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새

자유와 동행에 관하여

by 주홍빛옥상




물 위를 수놓은 윤슬,
한여름 바람에 흔들리는 녹음,
푸른 바다의 지평선,
해 질 녘 주홍빛 하늘처럼
무연히 바라보게 되는 장면 중 하나는 바로 상공을 힘차게 날아가는 새의 모습이다.

마치 파란색 화선지에 먹 한 점을 콕 찍어 놓은 듯한 새의 모습에는 거리의 전깃줄을 옮겨 다니는 모습에서는 느낄 수 없던 묘한 해방감이 느껴진다.


6년 전, 유기견이었던 나무를 가족으로 맞이한 뒤로 나는 하루의 한두 번은 꼭 옥상에 오른다.
그 시간은 나무에게도 그러하겠지만 나에게도 자유 그 자체이다.
옥상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거리에서 올려다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이 내 것인 양,
마음껏 올려다볼 수 있다.

그날은 해가 긴 계절의 어느 저녁 무렵이었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바람은 느리게 흘렀다.

하늘 저 멀리 두 마리의 새가 날고 있었다.
같은 바람을 타지만 각자의 궤도로 나는 듯했다.
멀어서 형태는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힘찬 날갯짓만은 여지없이 느껴졌다.
두 녀석은 꽤 멀찍이 떨어져 있었고,
나는 까만 두 점이 훨훨 나는 모습을
그저 무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새들은 간격을 유지하며 적절한 거리를 두었지만 같은 방향으로 날고 있었다.

마치 목적지가 같은 것처럼.


앞서가는 새가 속도를 내면 뒤따르는 새도 날갯짓에 박차를 가했다.
적절한 거리, 그 이상의 격차는 두지 않으려는 듯 속도를 조절하며.

그 거리는 어쩌면 서로의 자유를 위한 간격, 힘찬 날갯짓을 위한 각자의 공간이자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는 경계, 동시에 함께 날기 위한 약속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란히, 그러나 독립적으로 하늘을 가르며 나아갔다.
바로 곁에 있지 않아도, 삶의 시정거리 안에서 서로의 조력자가 되는 존재.
때로 하나가 길을 헤매면 나침반이 되어 방향을 알려 주고, 등대가 되어 어둠 속 길을 밝혀 주는 존재.

고개를 들어야만 보이는 먼 하늘,
그곳을 나는 새들은 서로에게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 사이에는 일방적인 것이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늘을 지탱하며 날아갈 힘이 되어주는 것.
같이의 의미는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한 계절을 보내기 위해 일정한 대형을 유지하며 따듯한 곳을 향해 무리 지어 날아가는 철새들,
드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는 전깃줄 위를 가득 메운 새들,
그런 장면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자연과 동물을 통해 얻는 감상은 마음을 겸허하게 하고, 동시에 풍요롭게 한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디로 향하는 걸까.
저 한가운데에서 지치면 어떻게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들은 날아간다.
함께이기에 닿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새들은 부정적인 생각도, 득과 실의 계산도, 타인의 삶과 비교하며 느끼는 불안도 모른다.
오직 생존과 삶을 위해 서로에게 디딤돌이 되어 앞만 보고 나아간다.
그 길에 슬픔과 두려움이 태풍처럼 덮쳐와도 진심의 애도와 함께 다시 나아간다.
그들의 생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자연과 동물은 그래서 인간의 스승이다.



오늘 아침,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다.
마침 날아가는 새가 있다면,
나는 유심히 볼 것이다.
끊임없는 날갯짓으로 드넓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에게서,
또 하루를 살아갈 지혜를 얻을 것이다.