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공지붕 다락에서 (2/5)

by 걍마늘

아들의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 계단을 오른다. 돌층계를 반쯤 오르자 초록 지붕이 시야에 들어온다. 박공지붕을 얹은 하얀 이층 양옥집이다. 박공벽에는 로맨틱한 아치형 창이 나 있고 지붕 너머로 새털구름이 날개처럼 펼쳐졌다.

정원은 거의 방치 수준이다. 꽃들이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피었고 잔디는 발목까지 자랐다. 담장 앞에 나란히 선 감나무와 밤나무는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사이 나쁜 자매처럼 뒤엉켜 있다. 나무 주변은 썩은 감과 떨어진 밤송이로 지저분했다.

건물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곳곳이 갈라지고 떨어지고 썩고 부서져 마치 죽음을 앞둔 노인처럼 안쓰럽다. 한때는 위풍당당하게 동네를 굽어보기도 했겠지만, 그런 위세는 이제 온데간데없다.

현관 열쇠는 화분 밑에 있다고 했다. 고풍스러운 부조로 장식한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집안에서 세월이 느껴지는 묵은 냄새가 났다.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섰다. 거실엔 냉기가 가득하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느낌이다. 마룻바닥은 불길하게 삐걱거리고, 널찍한 가죽 소파에는 다 해어진 쿠션이 놓였다. 테이블은 잡동사니로 어지럽다. 벽에 걸린 그림도, 장식장과 장식품들도 수십 년이 넘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은 듯하다.

소파 옆엔 흔들의자를 놓아두었다. 뜨개질을 하며 손자손녀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등받이에 포근해 보이는 무릎담요가 걸렸다. 등받이를 슬쩍 뒤로 밀었다. 의자가 조용히 앞뒤로 끄덕인다.

나의 할머니는,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한국전쟁을 겪으며 아버지와 남편과 시동생을 차례로 잃고 두 가족의 아이들 다섯을 홀로 책임지게 된 내 아버지의 엄마는, 그런 애틋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TV 앞에서 소주로 나발을 불며 줄담배를 피우던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TV를 보다 손등에 담뱃불이 떨어져 생긴 흉터가 지금도 선명하다.

아들이 흔들의자 위로 올라갔다. 나는 재빨리 의자를 붙잡았다. “아빠! 아빠!” 소파로 건너간 아들이 펄쩍펄쩍 뛰며 소리친다. 아들은 모험을 멈출 생각이 없다. 자고로 부모가 하는 말은 모두 잔소리다.

나는 완력으로 아들을 제압하고 옆구리를 간질였다. “아니, 저기! 아빠, 저기!” 아들이 깔깔거리며 맞은편을 가리킨다. 부엌 옆에 위층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다.

서재는 2층에 있다고 했다. 얼마나 좋은 책이 많기에 직접 와서 보고 가져가랄 정도냐고 묻자 아버지가 말했다. 고모부 꿈이 소설가였다더라. 층계 앞으로 갔다. 어느 틈인가 따라온 아들이 나처럼 위를 올려다본다. 층계 위쪽은 어두컴컴하다.

“저기가 하늘나라야?”

벽에 붙은 스위치를 올렸다. 층계참에 불이 켜지자 공간은 현실감을 찾았다.

“아니, 훨씬 더 높은 곳이야.”

아들을 안아 들고 조심조심 층계를 올랐다. 계단은 낯선 이의 방문이 탐탁지 않은 듯 요란하게 삐걱거린다. 층계는 기역 자로 꺾였고, 모퉁이를 돌자 굳게 닫힌 문이 수문장처럼 우리를 막아선다. 층계 끝까지 올라가 문손잡이를 돌렸다. 뒤틀려 뻗대던 문은 이내 튕기듯이 안쪽으로 열렸다.

처음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책이 빽빽이 꽂힌 서가로 둘러싸인 어둡고 비밀스러운 서재를 상상했다. 그러나 그곳은 그저 천장이 낮은 평범한 다락방이다. 책도 상상한 것보다는 많지 않았다.

“얌전히 있어.”

나는 이삿짐처럼 보이는 커다란 상자 위에 아들을 내려놓고 당부했다. 하지만 아들은 언제나처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을 듣지 않는다. 아들과 함께 내려온 비행기는 쿵쾅거리며 다락방 안을 날았고 상자는 활주로가 되었다.

창가에 놓인 책상은 자리를 비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어수선했다. 수 달 치 공과금 고지서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돋보기안경과 펜들이 아무렇게나 놓였다. 요즘은 보기 힘든 주황색 다이얼 전화기도 갖다 놓았다.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댔다. 신호음은 들리지 않는다.

창을 활짝 열었다. 다락은 건너편 신축 빌라 꼭대기 층과 같은 높이다. 그 탓에 시야가 다 가려졌다. 빌라만 없었어도 전망이 좋았으리라.

책상 뒤편 책장엔 잡지를 정리해 두었다. 관심사가 어찌나 다양한지 <네이처>에 <타임스>에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사이언스>에 <뚜르드몽드>에 미술, 음악, 사냥, 낚시 같은 취미 관련 잡지에 이르기까지 도서관 정기간행물 서가에 못지않은 컬렉션이다. <롤링스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살펴보니 벌거벗은 존 레넌이 고치 속 나비처럼 오노 요코에게 매달린 사진을 표지로 쓴 1981년 1월호가 있다.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존 레넌은 이 사진을 찍은 날 아파트 앞에서 광팬이 쏜 총에 맞아 죽는다. 1980년 12월 8일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아들 나이였을 때다.

이어지는 벽면의 책장은 전집류로 채웠다. <戰爭과 平和>라. 꺼내 보니 국한문혼용에 세로쓰기다. 흥미롭게도 키릴 문자로 쓰인 원서가 나란히 꽂혀 있었다. 번역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의 모국어 문체가 궁금할 때가 종종 있는데 다락방의 주인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그치지 않은 모양이다. <데미안>과 <성(城)>도 독일어 원서와 나란히 꽂혔다.

<世界文學全集> 아래 칸은 <韓國短篇文學大系>다. 3권을 뽑아보았다. 1974년에 간행된 중판본이고, 아는 작품은 문학 교과서에 실린 ‘레디메이드 인생’, ‘날개’ 정도다.

바닥에 책을 내려놓고 차례로 책등을 훑다 6권을 뽑았다. 아는 작가가 없다. 7권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최근 작품이 수록된 마지막 권조차도 열여덟 명 중 다섯 명밖에 알지 못했다. 읽어 본 단편이라고는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병신과 머저리’ 이 세 편이 전부다.

맨 아래 칸은 <日本文學選集>이었다.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더더욱 문외한이고 역시나 가져간다고 읽을까 싶기는 했으나, 또 모른다.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 들여다보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한 시인은 말했다. 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詩가 이렇게 쉽게 써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그러나 나는 부끄럽다기보다는 슬펐다. 쉽게 써지지도 않았을뿐더러 세월을 견뎌낼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또 다락방의 주인이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세상을 외면한 채 문학에 빠져있던 한철을 상상한다. 책에 파묻혀 무더운 여름방학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 시절에 꾼 한낮의 꿈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는지도 몰랐다. 그것들이 재생 휴지가 되어 누군가의 뒤나 닦는 운명이 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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