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대기업을 뛰쳐 나와 여행한지 자그마치 10개월.
세계일주 D+300
(2017.02.24~2017.12.22)
23개국, 52개 도시 (중복 제외 18개국, 트레킹 중 들렸던 도시 모두 포함하면 98개 도시)
이번 여행의 끝이 다가온다. 아니 끝 이라기보단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는 거겠지.
It’s time to get reaaaaal. 꿈에서 깨어날 시간.
나는 남들보다 일찍 “무언가”를 해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다닐때 부터 하고싶은 일을 찾았으며, 20살때부터 대기업에 들어가서 개발자로 일을 했다. 심지어 나는 하고싶은 일을 하는 직업으로 취업후 젊은 나이에 많은 연봉을 받기도 했다.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어른들을 만나면 “젊은 친구가 일찍도 대단하네.” 라며 칭찬을 했고, 나는 그 칭찬에 취해 전혀 다른 꿈을 꾸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를 2년쯤 넘게 다녔을때, 많은 연봉이 찍힌 원천징수영수증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행복한가?”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 였다.
어렸을때는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줄 알았다. 대기업에 들어가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인생의 파란만장함만이 지속될줄 알았다. 그래서 진짜 하고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고, 대기업에 들어갔고,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런데 예상은 쉽게 빗나가고 말았다. 그걸 깨닫는데 2년의 시간이 걸렸다. 꿈이 없이 2년을 보냈다. 그러다 “여행에 미치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세계여행을 다녀온 친구,형, 누나들을 알게 됐고 나는 18살때 해보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던 “세계여행”의 꿈에 다시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꿈이 없는 사람이 제일 불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꿈이 생기자, 조금은 행복해졌다. 나는 오롯이 1년간 그 꿈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나는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그 꿈을 혼자 간직하다가, 한해의 마지막 2016년 12월 31일에 주변사람들 에게 “세계일주”를 떠날거라고 선언했다.
당연히 "미쳤어?" 라던가, "회사는?"이라는 답변이 돌아올 것이라 예상했으나 오히려 정말 잘 선택했다고, 부럽다고 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살짝 용기를 더 가질 수 있게 됐다.
갑자기 세계일주를 떠날 거라는 나의 계획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긴 했어도, 막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2월 24일, 마지막 퇴근을 하고 바로 도망치듯 시작한 장기간의 여행을 시작했다. 취침-출근-퇴근-취침을 반복하는 삶을 벗어나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그런 여행을 위해 발을 내디뎠다.
이번여행 전에는 나는 감정이 아주 메마른 사람이었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라 자기 위로하며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어쩌면 억지로 흘렸을 때도 있을 거다.) 슬픔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곤 했지만 전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에 눈을 뜰 줄을 몰랐다.
아니, 이해할 줄을 몰랐다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하다. 아마 대부분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모른 채 누군가에게 상처 줬던 일도 많을 것이고. 더 이상 자주 보지 못할걸 예상하며 헤어질 때 우는 것을 “남자 답지 못한 것”이라고 혼자 생각하며 의연한 척했고,
섣부른 감정표현 같은 건 하지를 않았던 내가 이번 여행에서는 정든 장소를 떠나며 울고, 정든 친구가 나와 헤어질 때 우는 모습을 보며 반성도 많이 했다. 좋은걸 좋다고 할수있는 사람이 됐다.
나는 남에게 보이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많이 쓰고 있던 사람이었고, 그럴 필요가 없던 감정억제를 심하게 하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메마른 감정의 땅을 조금이나마 적실줄 알게된 여행이었다. 평소에 쓰던 단어의 어휘자체가 바뀐것 같다.
여기서 깨달은것 하나는, “내 감정에 충실하는 것” 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 인연을 떠나보낼때는 울어도 되고, 인연을 다시 만날 때는 기뻐해도 된다는 것. 보고 싶을땐 보고 싶다고 말하며, 기쁠땐 기뻐하고, 슬플땐 슬퍼했어야 하는데, 여행전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무래도 남들보다 빨랐던 사회 생활로 인해 주변의 눈치를 더 많이 보게 사람이 바뀌었던것 같다.
이제는 남에게 보이는 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여행중에 큰 도난사건을 당하기도 했다. 랩탑, 카메라, 고프로, 외장하드와 지갑, 여권 등을 다 도난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 물건을 구매했던 돈은 매우 아까웠지만, 그깟 물건 하나가 내 여행을 망치기에는 내 여행의 가치가 좀더 높다는 생각에, 내 물건들을 훔쳐간 놈들에게 오기가 생겨서라도, 나는 여행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여행을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더 좋은 인연들을 만나고, 좋은 꿈을 꾸게 됐다. 좋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블로그를 열심히 쓰겠다고 다짐하며 나갔으나 여행 시작 이후 네이버 블로그엔 112개의 포스팅, 브런치에 31개의 포스팅을 썼다. 단순한 여행 중 일기 포스팅에도 날짜를 100일씩이나 넘게 밀려 허덕이는 나를 볼 때면 게으른 성격은 전혀 변하지 않았구나 싶다.
그래놓고선 항상 “다음 세계여행때는..” 하며 다음 세계여행을 기약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얻은 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 가면 한국생활 잘할 수 있을까가 고민된다. 나를 만나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국생활에 대해 매우 많은 불만을 가진 사람에 속한다. 공감해준 사람도 있겠지만 공감이 안 되는 분들은 내가 말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인내의 고통을 감내했어야 했을 거다.
지나고 보면, 한국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다. 뭐 지금도 생각은 별 다름이 없고 나와보니 더 한국 돌아가서 생활을 잘할 자신이 더욱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내 이야기 참고 잘 들어준 분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한국 가면 어떻게 살지? 잘 살수는 있을까?
확신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가지 변함 없는 사실은, 새로운 꿈이 생겼다는 것.
12개월을 넘어 한국에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며 떠난 여행은 어느새 10개월 차가 되어 있고 나는 한국행 비행기를 예매하기 직전에 서있다. 이번 여행에서 단 한가지의 목표가 있다면 “욕심을 버리는 것” 이었는데, 욕심은 더욱 증폭이 되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출발한 여행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많은걸 얻고 돌아갈 수 있게 됐고, 수많은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출발했던 여행은, 많은 버킷리스트를 다시금 만들어내게 했다.
그리고 1년간 여행하기에 충분한 통장잔고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카드값에 허덕이는 마이너스 생활자가 됐다.(이건 회사 다닐 때도 비슷했던 것 같은데...)
이 기나긴 글을 누가 어디까지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꿈이 생겨서, 우선 한국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저는 이제 큰일이 없다면, 2월 초에 한국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날짜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들어가면 술 한잔 해줘요. 응원해준 많은 분들에게 밥 한 끼 사고 싶은데,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그때까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리며 항상 꿈을 위해 노력하며 사는 변함없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