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손에 달린 하나의 세계를 구하는 마음으로 전집의 낱권들을 한 번에 서너 권씩 집어 내렸다. 한편으로는 가져갈 만한 책을 발견했다는 반가움도 있었다.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나를 부른 보람도 있으리라 여겨졌다.
문학 전집을 모두 내리자 <世界人生論大全集>과 <人間操縱法>이니 <한 번 보고 사람을 아는 법>이니 하는 처세술 서적 몇 권이 남았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게 어려워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한눈에 알아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것이 책 한두 권 읽는 정도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지만.
그런데 노끈으로 책을 묶으려고 보니 내려놓은 책들이 보이지 않는다. 범인은 다름 아닌 아들이었다. 안 그래도 조용하다 싶더니만 문학 전집으로 성을 쌓는 중이다. 하드커버 양장본이었다. 겉면이 딱딱하고 크기도 일정해 블록으로 제격이었으리라. 아들은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책 위에 책을 얹었다. 진지한 눈빛과 앙다문 입이 지금 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항변하는 듯했다.
나는 아들 곁에 쪼그려 앉아 들쑥날쑥한 성벽을 반듯하게 정리해 주었다. 내친김에 남은 책으로 성벽을 높이고 한쪽에 아치형 출입구까지 만들었다. 급기야는 내가 더 신이 났다.
“자, 여기가 성문이야. 이렇게.”
아들은 시범을 보이기가 무섭게 기어서 성문을 통과했다. 그러고는 굴뚝처럼 좁은 성 안에서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학이 또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인 것이다. 무릎을 펴고 일어선 나는 책상에 걸터앉아 우리가 구축한 세상을 굽어보았다.
“아빠! 먼지, 먼지!”
햇빛을 머금은 티끌들이 햇살 속을 부유한다. 창문을 통과한 햇살이 아들과 나 사이에 가로놓였다. 천국은 멀리 있지 않았다. 어쩌면 다락방의 주인에게는 이곳이 지상낙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들은 허공으로 뻗은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먼지를 잡으려고 애썼다.
“어? 손이 왜 이렇게 까맣지?”
내 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손을 탁탁 털었다.
“책 곰팡이네. 곰팡이 알지?”
“우리 집에도 많잖아.”
곰팡이 제거는 봄, 가을의 연례행사다. 올봄엔 행거 뒤쪽 벽이 곰팡이로 뒤덮이는 바람에 몇 벌 되지도 않는 옷가지를 절반이 넘게 내다 버렸다.
그즈음이었나. 천변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아들이 민들레 홀씨를 불고는 이러는 것이다. 아빠, 방 안에서 이걸 불면 우리 집이 꽃밭이 되는 거야?
“손 씻으러 가자.”
아들을 안고 다락방을 나와 삐걱대는 층계를 삐걱거리는 마음으로 내려간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와 ‘정말 나아질까?’가 시소처럼 오르내린다.
마지막 계단을 내려서는데 누가 불쑥 앞을 가로막았다. 얼마나 놀랐는지 아들을 떨어뜨릴 뻔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생활 한복 차림의 부인이다.
“작가님이네.”
그녀가 모자를 벗으며 말했다. 아버지와 얼굴이 많이 닮아서 조금 놀랐다.
“아, 안녕하세요.”
글을 쓰는 시간보다 아이와 빈둥거리는 시간이 훨씬 많은 나는 멋쩍게 팔에서 아들을 내렸다. 글 쓰는 사람은 누구나 작가라지만 글을 쓰지 않아도 작가라 불려야 진짜 작가다. “아들, 인사해야지.” 집안일도 아내와 나눠서 했으니 전업 주부라 부르기도 애매했다. 경제 활동은 하지 않았으나 하는 일이 없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
아들은 구십 도로 몸을 굽혀 인사했다.
“인사성이 바르네. 몇 살이지?”
그러자 아들이 새까만 손가락 네 개를 자신 있게 들어 보인다.
“아이고, 까마귀손이 다 됐네.”
당고모에게 양해를 구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손을 씻었다. 고모를 보니 고모부가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해진다.
“차 한 잔 할래?”
찬장을 연 당고모가 물었다.
“읽을 만한 책이 있는지 모르겠네.”
