아빠는 언제나처럼 모자란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지 못한 것이다.

아빠는 트럭을 운전하고, 엄마는 톨게이트에서 요금을 받았다. 아침에 아빠가 집에 있으면 엄마가 없고, 엄마가 있으면 아빠가 없었다. 둘 다 집에 있는 날에는 아빠나 엄마 둘 중 하나가 자고 있어 늘 한 사람은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둘 다 깨어 있을 때도 다르지 않았는데 둘 중 하나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생긴 다가구 주택들이 다닥다닥 늘어선 좁다란 골목이었다. 어찌나 가까이 붙었는지 계단에서 내려다보면 옆집 밥상에 놓인 수저가 몇 벌인지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영원은 이 층 같은 일 층에 살았다. 층계에도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계단이 보이지 않아 발도장을 꾹꾹 찍으며 층계를 올라갔다.

초인종을 눌렀다. 비밀번호는 알지만 초인종을 누른다. 아빠가 현관문을 열어주길 기대하며 계속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다 포기하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현관에서 “아빠!”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아들 왔어? 하며 아빠가 화장실에서 나올 것만 같았다. 이부자리도 밥상도 아침에 본 그대로지만 어딘가 아빠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아빠를 부르고 다니며 집 안의 모든 불을 켰다.

쟤만 없었어도, 하는 소리를 잠결에 들은 것도 같았다. 내가 가지 않으니까 엄마 아빠가 가 버린 것이다.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 북적이는 마트에서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사라지면 일단 마음 신호등을 켜. 빨간불을 켜고 그 자리에 서는 거야. 엄마를 찾겠다고 혼자서 막 돌아다니면 길이 어긋나서 못 만날 수도 있어.

그런데 엄마가 길을 잃은 거면 어떡해야 하나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 영원은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굳게 닫힌 현관문을 응시했다.

엄마가 지하철역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겨울에만 장사하는 붕어빵 장수가 나왔다. 엄마는 거기서 파는 붕어빵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했다. 겨울 간식은 항상 붕어빵이었다. 이제 엄마는 붕어빵 봉지를 들고 언덕을 오른다. 자주 찾는 분식집과 생일에 갔던 중국집과 밤늦게 들어오는 엄마나 아빠를 만났던 국숫집을 지나 자동차 정비소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선다. 계란집은 문을 닫았다. 길이 미끄러워 자칫 잘못하면 계란이 깨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굣길에 아이들한테 알사탕을 나누어 주는 알사탕 할아버지의 구멍가게는 문을 열었을까. 피아노 학원은 문을 닫았다. 뚱땅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엄마는 이윽고 영원의 발자국이 찍힌 층계를 오른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걸음을 옮긴다. 층계참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계단을 오른다. 부스럭하는 붕어빵 봉지 소리가 난다. 현관문 앞에서 엄마는 초인종을 누를까 비밀번호를 누를까 고민한다. 마침내 마법처럼 문이 열리고 엄마가 붕어빵 먹자, 하며 들어오기를 바란다.

누가 부서져라 현관문을 두드렸다. 마구 초인종을 누른다. 영원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막았다. 엄마나 아빠는 그렇게 할 리가 없다.

“조영원!”

빛나였다. 빛나를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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