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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리 Oct 28. 2017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길위에서 만나요

로그로뇨에서 나헤라까지 | 31km

오늘은 처음으로 30키로를 넘는 구간을 걷는다. 지도상으로는 길은 아주 평탄한데 얼마나 걸릴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그만큼 오래 걷는 길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해가 거의 떠서 출발했다.

길에서 본 기아 자동차 대리점

대도시는 길찾기가 참 힘들다. 어쩌면 내가 못찾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노란색 화살표가 그렇게도 잘 안보인다. 오늘도 길을 잃고 해메다가 스페인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길을 찾았다.

공원에 안치된 예수상. 설명이 적혀있는데 잘모르겠다. 예수를 기리는 건지 순례자를 기리는건지... 영어로도 적어줬으면...

걷다가 발견한 오리떼. 오리떼랑 논다고 시간이 다갔다.

오리랑 놀다가 정신을 차리고 걷는데 처음으로 기부제로 과일을 주는곳을 발견했다. 이후 발견한 기부제 상점들은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었는데 여긴 아니어서 좋았던 기억. 과일몇개를 챙겨 기부를 하고, 사고싶었던 검은색 크루덴시알을 샀다.


Muchas Gracias!!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그들의 여유가 부럽기도 하고, 난 저런걸 보면서 적자는 안날까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다. 세상에 찌든걸까...

걷다보니 나타난 마을 Navarrete, 그 마을의 바에서 커피한잔을 했다. 이 마을이 끝나면 Nájera 까지는 마을이 없는 엄청난 긴 여정이기 때문에.

바 앞에서 만난 아이. 같이 사진찍자고 해서 미안해... 그렇게 불만이더냐...

나바렛 마을은 아주 조용한 마을이었다. 거울을 봤는데 너무 까맣게 탄것 같아서 그냥 한번찍어봄.

이 과일?혹은 야채의 이름이 뭔지 모르겠다. 순례자 지팡이에 항상 달려있던건데. 뭐지? 나바렛마을에서 나가는 길에 많이 있었다.

나바렛을 나가는 길엔 묘지? 같은게 있었다. 아마 이 마을 사람들의 공동묘지격일지라. 근데 어디 숨어있는게 아니라 마을한복판에 있는건 좀 신기했다. 죽어서도 여기에 산다고 믿는걸까?

지나가다 만난 강아지. 나를 보고 짖는건지 아니면 반갑다는건지.. 짖는 소리도 이상했음.

저 멀리 보이는 고원들. 몇일후면 이제 내가 저 위의 고원에 있겠지. 그 이름은 바로 메세타 고원.

열심히 이 길을 걷고있을 그때, 앞에 동양 여자분들 둘이서 걷고 계셨다. 한국말로 이야기중이시길래 지나가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눈을 마주쳤는데 어라? 어디서 본사람이다. 우리 어디서 본것 같지 않아요? 하고 여쭤보니 순간 정적이 흐르다가 우리는 외쳤다.

 윈드폴!!! 네팔!!!

그렇다. 두분중에 한분은 잘 모르는 분이셨지만 한분은 네팔에서 만났던 L누나였다. 사실 다시만나기 전까지 정확한 이름도 기억이 나지않아 잘 모르고 있었고 연락처도 없었는데, 이렇게 길 위에서 만나게 되다니. 길 위의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 인연을 강제하지 말라더니, 강제하지 않아도 인연의 끈은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구나.


이 길 위는 참 신기하다.
4년전에 참가했던 대회의 심사위원님을 연락도 없이 어쩌다 만나질 않나.. 혹은 4개월전 네팔에서 만났던 분을 연락도 없이 만나질 않나.
내가 좋아하는 말, “길 위에서 만나요.”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
다들 길위에서 만나요.

길에 자꾸 “Wild Sheep” 이라고 적혀있는데, 구글에 검색해보니 이길 끝에는 모두 순한 양이 되어 있기를 이라는 뜻의 노래가 있었다. 나는 남말 잘듣는 순한양은 별론데. 사람이 자기 주도적인 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드는데, 다른사람들 생각은 어떠할려나.

길 위에서 우리를 맞이해주는 참새 방앗간. 너무 힘들어서 음료수 한잔을 사먹었다. 디아에서 0.5유로짜리 음료수를 1.5유로에 파니까 엄청난 장사꾼이다. 하지만 너무 힘들고 더워서 마지못해 한잔.

평소대로라면 숙소까지 가서 점심을 먹었을테지만 너무 힘이 안나서 바가 나오면 무조건 점심을 먹고 가야겠다 싶어서 바를 찾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 찾은 바, 무려 플레이트 메뉴가 5 유로 밖에 하지 않는 착한 집, 샤슬릭같은걸 주문했는데 굉장히 짜지만 굉장히 맛있었다. 오믈렛 또르띨라까지 총 6.5유로.

그리고 Dia에 들렀는데 해산물이 미치도록 저렴했다. 이정도면 내가 가지고 있는 신라면에다가 해물라면 끓여도 되겠다 싶어서 가격표 사진을 찰칵.

Dia : 스페인에 있는 슈퍼마켓 브랜드. 한국으로 치면 홈플러스, 롯데마트 정도?

그리고 나헤라에서도 도네이션 알베르게로 갔는데..

최소 100개의 베드가 넘는 엄청난 수용소급 숙소였다. 게다가 침대끼리 붙어있는데 칸막이따윈 없었으며... 진짜 수용소급이었는데, 호스피탈로가 너무 친절해서 또 감동, 또 감동.

호스피탈로 : 공립 알베르게에서 일하는 직원을 뜻하는 말인데 주로 자원봉사로 이루어짐.

숙소에서 좀 쉬다가 마을 구경 및 마트구경하러 출발.

알베르게까지는 정말 작은마을이었는데, 알베르게 뒤편으로 타운이 펼쳐져 있었다. 생각보다 어마무시(?) 한 마을이었음. 같이 장보러 나온 일행들을 보내고 혼자 커피마시러 마실나갔다가 왔다. 오늘 너무 많이걸어서 카페인이 필요했었기에.

photo by L형님(@heewoo7)

그리고 가지고있는 라면과 사온 소세지, 해물을 넣어 해물잡탕 라면을 만들어 먹었다. with L형님, J군, Y누나, 영신L, S누나.

쉐프 출신인 빠우라는 스페니쉬 친구가 있는데 이친구는 한국 홍대에서 몇개월일했다고 한다. 자기가 스페인 새우요리 감바스를 만들었다고 맛보라면서 조금 줬는데 진짜 맛있었다.

그리고 걷는길이 너무 지루한 나머지 아이폰으로 영상을 하나 편집했다. 아이폰으로 찍은 순례길 전반부 스케치영상. 감상해보시길.

촬영 : iPhone 8 Plus

편집 : iOS Videoleap Pro version


길위에서 만난 인연, 맛있는 음식. 환상의 궁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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