당고모가 테이블에 놓인 잡동사니를 빠르게 한쪽으로 치우고 쟁반을 내려놓았다. 찻잔에는 쌍화차 분말과 고명이 수북하게 담겼다. 사과는 반질반질하게 윤이 난다.
“제가 한자를 잘 몰라서요. 영어도 잘 못하고. 어쨌든 놀랐습니다. 관심사도 다양하시고, 좋은 책도 많았습니다.”
아들을 먼저 소파에 앉히고 그 옆에 나란히 앉아 그녀가 자리를 잡기를 기다렸다.
“다행이네. 조부께서 작고하셨을 때 바깥양반이 챙겨 온 책도 많아. 조부의 부친이, 그러니까 네 고조할아버지겠네. 일제강점기 때 러시아 공사관에서 서기관으로 일하셨다는데 혹시 알고 있었니?”
“몰랐습니다.”
박물관에서나 봄직한 낡은 러시아어 원서의 주인은 고조할아버지였을까. 그는 아마도 외국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대한제국 시대에 이십 대를 보냈을 것이다. 태어난 이상 아버지가 없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결국은 누군가의 자식이겠지만, 세습 왕이 실제로 존재하고 자동차도 전화기도 볼 일이 없던 백오십여 년 전 사람과 혈육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실감하는 것은 달랐다. 만져도 보고 펼쳐도 본 그의 책은 마치 실제로 시간여행을 한 듯 그 시절을 경험하게 했다.
지루함을 참지 못한 아들은 다시금 흔들의자를 공략했다. 나는 아들이 바로 설 때까지 의자를 붙잡고 있다 가볍게 앞뒤로 흔들어 주었다.
“처가 도서관에서 일한다고?”
사과는 이내 반으로, 네 조각으로, 다시 여덟 조각으로 나뉘었다. 당고모가 포크로 하나를 찍어 아들에게 건넸다. 아들이 좋아하는 과일이다. 아삭아삭 맛있는 소리가 났다.
“시립 도서관 사섭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났네.”
그날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지막 권을 찾고 있었고 아내는 데스크에서 그 마지막 권을 읽고 있었다. 도입부를 읽다 보니 잠 못 드는 이의 상념이 한없이 이어지는 소설을 어떻게 끝냈는지 궁금해 마지막 권을 찾던 참이었다. 우리는 다른 이유로 서로 놀랐다. 나는 눈여겨보던 사서가 그 책을 읽고 있어 놀랐고, 아내는 그 소설을 읽으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고모부님도 글을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만날 뭘 끼적거리기는 했지.”
“읽어 보셨어요?”
당고모는 넌더리가 난다는 듯 도리질을 쳤다.
“글은 아들놈이 잘 썼지. 고등학교 다닐 때 시로 신인상을 받았거든. 그게 몇 년도였더라. 이름은 못 들어봤을 거야. 녀석이 쓴 시는 그게 전부였으니까. 여하간 바깥양반이 자기 글은 못 써도 남의 글은 무슨 평론가라도 된 양 사정없이 씹어댔거든. 아들놈의 시도 결국 도마 위에 올랐지. 나는 잘 모르니까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는데, 일리가 있었는지 반박해 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는지 별 말이 없더라고. 똑똑한 양반이기는 했어. 아는 것도 많고, 말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고. 하지만 그건 질투였어. 내가 보기에는 그랬어. 그때부터였지 아마.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거야. 시비를 거는 쪽은 매번 바깥양반이었지. 그러더니만 언제부턴가 부자간에 대화가 사라졌어. 이해가 안 갔지. 겨우 한글을 뗀 아이한테 세계문학전집을 들이밀고 독후감을 쓰게 한 사람이 누군데. 아들놈은 문학특기생으로 대학에 갔어. 공부는 별로 못했는데 다행이었지. 대학도 바로 졸업을 못 해서 팔 년이나 다녔거든. 위층에 있는 책 중에 절반은 아들놈 거나 다름없어. 거기서 보낸 시간이 지 애비보다 많을 걸. 녀석은 졸업하자마자 독일로 갔어. 그게 한 칠 년 전이었나.”
주전자가 비명을 지르며 물이 끓었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부엌으로 갔다. 본래가 그런지 나이 탓인지 움직임에 서두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