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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리 Oct 27. 2017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기부

로스아르코스에서 로그로뇨까지 | 28km

순례를 시작한지 벌써 일주일차. 이제 몸이 슬슬 적응한 덕분에 아침일찍 일어나는것도 생각보단 수월했다. 물론 나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더빨리 출발했고....


다들 일찍들 출발하는 탓에 역시나 혼자 걷는데 혼자걸으니까 여러 생각들을 많이 하게된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이유중에 힘들기때문에 단순해지기 좋아서 좋아했는데, 순례길에서는 오히려 더 복잡해질때도 많은것 같다. 뭔가 이상하다. 그래도 좋은건 한결같이 변함이 없다.

아침이 해를 데려올때 쯤이면, 세상은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이시간이 제일 춥지만, 제일 황홀한 시간. 나도 모르게 주변을 보며 넋을 잃는다.

날씨가 아무래도 추워서 그런지 순례자들이 줄어든 느낌이다. 오늘은 가는데 마을도 별로 없다던데 어디쯤에서 쉬어야하나.

까미노 프랑스길을 걷다보면 가끔 이런식의 광고판을 볼수 있는데 다른길엔 많이 없긴 한가보다. 상업성짙은 프랑스길의 면모를 볼수 있다는 그말이 사실이긴 하다.

아침이 지나고 해가 좀더 떠오르기 시작할때 비로소 까미노 길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른사람들은 얼마나 빠른지 보이지도 않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모두가 함께 고이 잠든 이곳, 순례길을 걷다보면 진짜로 순직하신 분들의 무덤이 몇군데 있는데, 추모의 마음으로 나도 돌맹이를 하나 올려두고 왔다.

오늘은 가는길에 마을이 하나밖에 없다. 로그로뇨의 근교도시 비아나(Viana). 저기보이는 저 마을이 비안나였다.

아무리 늦게 출발했어도 생각보다 이른시간에 비아나에 도착했기에 간단한 점심겸 타파스를 하나 시켜먹었다. 치킨조림(?) 같은 느낌인데 3유로.


마침 여기 바의 인터넷이 빨라서 스카이프로 카드를 재신청했다. 아마 부르고스의 오르니요스쯤이면 받을수 있을것 같다. (하지만 배송 누락이되어 여기서 못받음)

아직 623km 나 남았댄다. 아직 한참 남았구나. 언제쯤 도착할련지. 그때쯤의 나는 어떠할련지.

비아나 이후 한시간을 넘게 걸어 로그로뇨에 도착했다. 로그로뇨는 꽤나 큰도시인데, 여기서 유진누나는 기차를 타고 사리야까지 간다고 해서 여기서 헤어지게 된다.


A누나는 먼저도착해서 공립 알베르게에 묵고, L형님, Y누나, J군과 나는 성당에서 운영하는 도네이션 알베르게에 묵게 됬다.

순례자의 샘, 한껏 더워진 날씨에 물을 마음껏 먹었다. 기부제 숙소 가는길에 있다.

기부제 숙소 가는길. 저녁을 공짜로 준다고 한다. 주방을 보니 삼겹살해먹기엔 또 글른것 같아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그전에 간단히 무언갈 사먹기 위해 다같이 밖으로 나갔다.

로그로뇨에서 순례자길을 나타내는 표식은 계속 이런모양이었다.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도시의 특성을 잘 반영한 느낌.

점심을 먹고 스페인에서 수수료가 가장 저렴하다는 IberCaja 에서 J군이 돈을 뽑아줬다. 계좌로 갚았다. 카드는 언제쯤 받을수 있을것인가...

다같이 시내를 둘러보는데 이런책이 보인다. 여긴 무슨서점인지 ㅋㅋㅋㅋ 한번 읽어보고 싶었으나 피곤해서 패스. 근처 차이나마트에서 라면도 샀다.


기부제숙소도 와이파이가 되는데 되는지 모르고 아영이누나쪽 숙소에서 죽치고 앉아 와이파이를 쓰다보니 벌써 저녁 8시가 다되어 간다. 숙소를 들어가기전에 숙소옆 성당을 둘러보는데.. 와..

아름다운 노을이 나를 휘감았다. 항상 순례길은 먼동과 노을을 반복해 감상하는 느낌이다.

저녁시간이 되자 하나 둘 부엌으로 모이고, 목사님의 말씀이 시작됬는데 영어도 하시고 스페인어로도, 프랑스어로도 해주셨다. 한국어로 못하는게 미안하다고도 하신다. 서로 소개를 마친뒤, 저녁을 먹는다.

기부제 숙소이고 저녁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너무 맛있었다. 어떻게 이런퀄리티를 나올수 있는지. 레스토랑에서 사먹는거 보다 더 맛있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저녁때문에 당초 예상한 기부금액보다 많이 넣었다. 기부금액은 비밀,

오른손이 한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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