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공지붕 다락에서 (4/5)

by 걍마늘

“언제 집에 가?”

아들이 졸린 얼굴로 묻는다. 포크를 뺏어 접시 위에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위험해 보였다. 사고가 나면 다 내 탓이 된다.

“엄마 보고 싶어.”

아이는 늘 예상치 못한 순간에 엄마를 찾는다. 부모 어느 한쪽도 다른 한쪽을 온전히 대신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설비업자였다. 나의 유년은 건설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과 겹쳤고 그때의 아버지는 항상 부재중이었다. 내 곁에는 종일 집안일로 바쁜 어머니밖에 없었다.

“바깥양반이 커피를 못 먹어.”

당고모가 찻잔에 주전자 물을 부었다. 쌍화차 특유의 맵싸한 향이 김과 함께 피어오른다. 한 모금 들이켜자 알알한 맛이 혀끝을 맴돈다.

“맛있네요.”

“커피 대신 마시려고 잔뜩 사다 놨는데 나도 마찬가지라 먹을 사람이 없네. 병원 가느라 아침저녁으로 귀찮아 죽겠어. 어차피 자기 마누란지 남의 마누란지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인생이라는 게 참… 평생 의사 짓을 했으면서….”

“의사셨구나.”

늦은 밤 왕진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서재로 돌아온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두꺼운 안경을 쓰고 책상 앞에 앉아 스탠드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로 밤새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상상 속에서의 작가는 언제나 낭만적이었다.

“오늘 들은 이야긴데, 노인네가 육 개월 된 손녀를 찜통에 넣고 쪄버렸대. 며느리가 잠깐 슈퍼에 다녀오는 사이에. 아무리 찾아도 딸이 보이지 않길래 물었더니 덜그럭거리는 찜통을 가리키더라는 거야. 저기 봐라, 하면서. 며느리는 미쳐서 정신병원으로 실려 갔고, 노인네는 병원으로 끌려왔어. 늙으면 정신 오락가락하기 전에 죽는 게….”

마땅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대신 사과 한 조각을 집어먹었다. 사과는 잘 익어 적당히 단단했다. 기분 좋게 시원하고 달콤해 뜨겁고 씁쓸한 쌍화차와도 잘 어울린다.

“좀 드세요. 맛있네요.”

“이가 시원찮아.”

나는 입에 든 사과를 우물거리다 물었다.

“내일 이사하신다면서요.”

“혼자 살기엔 집이 너무 넓잖니. 낡기도 했고.”

“여기서 얼마나 사셨는데요?”

“결혼하고 칠 년쯤 성북동에 살다가 이사 왔으니까… 딱 삼십 년이네.”

대학을 팔 년 다녔고 칠 년 전에 유학을 갔다면, 당고모의 아들, 즉 재종형의 나이는 최소한 서른다섯, 내 또래다. 일곱 살에 이사를 왔다면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을 가능성도 있다. 동네 어디선가 한 번쯤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친구의 친구였을 수도 있었다. 백일장에 참가했다면 경쟁자로 만난 사이였을 수도 있고, 문예부였다면 좋아했던 문예부 여자애가 좋아한 이웃 학교 문예부 남자애였을 수도 있다. 끼리끼리 어울린 탓도 있겠으나 내 주변에는 게임과 농구에 미친 녀석들뿐이었다. 인생의 초점은 대학 입시에만 맞추어져 있었고, 나머지는 전부 그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교과서에 실린 문학 작품이나 겨우 읽고 있을 때 헤세와 카프카를 읽으며 자신의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진짜 시를 썼다.

“아드님은 아직 독일에 있나요?”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었다. 그때 그와 내가 서로 알았더라면 우리는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될 수 있었을까.

“죽었어.”




주위가 환해 돌아보니 거실 창으로 해가 든다. 간유리에 비친 햇살이 어둑한 거실을 은은하게 밝혔다. 오후에 해가 들어오는 집이다. 식은 쌍화차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묻고 싶은 이야기는 입 안에 남은 고명과 함께 씹어 삼킨다.

“아빠! 비행기, 비행기.” 아들이 어깨 위로 올라가 목말을 탔다.

“그래서, 가져갈 만한 책이 좀 있어?”

“한 절반 정도 봤습니다.” 아들을 아래로 내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빠를 좋아하네.” 당고모가 나를 따라 일어선다. “아들은 내가 봐줄 테니까 찬찬히 둘러봐. 이따 같이 저녁도 먹고.”

“저녁은 괜찮습니다. 아내가 본가로 온다고 해서요.” 그런 다음 아들에게 말했다. “할머니 말씀 들었지? 우리가 만든 성 있잖아, 그거 가지러 가니까 아빠 올 때까지 할머니랑 잘 놀고 있어, 알았지?”

“비행기도 구출해 줘!” 아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하지만 다시 올라가고 싶지는 않은지 붙잡지는 않는다.

“꽃 먹어 봤니? 저기 바깥에 먹을 수 있는 꽃이 있는데.” 당고모가 아들의 손을 잡았다. “먹는 꽃?” 아들이 호기심을 보인다. “빨간 꽃에서는 빨간 맛이 나고, 노란 꽃에서는 노란 맛이 나지.” 당고모와 아들이 다정한 할머니와 손자처럼 현관을 나선다. 손자가 있다면 아들 또래였을까.

“빨간 꽃에서는 빨간 맛이 나고, 노란 꽃에서는 노란 맛이 나지.” 당고모와 아들이 다정한 할머니와 손자처럼 현관을 나선다. 손자가 있다면 아들 또래였을까.

현관문이 닫히자 무거운 정적이 찾아다. 나는 다시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어쩐지 슬프게 들려온다. 죽은 사람과 함께 계단을 오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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